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a 영화 속 그 공간]한국영화 속 군산

in aaa •  5 years ago 
최근 10년 간 군산에서 찍은 한국영화가 많아졌습니다. 식민 시대의 근대화 풍경부터 개발되지 않은 항구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산에서 찍은 한국영화 몇 편 소개합니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철길마을/군산시 경암동 5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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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이 먼저 생겼을까. 아니면 판잣집들 사이로 철길이 난 것일까. 경암동 철길마을은 철길 좌우로 판잣집들이 이열 횡대로 늘어서 있는 동네다. 지난해 6월까지 기차가 달렸고, 지금도 50여채 가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원래 바다였던 이곳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매립하면서 육지로 변했다. 황무지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곳에 모여들었다. 1944년 신문용지 제조업체 페이퍼코리아가 원료와 제품을 실어나르기 위해 공장이 있는 경암동과 군산역을 잇는 이 철길을 놓았다. 70여년 가까이 매일 수차례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마을 주민들은 철길에 놓았던 화분을 치워야 했고, 널어 놓았던 빨래를 걷어야 했다. 간밤에 내린 눈이 철길 위에 수북이 쌓여있고, 밥 짓는 연기가 현관문 사이로 새어나오는 풍경은 평화롭고 아늑해 보였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태일(황정민)과 호정(한혜진)은 철길마을에서 데이트를 한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공간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설레는 마음을 안고 조금씩 가까워진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제작진이 이곳에서 멜로 영화의 전형적인 데이트 장면을 찍기로 결정한 이유는 “예쁜 장소” 때문이었다고 한다. 는박민정 프로듀서는 “시나리오 상에는 없던 공간이다. 사실 데이트 장소는 뻔하지 않나. 우리는 군산 만의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길 원했다”며 “이곳은 군산의 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면서 태일 같은 남자가 여자와의 데이트가 아니면 언제 이런 곳에 와보겠나. 그래서 이곳에서 반나절 정도 촬영했다”고 말했다. 그는 “판잣집 뒤로 아파트가 있어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군산이라는 도시의 성격과도 잘 어울렸다”고 덧붙였다. 그것이 철길마을의 매력일 것이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빈해원/군산시 장미동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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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노크를 했는데 인기척이 없다. 이른 아침에 찾아온 걸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입이 딱 벌어지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1층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홀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테이블 좌우 양쪽에는 방이 여러 개 있었다. 2층으로 올려다보자 무지개 색깔의 아치로 된 천장까지 뻥 뚫려있다. 2층 복도에도 방들이 있었다. “10시 반부터 영업한다”는 말과 함께 사장님이 주방에서 나온다. 이곳은 3대째 이어지고 있는 빈해원이라는 중국집이다. 군산에는 중국집이 많다. 1950년 당시, 한국과 중국을 오가다가 한국 전쟁이 터지면서 군산, 인천 같은 항구에 정착한 중국인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빈해원은 순수한 중국집이 아니다. 극중 태일(황정민)의 친구이자 고용인인 사채업자 두철(정만식)이 운영하는 이곳은 낮에는 중국집이었다가 밤에는 화투장으로 변한다. 박민정 프로듀서는 “보통 도박장하면 폐창고 같은 곳에서 찍는데 우리는 색다르게 가고 싶었다. 한동욱 감독도 창고 같은 공간에 연연하지 말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했다”며 “로케이션 헌팅을 하던 중 밥먹으러 들어갔는데 ‘간지’가 범상치 않더라. 그래서 운좋게도 이곳에서 찍기로 결정했다”고 빈해원에서 촬영한 이유를 설명했다. <남자가 사랑할 때>는 이곳에는 총 3회차 촬영했다.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벽에 기스 같은 자국이 남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고 한다. 현재 공개된 메인 예고편에서 빈해원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빈해원 지척에 소고기 무국으로 명성이 자자한 한일옥이 있으니 들러보시라.

<범죄와의 전쟁>의 히로쓰 가옥/군산시 신흥동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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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동에는 일본식 가옥이 많다. 일제 강점기 시절, 많은 일본인들이 이곳에 거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제의 쌀 수탈 기지 군산항이 있던 장미동과 함께 신흥동은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히로쓰 가옥은 신흥동에서 유명한 일본식 목조가옥이다. 일제 강점기 군산지역의 유명한 포목상 일본인 히로쓰가 지은 건물이다. ㄱ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 2채가 있고, 건물 사이에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다. 그윽한 운치를 풍기는 건물인 까닭에 많은 영화인들이 일본식 가옥하면 이곳부터 떠올린다고 한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장군의 아들> <타짜> 같은 한국영화가 히로쓰 가옥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최근 <범죄와의 전쟁> 역시 딱 한 장면을 이곳에서 찍었다. 최형배(하정우), 김판호(조진웅) 등 폭력 조직을 일망타진한 조범석 검사(곽도원)가 최익현(최민식)을 만나는 영화의 엔딩신. <범죄와의 전쟁>을 제작한 사나이픽쳐스 한재덕 대표는 “엔딩신은 보충 촬영 때 찍은 거다. 신기하게도 이 장면을 찍을 때 눈이 내렸다. 시나리오에 없던 설정인데 눈이 잘 살아서 엔딩신과 어울리더라”며 만족해했다. <타짜>때 제작부로 참여한 바 있는, <범죄와의 전쟁> 박민정 프로듀서는 “<타짜>의 히로쓰 가옥은 고니(조승우)가 평경장(백윤식)으로부터 화투를 배우는 장소로 등장한다”며 “이때만 해도 집주인이 가옥을 직접 관리하고 있어 집주인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했는데 지금은 군산시에 요청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근처에 아기자기한 일본식 가옥이 많으니 히로쓰 가옥을 둘러본 뒤 동네 한바퀴 돌아볼 것을 권한다.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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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사랑할 때> : https://www.themoviedb.org/movie/258313?language=en-US
*평점 : AA

*<범죄와의 전쟁> : https://www.themoviedb.org/movie/89501?language=en-US
*평점 : 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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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이 많이 조명되는 것 같아요.
빈해원은 실재로 가보니 참 독특하더군요

네 빈해원을 직접 가서 보고 저 글을 썼었는데, 제가 본 중국집 중에서 건축이 굉장히 독특했어요.
군산이 아무래도 개발이 되지 않고 옛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1970, 80,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찍기 좋은 도시라고 하더라고요. ^^

이 곳들이 군산인지도 모르고 봤었네요. 다시 가면 영화가 생각 날 거 같아요.^^

이 영화들 말고도 군산에서 찍은 영화들이 많은데...저는 군산하면 촬영지보다도 맛집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소고기 뭇국, 짬뽕...ㅋㅋ

군산이 이런곳에서 등장했었군요 가봤었는데 못찾아가본 모냥입니다

네, 특히 히로쓰 가옥은 시대극을 찍기 무척 좋은 공간이라 한국영화 제작진들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저도 군산에 다시 가고 싶네요. 저 글을 쓸 때 눈이 펑펑 내린 날 군산에 갔다온 건데...눈이 쌓인 군산항이 그렇게 운치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군산에서 찍은 영화하면 '8월의 크리스마스' 생각이 나요.

맞아요, 초원사진관. ^^ 이제는 너무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서 따로 소개하진 않았어요. ^^ 참 좋은 영화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