19세기 중후반은 자동차 개발의 전성기였습니다. 공학이 발전하면서 차량개발 분야 선구자가 전세계적으로 쏟아졌습니다.
독일에는 오늘날 저먼 모터스(German motors) 명성을 닦은 C. 다임러, 벤츠, 루돌프 디젤등이 맹활약했고 프랑스에는 퀴뇨(퀴뇨는 18세기 사람입니다)와 피에르 푸조가, 그리고 미국에서는 헨리 포드 주니어가 글로벌 완성차업체의 모태가 될 시제품을 열심히 만들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미국이 요거 만드는 동안, 영국은 시속 2.9km 짜리 경운기를 만들고 있었다>
반면 당시 세계 최강 공업국이던 었던 영국은 이 경쟁에서 한동안 뒤쳐졌습니다. 영국은 압도적인 공업생산력과 과학기술, 풍부한 식민지 원자재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개발에는 2류국가에 불과했습니다. 1906년 롤스와 로이스가 롤스로이스를 설립하기 전까지 제대로 된 차량 브랜드 하나 없었을 지경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요?
역사학자들은 입을모아 1861년 도입된 '적기조례(Red Flag Act)'를 영국 차량 개발 도태 원인으로 꼽습니다. 1896년 까지 유지된 이 법은 자동차는 최대 시속 3km(오타가 아닙니다!)를 넘을수 없고, 붉은 기를 단 기수가 자동차 앞을 걸어가며 주변 통행자들에게 위험성을 알려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쉽게말해서 걸음걸이보다 빠른 자동차를 만들지 말라는 황당한 규정입니다.
이런 규정이 입법된 배경에는 신기술에 대한 대중의 공포와 막강했던 마차(Coach) 조합 로비가 있었습니다. 초창기 자동차는 엔진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기에 무척 시끄러웠고, 대중들에게 겁을 주기 일쑤였습니다. 보행자들 조차 이런 '괴물'에 익숙치 않아 어린아이가 자동차를 피하지 못하고 치이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자동차를 잠재적 경쟁자로 생각한 마부와 마차주인들은 이런 대중의 공포감을 이용해 자동차를 무력화할 수 있는 이런 조항을 만든거죠.
<낭만적으로 보이는 이들이 영국 자동차 산업의 '적폐' 였다>
적기조례는 35년이나 영국 자동차업계를 옭죄였고, 그 결과는 자동차 산업의 후퇴였습니다. 적기조례가 사라진 20세기 초에 가서야 롤스로이스, 재규어 등 토종 유명 영국브랜드가 출현했습니다. 영국에는 잃어버린 35년이죠. 만약 이런 황당무계한 규제가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 세계1위 자동차는 독일의 저먼모터스가 아니라 영국의 브리튼모터스(Britain motors)가 아니었을까요?
해가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산업역량과 국부를 고려하면 헛된 망상은 아닌듯 합니다. 자동차 개발은 다른 기계공업과 마찬가지로 기술과 노하우 축적의 시간을 필요로 하니까요.
우리 금융당국은 9월 말 사실상 ICO를 전면 규제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가상화폐 투자자로서, 경제지 기자로서,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의 미래를 믿는 사람으로서 우려스렵습니다. 어쩌면 이 결정은 한국 IT 기술 발전을 가로막을 '21세기형 적기조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블록체인, 그리고 가상화폐 기술이 발전하기 사실상 최적의 조건을 갖춘 국가 중 하나입니다. 우선 액티브 엑스(Active X)로 상징되는 기존의 플러그인 형 금융 보안시스템이 생명력을 다해가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수차례 액티브 엑스를 없애겠다고 공언했구요. 대부분의 액티브 엑스 형 금융보안이 다른 형태로 대체돼야 합니다. 차세대 보안기술인 블록체인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죠.
<액티브 엑스 교체로 인해 조만간 한국 사이버 보안시장은 큰 기회를 맞을것이다>
이는 국내에 블록체인 기반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 저변이 넓다는 점과 결합해 큰 시너지를 발휘 할 수 있을 전망입니다. 거래액수 기준 세계 1위 거래소는 한국의 빗썸입니다. 코인원, 코빗등 소위 빅 3 거래소 외에도 코인네스트, 야피존 등 중소규모 거래소를 더하면 한국 시장이 전세계 가상화폐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30% 대로 추정됩니다. 그렇다고 국내에 우지한(Wu Ji Han) 같은 대규모 체굴업자가 존지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이런 거래를 주도하는 핵심 세력은 개미군단입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와 인구를 고려하면 유래없을정도로 가상화폐투자 저변이 넓습니다.
최근 코스닥 상장업체들이 속속 기존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회사들을 인수하는 배경에도 이에 대한 고려가 있으리라고 보입니다. 결국 액티브 엑스를 블록체인으로 대체하려면 기존에 가상화폐나 거래소를 개발해 본 경험이 필요하고, 인수·합병(M&A)을 통해 이런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경험입니다. 블록체인이 사이버 보안업계에 크나큰 새 먹거리로 거듭날 수 있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금융당국이 ICO를 전면 규제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ICO는 일종의 유사수신행위, 혹은 상장(IPO)와 유사해 보인다는 근거입니다. 부작용, 가령 먹튀나 사기코인(Scamcoin) ICO가 발생한 경우 사기피해자들이 생길수도 있으니 올바른 지침이 나올때까지는 일단 전면금지해 유보하겠다는 발상이죠.
<가상화폐를 보는 금융당국의 시선.JPG>
이는 근본적으로 금융당국이 ICO를 '금융' 측면에서 보고있다는 말입니다. 정부는 금융 분야에서 소비자들이 쉽게 피해를 입을수 있기에 유사수신행위를 포함 각종 불법·탈법적 행위를 엄히 규정하니까요.
올해들어 뉴스 헤드라인을 달군 '비트코인 과열 주의보' '가상화폐 사기 투자 적발'이라는 문장은 ICO 금지 결정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반복된 수차례 기성언론의 선정적 보도 때문에 코인 투자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거품, 투기과열, 사기와 동일시 하고 있습니다. 가상화폐 투자 위험성을 경고하는 기사들 대부분이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큰 관심도 없고,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그저 위험성만을 부각합니다. 벌써 4년전 마운트 곡스 파산사건까지 끌어들여서요.
그런데 ICO가 과연 '금융'일까요? 저는 오히려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ICO는 기존 유사수신 행위보다는 오히려 벤처투자, 특히 크라우딩 형 벤처투자에 가깝습니다. 투자자는 가상화폐 배경에 깔린 블록체인 기술과 알고리듬, 개발진을 믿고 ICO에 참여합니다.
금융투자와 달리 기술투자는 정말 악질적인 사기가 아닌한 대부분의 행위를 합법으로 인정합니다. 하이리스크-하이리턴, 그리고 모험자본(Venture capital), 기술 개발 의욕 고취 등을 위해 넓게 개발자의 자금조달 재량을 인정해 줄 이유가 많기 때문이죠.
ICO는 기술투자입니다. 다른 기술투자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금융상품에 존재하는 열거식 허용규제(포지티브 방식)가 아니라 소거식 금지규제(네거티브 방식)가 필요합니다. 즉 정부가 허용해 주는 투자만 가능한게 아니라, 정부가 금하는 투자말고는 전부 허용하게 풀어달리는 ㅇ이기입니다.
지금와서 발생한 ICO 전면금지 조치, 막 꽃피우기 시작한 한국형 블록체인 기술의 싹을 자르는 '한국판 적기조례'가 되지 않을지, 심히 우려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