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스타 시스템의 붕괴 이후 할리우드 영화 속 여성 재현
60년 할리우드 영화의 여성과 남성의 역할, 비중에서 나타나는 경향
해스켈의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1962년 혹은 1963년에서 1973년까지의 10년간은 영화사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기간이다. 여성 해방 운동을 필두로 실제 삶에서의 여성의 요구와 힘이 강해지면서 상업영화에서는 그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던 것이 분명하다. <대부>에서처럼 남성다움을 배가시키거나 <이지 라이더>,<허수아비>와 같은 버디 영화의 남성만의 세계로의 도피가 번갈아 일어났던 것이다. 폭력과 폭력보다는 한참 떨어지는 두 번째 대안인 섹슈얼리티로 로맨스를 대치하면서 흥미롭거나 매력적인 여성이 별로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몰리 해스켈, 위의 책, 369.
스타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여성들은 경제적 주도권을 상당히 상실하게 되었다. 스타의 허울좋은 외양을 만들기 위해 이용된 속임수, 배후에서 일어났던 불행한 일들, 내면의 인간성을 희생하고 이미지만을 고집했던 스튜디오 폭군들의 횡포에 대한 증거들은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스타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을 불가피하게 제기한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인간성의 희생을 대가로 스타가 되는 것을 선택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 스타가 되고 싶은 충동, 그리고 스타를 만들어 유지시키고 싶은 스튜디오의 장치는 죽어버렸다. 스타들이 대본작가들이 써준 대사가 아니라 자신들의 대사를 말하는MGM 스튜디오에서의 파티에 대해서 스콧 피츠제럴드가 코믹하게 묘사한 장면은 현실이 되었다. 영화계가 점점 자의식을 갖게 된 것은 여배우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감독이 슈퍼 아티스트로 부상하면서 그들은 고용뿐만 아니라 이미지까지 감독의 처분만 바라게 되었고, 그 이미지는 감독들이 점점 주관적이고 자기 몰입에 빠지면서 원만하기보다는 점점 주변적이 되어갔다. 주요 감독들은 두 파로 나뉘어졌다. 자신의 성적 불안을 여성의 묘사에 쏟아낸 신경증적이고 재능있는 작가주의 감독(와일러, 로지, 펜, 레이, 큐브릭, 페킨파, 니콜스, 프랑켄하이머, 에드워즈, 올드리치, 슐레진저), 그리고 유명 프로젝트 (<전천후의 사나이>, <닥터 지바고>,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저스틴>,<마이 페어 레이디>, <파니 걸>)에다 자신이 잘났음을 나타내는 내용이나 “제작 가치”를 잔뜩 채워서 영양가가 없게 만든 비교적 중립적인 감독(진네만, 와일러, 와이즈, 린, 쿠커)이 그들이다. 몰리 해스켈, 위의 책, 370-372.
1960년대와 70년대 여성들이 맡았던 역할들은 대개 창녀, 창녀 비슷한 여자, 퇴짜 맏은 정부, 정서적 불구자, 술주정뱅이, 정신 이상 소녀, 롤리타, 미치광이, 사이코, 결벽증 환자, 좀비 등이다. 몇 안 되는 나이든 캐릭터는 괴팍한 사람(베티 데이비스 계열), 악당,미라, 그리고 완전한 실수였다. 해방된 여성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고 70년대의 강한 여성이라고 제공된 건 남자 흉내를 내거나 핀업 걸이 총잡이나 롤러 스케이트 경주왕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했다. 몰리 해스켈, 위의 책, 374-375.
1960년대(70년대까지)의 이상적인 백인여성은 여자가 아니라 소녀, 천진난만한 소녀, 우편 주문할 수 있는 커버 걸이었다. 이들은 보통 몸매에 대개 갈색 머리였고, 이들이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증명은 충격과 당황스러움 이상의 감정을 전달할 능력이 없다는 것과 자신의 뜻을 잘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말을 잘 못해야 “진실함”을 증명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몰리 해스켈, 위의 책, 377.
착한 여인들의 역할도 남자들에 의해 종속되거나 밀려났으며 대부분의 영화는 1950년대보다 훨씬 더 높은 비율로 남자들의 영화였다.
해스켈의 말을 따르면 1960년대 할리우드 영화는 1950년대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대부분의 영화는 남자들의 영화였다.<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사이코>에서 <프렌치 커넥션>,<더티 해리>,<스트로 독>까지, 크로우더주의에서 컬트주의까지, 어느 쪽에서 어느 방향으로 보든지 간에 그것은 영화에 있어서 남성의 시대였다. 당시에는 아무도 깨닫지 못했지만 그 패턴은 1950년대에 확립되었다. 니콜라스 레이, 존 프랑켄하이머, 조지프 로지, 빌리 와일더, 스탠리 큐브릭과 같은 감독들이 50년대에 남성과 여성을 다루었던 바로크식 고뇌와 비관주의는 60년대를 지배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이상하게 괴팍했던 영화들, 다른 할리우드 영화뿐 아니라 서로 너무 다른 영화들이 나중에 알고 보니 삶에 대한 근시안적 견해를 서로 공유하고 있었고 이것이 60년대의 공식적 시점이 되었다. 영화 자체가 대중적 오락에서 순수예술로, 고전적인 서사구조와 팀의 생산물에서 한 명의 예술가로 등장해 영화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모더니스트 영화 감독들은 고전 영화 감독을 길렀던 사회로부터 스튜디오라는 소우주로부터 단절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시대정신을 숨쉬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내려야 하는 예술적 결정이었으나, 그 결정은 또한 스튜디오의 붕괴가 그에게 내려준 결정이기도 했다. 몰리 해스켈, 위의 책, 377.
<하인>,<콜렉터>,<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졸업>,<미드 나잇 카우보이>와 같은 영화에는 고의적으로 폐소공포증적인 특징이 있다. 이곳에서는 사회가 양식화되고 종종 일종의 감옥으로 제시가 되며, 여성은 남성의 간수이거나 지나가는 판타지로 전락한다. 몰리 해스켈, 위의 책, 378.
60년대, 7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부상한 남자의 기를 죽이고 거슬리는 여자
D.H.로렌스의 소설은 <여우><처녀와 집시><사랑에 빠진 여인들>로 영화화되었는데 이는 시기상으로 때늦은 감이 있었다. 로렌스의 소설은 성적인 남성 우월주의를 강조하는 남성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미 성(Sex)에 대해 개방하는 행위를 통해 스크린은 이미 로렌스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와 같이 화면에서 여성이 해방되었을 때, 그것은 남성의 판타지에 부응하기 위해서 혹은 캔 러셀과 로버트 올드리치의 악녀의 경우처럼 남성의 최악의 두려움을 확인시키기 위해서다.로렌스는 호손의 여인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밝혔듯이 어머닌가 그랬던 것처럼 여성들이 남성을 남성답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여성의 사랑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치명적이라고 느꼈다. 이러한 변질을 막기 위해 그는 여성에게 지성이라는 것을 전혀 부여하지 않았다.
어머니로서의 여성, 혹은 어머니로서의 아내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은 미국 영화에서 그로테스크한 여성을 만드는 주된 원천이 된다. <베이비 제인>은 우리의 영화의식의 목을 죄고 있는 두명의 스타의 힘을 강조하고 이용함으로써 아들을 놓아주지 못하는 어머니를 암시하고 있다. 그들을 각각 여성으로서 상대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들이 서로를 공격하게 함으로써 처리해버리는 것이 훨씬 쉬운 것이다. 몰리 해스켈, 위의 책, 389.
히치콕 <사이코>(1960)의 마리온
<사이코>는 여성영화와는 거리가 먼 히치콕의 1960년대 호러 스릴러 장르 영화로 히치콕의 영화들에서 주로 여자들은 고문 받고 처벌 되어야했다. 남자들은 그 행위에 깊이 연루되어 있으며 여성들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과 죄가 있다.
히치콕의 도덕적 좌표로서 금발 머리 여성은 로메르의 영화에서 역전되었다. 로메르는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에서히치콕과 동일한 좌표(금발머리=오만한, 거리감을 둔, 갈색머리 = 따스하고, 반응적인)를 사용해서 금발 머리와 갈색머리의 변증법을 형성했다. 히치콕 영화에서 <39계단>의 마를렌 캐롤부터 시작해서 그레이스 켈리, 에바 마리 세인트, 자넷 리, 티피 헤드렌에 이르기까지의 금발머리는 그녀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움켜쥐는 것, 사랑, 성, 신뢰 때문에 비난을 받는다. 그녀는 처벌받아야 하고 그녀의 자만심은 깨뜨려져야 한다. 그래서 그는 여주인공을 끔찍한 시련을 당하도록 강간당하고 새에 공격당하고 살해되는 공포의 긴 여행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플롯 자체는 그들의 얼음 같은 냉정함, 정서적 거리감을 깨뜨리기 위한 메커니즘이다. 킴 노박(<현기증>에서의 진짜 주디), 다이앤 베이커 (<마니>), 수잔 플레시트 (<새>), 카렌 도르(<토파즈>와 같은 갈색머리는 착한 여자, 즉 실용적이고 꾸밈이 없으며 사랑스럽고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으며 모성적이기까지 한 여자이다. 가끔은 너무 지나칠 정도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무리하게 적용하자면 갈색머리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사이코>의 노먼 베이츠의 “어머니”처럼 그들은 소유욕이 강하다. 채플린, 고다르 등과 같이 히치콕의 내면의 여성 혐오증적인 면은 자신을 거부한 그녀를 처벌하기 위해 그녀에게 악독한 인격적 특성을 부여한다. 그녀는 화려한 미모의 소유자이지만 불감증이고, 오만하며, 사랑이 없다. <이창>과 <나는 결백하다>에서 그레이스 켈 리가 분한 명품 복장의 플레시걸은 위험에 처하며, 부티 나는 티피 헤드렌의 석고와 같은 피부는 새에게 찢겨 피투성이가 된다. 히치콕은 자신의 금발머리 여인에게서 어릴 때 남자가 자기를 이용하는 데 대해 너무나 주입식 교육을 받은 나머지 어쩌면 영원히 얼어버린 여자에 대한 추론을 금발머리 여인에게서 끌어낼 수 있도록 했다. <마니>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들의 편을 들지 않는다. 몰리 해스켈, 위의 책, 396-397.
마리온은 일종의 플롯 장치처럼 기능하는 인물이다.문학에서 레드 해링(red herring)이란 훈제 청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이차적 의미로는 무엇인가 감추기 위해 주의를 돌리는 기법을 가리키기도 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플롯 기법으로 맥거핀과 유사해 보이지만 뉘앙스의 차이가 있는 레드 해링은 히치콕의 영화에서 맥거핀과 유사하게 사용됐다. 맥거핀이 기의가 없는 “순수한 기표”로서 극중 인물들에게 중요한 어떤 것이라면 레드 해링은 그러한 의미보다는 영화 내러티브적으로 무엇인가를 의도하기는 하지만 주제를 피하는 방식으로 관객의 주의를 돌리는 것이다. 마리온은 회사돈을 훔쳐서 달아나고 전반부 전부는 그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러한 긴 시간에 걸쳐서 보여지는 마리온의 행위는 실상 레드 해링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도주 과정을 긴 시퀀스로 상세하게 보여주면서 그녀의 심리적 긴장감을 관객이 일정 수준 동일시되도록 한 것은 서스펜스를 위한 것이다.
베이츠 모텔에 다다르기 이전까지 관객은 조마조마한 마음이 되지만 빗길을 뚫고 들어간 모텔에서 그녀를 마중 나온 노먼을 보는 순간 일시적으로 긴장을 늦춘다. 마리온은 노먼이 가져온 샌드위치를 먹고 나서 객실로 돌아가서 사만 달러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가 샤워를 한다. 그러나 샤워 도중 무참히 괴한에게 살해당한다. 이 끔찍한 사건을 포함한 전반부를 레드 해링으로 간주할 수 있다. 영화 후반부에 해당하는 언니 라일라의 에피소드들에 대해 관객은 전반부 사건과 연결지어 아무 것도 예측할 수가 없으며 죽은 마리온은 더 이상 상기되지 않기 때문에 살인의 동기에 대해서도 아무런 힌트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리온의 살해는 내러티브의 한 가운데를 끊고 들어오는데 그것은 예기치 못한 충격이라기보다는 이미 결정은 났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은 시점에서 치고 들어온다.”(Elsaesser, 2012:338)
히치콕이 전반부에 마리온의 시점을 통해 회사에 방문한 손님, 경관과 노먼을 보게 했다면 노먼이 이층집에 가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가져오는 지점부터는 주로 노먼의 시점으로 마리온을 보게 했다. 이 시점의 변화는 마리온을 객체화하고 대신 노먼을 주체화한다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노먼의 시점이 두드러지게 하는 정도다. 모텔 입구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마리온을 내려다 보는 노먼의 시점은 위압감을 주고 마리온에 대해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 시점의 전환은 영화의 레드 해링으로서 마리온의 역할이 다했음을 말해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온은 전반부의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면서 관심을 집중시켰던 역할을 끝내고 허무하게 영화에서 퇴장해 버린다. 때문에 앞서 살해당한 아보가스트처럼 그녀도 라일라가 등장하는 후반부의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레드 해링이 되어 버린다.
히치콕은 마리온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을 별도로 하지 않는다. 마리온이 영화 중간에 주인공이 퇴장한 것은 일반적인 시나리오의 구성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그러한 선택은 히치콕이 기각하고자 하는 마리온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최종적으로 이야기의 핵심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전반부의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사실상 삭제해도 무방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핵심이 노마와 노먼의 정체가 무엇이며 이들은 살인자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마리온에 대해 히치콕은 관객의 어떤 동조감이나 동일시를 의도하지 않았다. 실상 히치콕이 영화 속 여성의 재현에 있어서 양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의 영화가 여성의 감정, 심리를 중점적으로 다룬 예는 그다지 흔치 않지만 영화 속에서 여성은 많은 경우 주의깊고 영리한 여성, 남성에게 독립적인 여성으로 나타났다.
히치콕 영화 속 여성 재현은 관객의 시선의 대상으로서 상정된 여성상을 구현하고 있다. 관음증적인 남성의 시선의 대상으로 재현되지만 그럼에도 여성의 감성과 마음이 영화에서 로맨스를 이루는 결과로 이어지고 그러한 스토리는 서스펜스를 다루는 플롯에서 실제로 테마로서 주제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여성에 대한 히치콕의 양가적인 시선은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을 남성의 기를 죽이고 괴롭히는 괴물과도 같은 존재로 다루면서 나타난다. 그가 여성에게 동조해서 여성 주인공의 심리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진행한 영화는 <레베카>,<마니>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레베카>에서 주인공(조안 퐁텐)은 상징적 어머니와도 같은 세 명의 여성들 때문에 압박감을 느끼고 심지어 레베카의 존재감에 억눌려 죽음의 충동까지 느낄 정도로 지치게 된다. 그녀의 그러한 시간은 남편 맥심이 그를 죽은 후에도 사로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던 전처 레베카를 잊어 버리고 그녀에게 진심을 향하게 해주는 과정에 해당한다.
히치콕이 여성 주인공의 트라우마에 연민을 느낀 영화는 <마니>로서 이 영화에서 마니(티피 헤드렌)는 붉은 색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다리를 불구가 되게 만들었던 사건에서 생긴 편집증적 도착증세를 나타낸다. 그녀는 주의를 잃고 패닉 상태에 이르는데 그 트라우마의 실체로 접근해가는 이야기로서 이 영화의 결말은 해피 엔딩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불완전한 결말일 것이라는 느낌을 남긴다. 헤피 앤딩이 핍진성있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해스켈의 말대로 히치콕의 영화에서 도착증은 해결하기에 너무 뿌리가 깊은 것이어서가 아니라 도착증 자체가 매력의 정수이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몰리 해스켈, 위의 책, 398-399.
히치콕이 마리온을 서스펜스 플롯 내에서 관객을 완벽하게 놀라게 하려는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방식은 그녀의 캐릭터를 살아있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게 묘사한다. 마리온의 역할을 서스펜스를 위한 장치로 규정하면서 영화가 관객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회피하는 전략적 목적에 한정지었다. 영화 이야기의 본안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 시간을 죽이는 역할을 하는 레드 해링으로서 마리온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대신 잘못된 대답을 하는 방식을 나타낸다. 레드 해링은 서사의 기법으로서 회피의 기술이라 하겠으다.
<사이코>에서 마리온의 절도 행위에 대한 영화 속 징벌 여부는 초반에 관객의 가슴을 졸이지게 된다. 죄에 대한 처벌이 영화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인과성을 벗어나는 이야기가 후반부에서 이어질 때 관객은 마리온이 더 이상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다소 균형감을 잃은 이야기의 구성에 의아해하게 된다. 마리온이 훔친 돈 사만 달러는 노먼에 의해 모텔 앞 늪에 수장되어 버리는데 마리온의 행위의 동기로 보였던 사만 달러는 아무 상관도 없이 사라져서 맥거핀을 상기하는 식으로 지워지고 만다.
노먼과 노마의 미스터리는 마리온의 죄와 직접적 연관을 맺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히치콕의 영화들에서 남성은 여성의 이상적인 행위에 깊이 연루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존재로서 그려진다. 그러나 노먼은 마리온을 특정한 이유가 없이 살해한 것처럼 나오고 중요한 것은 후반부의 중심 테마로 부상하는 어머니 노마의 실체가 된다. 영화 전반부 시작부터 관객은 노먼의 비밀,‘살아있는 노먼의 어머니’의 진실에서 멀리 떨어진 채 완벽하게 차단된 상태에 있었다. 그렇기에 노마의 실체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상태에 있으며 그에 대한 호기심이 영화 후반부를 추동하는 모터가 된다.
자넷 리(마리온 역)
앤소니 홉킨스(노먼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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