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Hide Resteemsyunta (59)in krsuccess • 22 hours ago수인 4. 어떻게 살았지.그때 대체 어떻게 살았지. 어떻게 살아남았던 거지. 수인은 담배를 피우다 불현듯 그날이 생각났다. 수인은 그날 집에 있었다. 쨍한 햇볕에 방 안이 환했던 평일의 한낮이었다. 갑자기 담배가 당겼다. 담뱃갑을 집었지만 담배는 한 개비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러 가야겠다. 지갑에 천 원 한 장. 바지 주머니에는 이백 원이 있었다. 부족하다. 집안 곳곳…yunta (59)in krsuccess • 7 days ago신기해출근 시간 지하철 안.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고 있었다. 그것도 ‘종이책’으로. 으음. 신기해. 힐끔힐끔 그 남자를 관람했다. (‘관람’이라는 단어가 어쩜 이렇게 딱 들어맞는지) 겉모습은 단정하고 깨끗하다. 그런데 외모에 신경 쓰는 성향은 아닌 듯하다. 그가 지금 걸친 옷차림 그대로 30년 전, 혹은…yunta (59)in krsuccess • 9 days ago존중(2009). 제이슨 라이트만 감독. 주인공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1년 322일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해고를 통보하는 일을 한다. 해고 통보를 대행하는 직업이라니. 격리된 좁은 공간에서 자신의 말 한마디에 좌절하고 절망하고 분노를 토해내는 사람들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봐야만 하는 일이라니. 끔찍한 직업이다. 라이언은 이 일을 즐기지는…yunta (59)in krsuccess • 15 days ago단편. 수인 3. 그르렁대며.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가만히 서 있는데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저 살아남기 위해 숨만 쉬고 있을 뿐인데 이 세상이 모든 인간들이 그런 나를 밀치고 노려보고 부드럽게 보이지만 가시 돋친 말을 던지고 그르렁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가만히 서 있는데,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저 살아남기 위해 숨만 쉬고 있을 뿐인데, 이 세상이, 모든 인간들이, 그런…yunta (59)in krsuccess • 16 days ago맑은 물 같은 영화(1987) 퍼시 아들론 감독. 이 영화를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Calling You’라는 주제곡은 알고 있었다. 개봉 당시에는 이 노래가 밤늦은 시간의 라디오에서도, 가끔 들르던 카페나 술집에서도 자주 흘러나왔다. 음악 마니아였던 과 친구는 이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나한테 이 노래를 들려주며 제베타 스틸의 목소리에 폭 빠져든 이유를 사뭇…yunta (59)in krsuccess • 19 days ago단편. 수인 2. - ‘되기를’수인은 무력한 자신이 바뀌기를 바랐다. 남들에게 똑똑하게 보이고 싶었다. 시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화가가 되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딱히 그림을 그리고 싶지는 않았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어떤 예술을 할지도 몰랐고 뭔가를 열렬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사놓은 복권이 당첨되기를 바라듯…yunta (59)in krsuccess • 20 days ago단편. 수인 1.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은가.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더욱 아름답게 보존하고 싶은 미학적 열정 때문에.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똑똑해 보이고 싶은 순수한 이기심 때문에. 딱하지만 이렇게 그럴싸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저 살아남고 싶어서다.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고…yunta (59)in krsuccess • 21 days ago아직은내 또래 선배가 세상을 떠났다. 모든 사람의 생명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걸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내 삶의 일부를 공유했던 또래의 죽음이 찌르는 감각은 분명 더 쓰리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난다. 나는 아직은 하나둘에 포함되지 않았다. 아직은. 나는 나도 모르게 ‘아직은’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걸. 당연히 나도 죽을…yunta (59)in krsuccess • 22 days ago사심(師心) 없이체호프의 단편 에 등장하는 캐릭터 ‘이뽈리뜨 이뽈리띠치’는 진지한 태도로 늘 누구나 아는 뻔한 이야기만 한다. “예, 멋진 날씨로군요. 지금이 5월이니까 곧 진짜 여름이 올 겁니다. 여름은 겨울과 다르지요. 겨울에는 난로를 때야 하지만, 여름에는 난로가 없어도 따뜻하답니다.” 아마도 체호프는 이 인물을 통해 진부한 이론을 펴는 소위 ‘지식인’들을…yunta (59)in krsuccess • 28 days ago여우 눈가장 해가 짧다는 동지가 지난 지 열흘도 되지 않은 한겨울의 이른 아침이었다. 막 떠오른 해는 아직 땅에 바짝 붙어있다. 나는 길을 따라 동쪽과 남쪽의 정가운데 사이로, 똑바로 해를 향해 걷는다. 차가운 겨울 햇빛이 사정없이 눈을 찌른다. 모자의 챙은 아무 소용이 없다. 선글라스를 꼈지만 나무와 건물 그림자가 드리우지 못하는 곳을 지날 때는 눈이 부셔서…yunta (59)in krsuccess • last month벌컥!“벌컥!” 옆집 젊은 남자가 험하게 문을 여는 소리가 아무런 전조도 없는 교통사고처럼 휴일 한낮의 적막을 깨고 내 뇌 속으로 슥 들어온다. 칼로 연한 두부를 자를 때 힘을 빼고 가볍게 밀어 넣듯이 스윽. 내 뇌가 두부가 된 것 같다. 갑자기. 두부 요리가 먹고 싶어진다. 인간의 뇌를 요리하는 장면이 나왔던 영화 ‘한니발’도 다시 보고 싶어진다.…yunta (59)in krsuccess • last month뭔가 달랐던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서 ‘뭔가 달랐던’ 다섯 편을 꼽아보았습니다. 헤르만 헤세. 아고타 크리스토프. 마루야마 겐지. 한강.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 소설들의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길고 깊은 어떤 감정이 벅차게 밀려 들어와 의식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여운’이라고 하기엔 너무 강렬하고, ‘감격’이라고 하기엔…yunta (59)in krsuccess • last month우울질유튜브에 오랜만에 ‘BEHEMOTH 베헤모스’가 떴다. 좋아하는 팀이라 정신없이 봤다. 폴란드 Poland 메탈 밴드다. 강력하고, 아름답고, 우아하다. 폴란드의 고딕 메탈 밴드 ‘시라 Sirrah’도 무척 좋아한다. 이 지역의 밴드는 뭐랄까. 특유의 서정적인 어두움이 마치 한국과 유사한, 한의 정서. 같은 것이 음악 깊숙이 배어 있는 것 같다.…yunta (59)in krsuccess • last month바께스 문바께스 문 고등학교 때였다. 밤 9시가 넘어가자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억지로 앉아 있던 뒷자리의 몇 명이 잡담을 시작한다. 그 또래 애들이 흔히 그렇듯 한 번 물꼬가 트이면 자신들도 모르게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마침 복도를 지나다니며 학생들을 지도(감시)하던 선생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내가 너희 같은 놈들 때문에 이 시간까지 집에를…yunta (59)in krsuccess • 2 months ago정말이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사적으로길을 걷고 있었다. 앞쪽에서 머뭇거리고 있던 30대 정도로 보이는 평범한 외모의 여성이 지나가는 나를 향해 입술을 떼었다. 뭔가 곤혹스러운 듯한 어두운 낯빛이 아마도 길을 물어보려는 것 같았다.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영혼이 맑아 보이시는...” 이 말을 듣자마자 버럭 화가 치솟아 그 여성에게 소리 지르고 말았다.…yunta (59)in krsuccess • 2 months ago시간 앞에서는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콘크리트 지평선 위로 막 치솟은 해가 사정없이 눈을 찌른다. 햇빛이 망막과 수평을 이뤄 모자의 챙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한겨울이라 초록색은 모두 빛을 잃었지만 그 대신 갓 태어나 활력 넘치는 햇빛 덕분에 회색 콘크리트와 탁한 황색 수풀이 생기를 띤다. 순간 강렬한 오렌지빛으로 흐릿해진 내 시야의 오른쪽 아래 구석에서, 잠시…yunta (59)in krsuccess • 2 months ago적당히 뿌옇게봄학기의 수업 첫날, 남학생 한 명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이 여학생인 삼십여 명 남짓 되는 학생들 틈에서 어깨 아래로 길게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호기심이 잔뜩 배인 똘망똘망한 눈을 반짝이며 나의 말에 집중한다. 남자가 저 정도로 머리를 기르기 쉽지 않았을 텐데. 몇 주가 지나고 학생들과 선생은 슬슬 서로에게 익숙해진다. 이제는 수업 중에 간혹 가벼운…yunta (59)in krsuccess • 2 months ago보내지 않고, 버렸다책 두 권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책들을 쓰레기통에 쑤셔 넣으면서 여태껏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책을 ‘버린’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책을 보낸 적은 있어도 버린 적은 없었다. 나에게는 이제 필요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할 것 같은 책은 동네 헌책방에 가져다주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다지 필요 없을 것 같은 책을 보낼 때는 노끈으로 묶어…yunta (59)in krsuccess • 2 months ago묻은아주 가끔, 글의 의도를 훼손하는 댓글이 묻는다. 그런 댓글 대부분은, 아니 전부가, 자신이 ‘지식’이 많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 목적이다. ‘지식’에 따옴표를 친 이유는 부정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뭔가를 공부하거나 경험을 쌓아 얻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가 아니라 ‘기계적인 지식’이다. 지식을 알리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이 많음’을…yunta (59)in krsuccess • 2 months ago클래식한“매우 클래식한 오아시스나 너바나의 음악이 흐르고” 얼마 전 한 소설을 읽다가 이 문장을 만났다. ‘매우 클래식한’이라는 형용形容이 눈에 쑥 들어왔다. 묘했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어울리는 묘사였다. 오아시스가 비틀스의 감성을 오랜만에 재현해서 클래식하다고 한 걸까. 메탈이 점령한 시대에 난데없이 6~70년대의 클래식한 록음악 스타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