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2021)을 본 소회

in aaa •  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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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문화 컨텐츠의 최고봉은 결국 세계관의 창설 아닐까 싶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가상의 세계와 종족 뿐 아니라, 가상의 언어까지 만들곤 하는데 이 얼마나 비생산적인 일이냐. 이미 있는 언어를 배우는 것도 아니고 가공의 언어를 만들어내다니. 토익 학원과 중국어 학원 다니느라 젊은 시절을 다 쏟아도 보통 그 언어를 제대로 구사 못하는 게 현실인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만큼 '비생산적' 일을 해도 먹고 살 수 있고, 작가가 컨텐츠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이야기이지 않는가. 우리는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종을 고소득 지식 계층으로 생각하지만 원래 그런 일은 대부분 사회에서 적당히 평민과 귀족 사이에 있던 계층에서 하던 것이고, 원래 시간이나 돈도 많고 지식을 아무렇게나 펼쳐도 되는 사람들은 그런 걱정 없이 집필 활동에 몰두할 수 있었다. 영화 <버닝>의 스티브 연이 말한, "노는 것이 일하는 거니까."라는 말은, 무산 계급에게는 참으로 사치스럽고 철 없는 말이 아닐 수 없으나 냉정하고 서글프게도 그것은 현실이다.

사람들은 SEGA라는 게임 회사를 대부분 들어보았고 돈도 잘 번다고 생각하지만, 워해머라는 세계관 하나 잘 뽑아서 프라모델 팔고 사는 게임즈 워크숍이 SEGA보다 매출은 물론 영업이익률도 훨씬 높다는 것은 잘 모른다. 토리야마 아키라가 만든 세계관 드래곤볼의 연재가 끝날 때마다 일본 문부성 대신이 연재 지속을 간곡히 요청했고 토라야마 아키라 혼자 낸 세금이 아이치현의 다른 세입 전부를 합친 것보다 높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유명 SF 작가 아서 C. 클라크가 유일하게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비견된다는 듄 시리즈 영화를 보니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와 하나의 사가가 되고, 계속해서 재창조되며 팬층을 다지는 이 선순환을 보며 한 명의 천재가 수십만을 먹여살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이 간다. 광대한 아라키스의 사막과 모래 괴물을 진짜 대자연을 다큐멘터리로 보는 것만큼 경이롭고, 프레맨이라는 사막 종족을 설명하는 것은 어떤 문화인류학 교과서나 세계 문화 기행보다 흥미로우며, 묵시와 환상은 기복 신앙으로 범벅된 많은 종교의 경전보다 진중하며, 행성을 둘러싼 각 가문의 암투와 정치적 역학 관계를 다루는 것은 진짜 역사책만큼 재미있다.

"삶의 신비는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내는 데에 있다."

"위대한 자는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부름에 응답한다."

와, 삶의 고수만 해볼 수 있는 멋진 말, 여느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말들보다 훨씬 훌륭한 말 아닌가. "빨리 빨리"를 외치고 술을 숙성시킬 시간이 부족해 아스파탐에 알코올을 탄 소주가 제일 많이 팔리는 우리 나라, 그런 나라에서 장기말을 직접 조립하고 채색하여 수시간을 플레이하는 미니어쳐 게임이 흥하지 않은 것처럼, 이 영화는 한국 관객들이 보았을 때는 지루할지 모르지만, 느긋하고 충분히 즐길거리를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보물 아닐까. 넉넉한 시간과 '즐길 수 있는 소양'이라는 것은 다분히 계급적이기도 하며 어린 시절부터 노출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지루하다는 평가는 다소 서글프며, 반면 오래 전 <반지의 제왕 1편>이 처음 나왔을 때 반응과 달리 "재밌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기쁘기도 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로 그 나라 문화 컨텐츠의 진정한 힘은, 그들이 보유한 진지한 세계관의 숫자가 얼마인지에서 좌우된다고 본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듄 시리즈, 워해머, 스타워즈, 크톨루 신화 등등, 영미문화권이 가지고 있는 기라성 같은 세계관의 수는 수 없이 많다. 일본의 경우 드래곤볼이나 건담, 은하영웅전설, 파이널 판타지, 포켓몬과 같은 것들이 있는데 이러한 시리즈의 힘은 1회에 그치지 않고 수십, 수백년 간 계속해서 파생되는 컨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에 있다. 한국의 경우 최근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 등 괄목할 만한 컨텐츠의 성장이 있고 BTS로 대표되는 등 분명 세계 문화 산업에서 당당히 한 축을 차지하기 시작했지만 끝없이 세계관을 확장할 수 있는 하나의 사가는 아직 부족한 듯 싶어 아쉽다. 드래곤 라자 세계관을 만든 이영도가 만약 영미권에서 태어났다면 이 수준에 그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결국 한국의 독자나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라면 아직은 좀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요즘 웹 소설 시장이 핫한데, 몇 년 내로 거대하고 웅장한, 듄 시리즈만큼 실제 역사와 자연만큼 흥미로운 어떤 세계가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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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ㅎㅎㅎ 강추합니다

듄 볼 걸...ㅠㅠ

보고 나면 다음 편 때문에 감질맛나긴 합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