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Hide Resteemsyunta (59)in krsuccess • 3 days ago벌컥!“벌컥!” 옆집 젊은 남자가 험하게 문을 여는 소리가 아무런 전조도 없는 교통사고처럼 휴일 한낮의 적막을 깨고 내 뇌 속으로 슥 들어온다. 칼로 연한 두부를 자를 때 힘을 빼고 가볍게 밀어 넣듯이 스윽. 내 뇌가 두부가 된 것 같다. 갑자기. 두부 요리가 먹고 싶어진다. 인간의 뇌를 요리하는 장면이 나왔던 영화 ‘한니발’도 다시 보고 싶어진다.…yunta (59)in krsuccess • 6 days ago뭔가 달랐던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서 ‘뭔가 달랐던’ 다섯 편을 꼽아보았습니다. 헤르만 헤세. 아고타 크리스토프. 마루야마 겐지. 한강.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 소설들의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길고 깊은 어떤 감정이 벅차게 밀려 들어와 의식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여운’이라고 하기엔 너무 강렬하고, ‘감격’이라고 하기엔…yunta (59)in krsuccess • 8 days ago우울질유튜브에 오랜만에 ‘BEHEMOTH 베헤모스’가 떴다. 좋아하는 팀이라 정신없이 봤다. 폴란드 Poland 메탈 밴드다. 강력하고, 아름답고, 우아하다. 폴란드의 고딕 메탈 밴드 ‘시라 Sirrah’도 무척 좋아한다. 이 지역의 밴드는 뭐랄까. 특유의 서정적인 어두움이 마치 한국과 유사한, 한의 정서. 같은 것이 음악 깊숙이 배어 있는 것 같다.…yunta (59)in krsuccess • 12 days ago바께스 문바께스 문 고등학교 때였다. 밤 9시가 넘어가자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억지로 앉아 있던 뒷자리의 몇 명이 잡담을 시작한다. 그 또래 애들이 흔히 그렇듯 한 번 물꼬가 트이면 자신들도 모르게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마침 복도를 지나다니며 학생들을 지도(감시)하던 선생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내가 너희 같은 놈들 때문에 이 시간까지 집에를…yunta (59)in krsuccess • 16 days ago정말이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사적으로길을 걷고 있었다. 앞쪽에서 머뭇거리고 있던 30대 정도로 보이는 평범한 외모의 여성이 지나가는 나를 향해 입술을 떼었다. 뭔가 곤혹스러운 듯한 어두운 낯빛이 아마도 길을 물어보려는 것 같았다.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영혼이 맑아 보이시는...” 이 말을 듣자마자 버럭 화가 치솟아 그 여성에게 소리 지르고 말았다.…yunta (59)in krsuccess • 18 days ago시간 앞에서는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콘크리트 지평선 위로 막 치솟은 해가 사정없이 눈을 찌른다. 햇빛이 망막과 수평을 이뤄 모자의 챙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한겨울이라 초록색은 모두 빛을 잃었지만 그 대신 갓 태어나 활력 넘치는 햇빛 덕분에 회색 콘크리트와 탁한 황색 수풀이 생기를 띤다. 순간 강렬한 오렌지빛으로 흐릿해진 내 시야의 오른쪽 아래 구석에서, 잠시…yunta (59)in krsuccess • 19 days ago적당히 뿌옇게봄학기의 수업 첫날, 남학생 한 명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이 여학생인 삼십여 명 남짓 되는 학생들 틈에서 어깨 아래로 길게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호기심이 잔뜩 배인 똘망똘망한 눈을 반짝이며 나의 말에 집중한다. 남자가 저 정도로 머리를 기르기 쉽지 않았을 텐데. 몇 주가 지나고 학생들과 선생은 슬슬 서로에게 익숙해진다. 이제는 수업 중에 간혹 가벼운…yunta (59)in krsuccess • 25 days ago보내지 않고, 버렸다책 두 권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책들을 쓰레기통에 쑤셔 넣으면서 여태껏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책을 ‘버린’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책을 보낸 적은 있어도 버린 적은 없었다. 나에게는 이제 필요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할 것 같은 책은 동네 헌책방에 가져다주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다지 필요 없을 것 같은 책을 보낼 때는 노끈으로 묶어…yunta (59)in krsuccess • 29 days ago묻은아주 가끔, 글의 의도를 훼손하는 댓글이 묻는다. 그런 댓글 대부분은, 아니 전부가, 자신이 ‘지식’이 많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 목적이다. ‘지식’에 따옴표를 친 이유는 부정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뭔가를 공부하거나 경험을 쌓아 얻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가 아니라 ‘기계적인 지식’이다. 지식을 알리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이 많음’을…yunta (59)in krsuccess • last month클래식한“매우 클래식한 오아시스나 너바나의 음악이 흐르고” 얼마 전 한 소설을 읽다가 이 문장을 만났다. ‘매우 클래식한’이라는 형용形容이 눈에 쑥 들어왔다. 묘했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어울리는 묘사였다. 오아시스가 비틀스의 감성을 오랜만에 재현해서 클래식하다고 한 걸까. 메탈이 점령한 시대에 난데없이 6~70년대의 클래식한 록음악 스타일을…yunta (59)in krsuccess • last month낯선박완서의 소설을 읽다가 낯선 단어 하나가 나왔다. 분명 기억 저편 오래된 서랍 한 구석에 저장되어 있는 단어이긴 했지만, 사용해 본 지, 접해 본 지 너무 오래된 단어라 정확한 뜻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 ‘물질’이 그렇게 더럽거나 ‘위험’한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바로 사전을 검색했다. (‘뒤졌다’가 아니라 ‘검색했다’라고 쓰면서 세상이 변했다는…yunta (59)in krsuccess • last month아침 출근길아침 출근 시간이었다. 이 길은 자동차는 물론 자전거도 탈 수 없는 (끌고 갈 수는 있는) 보행 전용 산책로다. 아침에 걷기 운동할 겸 이 길을 거쳐서 출근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인다. 나 역시 그중 하나다. 길을 걷는 삼십 분 동안 종이책을 읽으며 걸어가는 사람을 두 명이나 보았다. 휴대폰을 보면서 걷는 사람들이야 흔하지만 종이책이라니. 그것도…yunta (59)in krsuccess • last month암으로전쟁 영화 하나를 봤다. 적들을 통쾌하게 무찔러 승리를 거두는 그런 액션 영화는 아니다. 요즘에는 그런 뻔한 전쟁 영화는 보기 힘들다. 다행이다. 적들이 떼로 몰려오고 전황은 불리하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살아나가기는 힘들 것 같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한 젊은 병사가 크게 부상당한 동료를 부축하며, 그에게 용기를 북돋으며, 여기서 포기하지 말라며…yunta (59)in krsuccess • last month순전히너무나도 순수하고 완전하게 즐거워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밀려 나온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던 적이 언제였을까. 까마득한 안개처럼 희뿌연 기억 속을 헤집어 억지로 그날을 떠올렸다. 분명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여전히 ‘초등학교’라는 단어는 어색하다.) 오렌지빛 햇살이 따스하게 쏟아지던 화창한 봄날이었다. 하지만 건조한 공기…yunta (59)in krsuccess • last month연약한와인잔을 여러 번 깨트렸다. 한 번은 와인잔 속에 손가락 세 개를 넣고 수세미로 닦다가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벌어진 모양이다. 그 작은 힘에 ‘쩍’ 소리와 함께 와인잔이 깨졌다. 다행히 손은 다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와인잔이 좀 ‘무섭다’. 연약해서 무섭다. 실은 연약한 건 약하지 않다. 나의 빈약한 손힘만으로도 가볍게 와인잔을 깰 수는 있지만…yunta (59)in krsuccess • 2 months ago위로출근 시간대의 도로는 여전히 막혔다. 갓 솟아오른 겨울 아침의 태양도 어제처럼 뿌연 오렌지빛이었다. 운전을 하면서 바라본 차창밖의 모습은 변함없이 평범했다. 하지만 오늘은 이런 평범한 일상이,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이 더없이 고맙게 느껴졌다. 몇 시간 전의 일이 현실이 아니라 지독하게 생생한 악몽 같았다. 다행히 ‘그 사건’이 해제되고 나서 오늘 수업…yunta (59)in krsuccess • 2 months ago상관없지 않은20일 넘게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당연히 글도 쓸 수 없었다. 십 년 동안 매일 짧게라도 글을 썼다. 내 글이 너무나 하찮아서 세상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느껴지더라도 그저 습관처럼 꾸준히 글을 썼다. 물론 그런 글은 나만 볼 수 있도록 책상 한편에 묻어 두었다. 그 사건은 십 년 동안의 습관을 잠깐 멈추게 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yunta (59)in krsuccess • 3 months ago긴 문장많은 수의 사람들이 두세 명으로 무리 지어 재잘거리고 즐거워하고 혹은 기대감에 찬 조용한 미소를 짓거나 일부는 짐짓 꾸며낸 듯한 관심 없다는 표정, 비록 어쩔 수 없어서 이 영화를 보러 오기는 했으나 자신은 이것보다는 좀 더 수준 높은 영화만을 즐겨 보며 이따위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단지 약간의 돈과 시간만을 낼 뿐 자신의 값비싼 진지함은 결코 지불하지…yunta (59)in krsuccess • 3 months ago기억 한구석중. 박완서. 헉 하고 숨을 들이쉬면서 천개사 포교원이라는 간판과 함께 빨랫줄에서 나부끼는 어머니의 스웨터를 보았다. 영주는 멎을 것 같은 숨을 헐떡이며 그 집 앞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루 천장의 연등과 금빛 부처가 그 집이 절이라는 걸 나타내고 있었다. 그밖엔 시골의 살림집과 다를 바가 없었다. 부처님 앞, 연등 아래 널찍한 마루에서 회색…yunta (59)in krsuccess • 3 months ago추운 겨울의 하얀 입김처럼.“너 방금 방귀 뀌었지?” “어떻게 알았어? 소리도 냄새도 안 났는데?” 아주 추운 아침이었다. 그의 체온을, 생명을 품은 따뜻한 방귀는 하얀 입김처럼 엉덩이 부근에서 희끗하고 분명한 형상으로 솟아 나왔던 것이다. _ 덧. 한 작가의 글이 멋져서 오마주(패러디)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