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 BACK TO THE PAST
애마부인 / 정인엽
화녀 82 / 김기영
낮은 데로 임하소서 / 이장호
안개마을 / 임권택
꼬방동네 사람들 / 배창호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 정지영
위의 여섯 영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1982년에 제작한 영화이다.
모두 [청소년 관람불가]의 등급을 가지고 있다.
두 영화를 뺀 나머지 네 편의 영화는 모두 연기상 혹은 감독상, 작품상을 탄 영화이다.
(두 영화 : 화녀 82,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여섯 영화 중에 두 편의 영화 제작사가 '화천공사'이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 안개마을)
여섯 영화 중에 세 편이 원작소설이 있는 영화이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 안개마을, 꼬방동네 사람들)
‘1982년의 흥행 베스트 10’ 중 3편의 영화가 있다.
(1위. 애마부인, 2위. 낮은 데로 임하소서, 4위. 꼬방동네 사람들)
이번 기획전에 의미를 부여하자면 이렇다. 1982년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그 해, 그 시대의 시대상을 알아보고, 우리네 부모님은 어떤 시대를 사셨는지를 느껴볼 수 있는기회가 될 거 같아 이렇게 프로그래밍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입장에선, 날 낳으신 1982년. 그 해에 제작된 영화 6편을 부모님께 소개한다.
우선 위의 여섯 영화의 감독은 각각 다르지만,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한 연출자들이다. 정인엽이라는 감독의 이름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지만, 이분 역시도 유명한 분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게다가 영화제목 역시 그 시대 사람들이 아니어도 많은 이들이 알만한 그런 영화들이다. 그럼, ‘영화‘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BACK TO THE PAST’해보자.
- 애마부인 / 정인엽
[애마부인]은 연출자는 다르지만 같은 제목으로 1982년부터 1995년까지 12편까지 제작이 된 영화이다. 그만큼 1편이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본인이 비디오 테이프(VHS)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서야 알게 된, [애마부인]이라는 고유명사화가 되어버린, 이 단어를 영상으로는 그 당시 접해보지 못했다. (내가 중학생 때 [애마부인 12]가 나왔을 것이다.)
가끔 연소자 관람불가 영화를 (예를 들어, [저수지의 개들]이나 [펄프픽션], [트레인스포팅]이나 [쉘로우 그레이브] 등등) 비디오 테이프로 빌려보긴 했지만 [애마부인]을 빌려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름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를 즐겨보던 학생이었지만 그런 영화를 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당시의 내가 생각하는 [애마부인]은 단지 야한 영화, 노골적인 에로 영화라는 인식이 있었다. 예를 들어 [젖소부인 바람났네]같은 영화로 치부한 것이다. (아직 젖소부인 시리즈를 직접 보지 못했기에 이 영화 역시 나만의 선입견이었을 수도 있다.)
[애마부인]을 보고난 후인 지금 생각해보면, [애마부인]은 내가 당시에 봤던 [빨간 영화]들보다 수위가 훨씬 더 낮다고 볼 수 있다. 수위는 낮지만 에로틱한 장면을 잘 찍어서 연출자의 의도대로 영화를 보는 ‘나’는 꽤 흥미진진했다. 이 영화는 분명 ‘스토리‘가 있었다.
- 사족 )) 중학생이었지만 빨간 영화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개방적이고 쿨한 우리 엄마 덕분이다. 엄마는 내가 보고싶다는 영화는 연소자 관람불가의 영화라도 대신 빌려다 주신 멋진 엄마였다. 예를 들어, 그 당시 최민수와 모델 박영선이 주연을 맡아 이슈가 되었던 [리허설]이나 폴 버호벤 감독의 [쇼걸] 같은 영화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그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엄마였다. 그렇게 나의 연소자 관람불가 영화보기는 시작되었지만, [애마부인]은 여전히 나의 관심에 없었었다. *
80년대 후반에 VCR이 많이 보급이 되어 가정마다 한대씩은 꼭 있었던 그 매체가, 1982년 당시에는 점차 보급이 확산되기 시작한 시점일 듯싶다. 그 시대 많은 남성들이 집에서 [비디오]로, 혹은 [영화관]에서 보았을 이 영화를 32년이 지난 현재에, 내가 온라인에서, 어둠의 경로가 아닌 [VOD 서비스]로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 당시에 왜 이 영화가 화제를 일으켰고 12편까지 제작이 되었는지가 궁금해졌다.
애마부인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겠지만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애.마. 영화가 시작될 때 크레딧에 '애마 안소영'이라고 뜨길래 훗, 하고 웃음이 났다. 이내 여자의 이름이 '애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애마부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야한 장면(잘찍은 장면이라 느끼는)을 보다가 라면을 너무 오래 끓여서, 점심으로 불은 라면을 먹게 되었다는 본인의 실제 이야기.
다시 만난 애마의 옛 남자는 애마의 아파트 위층에 산다. 그 남자가 밤에 밧줄과 씨름을 한다. 설마 저 줄을 타고 아래층 애마에게 가진 않겠지? ... 했는데 진짜로 그 밧줄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그 이후부터 진행되는 성적인 장면은 나름 테크니컬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배경음악이 묘하게 깔리는 가운데 그 장면에 집중하다가 라면을 오래 끓여 그만 불어버린 것이다.
애마부인의 이야기는 그 시대의 부부관계, 남녀 간의 문제에 대해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애마가 말을 타는 꿈을 꾸게 되는 그 원인이나, 옛 연인을 다시 만나 성관계를 갖게 되는 배경, 그녀를 사모하는 연하의 청년과 결국 성관계를 갖고 그를 따라 프랑스로 떠나는가, 아니면 곧 출감하는 남편에게 돌아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문제들. 모두 다 앞서의 이야기들로 인해 수긍이 되는 장면들이었다.
결혼하여 아이가 있는 여인에게 닥쳐 온 일련의 사건들이 1982년, 그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이 그런 시대를 살았던 것이다.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이혼을 결심하기 어려운 시대. 외도한 남편이 오히려 성내는 시대. 자신의 오빠가 외도한 것을 알면서도 도리어 시언니에게 당당한 남편의 여동생, 참고 살라고 조언하는 시아버지. 출감하여 다시 같이 사는 남편은 여전히 외박을 즐기고, 전과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 등등.
임동진, 안소영, 하명중, 하재영, 김애경. TV에서 가끔 보게 되는 중년의 배우들, 그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는 것이 꼭 우리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우리 엄마도 저렇게 날씬하고 예뻤는데, 우리 아빠도 참 꽃미남이었던데 하면서 말이다. 그 당시의 서울역, 승용차, 기차, 버스, 중산층의 단독주택, 아파트, 카페를 볼 수 있다는 것도 꽤 흥미로웠다. 스토리가 있는 야한 영화를 보고나서 느끼는 것이, 영화 외적으로 엄마아빠가 겪었던 시대를 경험한 거 같은 느낌도 드니 '영화'는 꽤 괜찮은 매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 사족 )) 영화 속에서 가장 웃겼던 장면은, 애마가 자다가 오두막이 불에 타는 꿈을 꾸고 잠에서 깨어나 빗속을 헤치고 오두막으로 달려가는 장면이었다. 연하의 순수한 청년이 기다리고 있는 오두막에 도착하니, 안 그래도 야한 하얀색 잠옷이 풀숲에 찢겨 길이가 짧아지고 빗물에 밀착되어 몸매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장면이다. 최근 본 [설국열차]에서 마지막 생존자인 요나와 티미가 갑자기 어디서 생겼는지 알 수 없는 털부츠를 신고(기존에 털옷을 득템했던 요나는 그렇다 치고, 티미는 사이즈가 딱 맞는 어린이용 털옷까지 급구했다) 열차에서 밖으로 내려올 때처럼 웃겼다고나 할까.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장면 혹은 사용되는 소품들이 어떨 때는 꽤 순수하게 노골적이어서 연출자의 의도가 쉽게 파악하게 될 때에 나는 인간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해서 재미가 있다. *
- 화녀 82 / 김기영
김기영 감독의 하녀 시리즈 중 마지막 작품인 [화녀 82]. 1982년에 제작한 영화라서 보게 된 이 영화는, [애마부인]의 이야기와 공통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 시대의 부부관계이다. 처음엔 실수로 저지른 정사이긴 하지만 외도하는 남편을 탓하기 보다는 피해자였던 식모 명자(나영희)를 제거하고 가정을 지켜보려고 하는 부인(김지미)의 모습에서 봉건주의적인 시대상을 엿볼 수 있었다. ([애마부인]에서, 봉건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버리라고 애마에게 충고해준 애마의 친구 에리카(김애경)의 말이 떠오른다.)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재밌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배우, 특히 식모 역의 나영희씨 때문이다.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다. 다만 TV에서 많이 보았기에 낯이 익고,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주준영의 엄마로 나와서 아는 것이 전부이다. 18세의 백치미 있는 식모로 분한 나영희씨의 연기는 어색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내가 알고 있던 그 분의 도도한 이미지가 아니어서인지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나영 같이 예쁜 배우가 바보 역할을 하는 것을 본 느낌이라면 비유가 될까.
또한 김지미님 역시, 인자하고 온화한 얼굴의 그녀가 그런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게 되니 그 역시 신선했다. 요즘은 어머니 역을 많이 하시는 김해숙님의 팜므파탈 역할도 그러하다. 1960년 작품 [하녀]에서는 안성기님이 아역으로 나왔다면, [화녀 82]에서는 장서희님이 아역으로 나와 주시니 역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느낌.
- 낮은 데로 임하소서 / 이장호
이 영화는 이청준의 소설 [낮은 데로 임하소서]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이다. 요즘은 소설이나 웹툰 등을 원작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1980년대 당시에는 [문예영화]라 하여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영화가 꽤 많았던 듯하다. [애마부인]과 같은 에로영화가 많이 만들어진 1980년대에, 잠시 후에 소개할[안개마을] 역시 이문열의 [익명의 섬]을 원작으로, [꼬방동네 사람들]은 이동철의 동명의 소설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이 그 시대의 영화 제작 트렌드를 보여준다. 에로영화와 문예영화의 공존.
주인공 요한이라는 한 남자가 시력을 잃고 맹인교회를 운영하기까지 과정들 속에, 과거의 서울역이 있었다. 그 곳엔 젊은 시절의 배우 기주봉님도 있었다. [화녀 82]에서와의 다른 이미지의 나영희님도. 영화를 보면서, 그 영화 속에 들어가 캐릭터에 공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처럼, 32년 전의 오래된 영화를 볼 때엔 배우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는 것이 더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솔직히 영화의 내용에는 별로 감흥은 없었다. 다만 그 시절의 거리 모습이나, 주택의 모습, 사람들의 옷차림, 배우들 찾아보기가 더 재미있었다.
- 안개마을 / 임권택
이 영화 역시 원작이 있는 영화이다. 원작의 제목처럼 [익명의 섬]이 곧 [안개마을]이다. 낯선 마을의 이방인으로 새롭게 등장한 여선생(수옥)의 시선으로 본 깨철이라는 인물은 '폐쇄성과 억제', '자존심과 계산'의 산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해석은 영화 속에서 여선생과 대화를 나눈 남자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에 근거하여 내린 정의이다.
마을 남자들의 '알량한 자존심'과 '얄팍한 계산'에 의해 깨철이가 이 동네에서 때로는 맞으며, 때로는 식사나 숙박을 해결하며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마을 내에서만 폐쇄적으로 성적인 관계를 맺어나감과 동시에 깨철을 대함에 있어서는 자신들의 수단으로써 이용하여 정작 깨철 자신은 성적으로 억압받거나 혹은 억제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의 결과로 새로 부임해 온 여선생은 깨철에게 당연한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년 후, 수옥이 마을을 떠나고 새 여선생이 또 부임해온다. 그 여선생도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 영화의 결말은 정말 섬찟한 것이다. 게다가 관객인 나뿐만 아니라, 깨철에 의해 피해자가 된 수옥이 이 모든 사실을 아는 가운데 그 사실을 묵인하고 그 마을을 유유히 떠나는 것이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유인 것이다. 피해자이면서 또 다른 피해자의 양산을 방조하는 것, 수옥 이전에 또 얼마의 사람들이 피해자로서 사실을 묵인하고 이 마을 떠났을 지를 생각하면 정말 생각할수록 무섭다. 특히, 선량한 얼굴을 한 시골 사람들의 이면까지 들여다보면 더욱 그렇다.
- 꼬방동네 사람들 / 배창호
소매치기였던 한 남자 주석(안성기)은 명숙(김보연)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곧 아이까지 낳는다. 결혼하여 착실하게 생활하다가 자신의 어린 아이를 굶길 수 없어 다시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교도소에 가게 된다. 여러 차례 교도소에 수감된 주석을 매번 기다린 명숙은 그만 지쳐, 그를 떠나 꼬방동네에 자리를 잡게 된다. 출소 후, 택시기사로 착실한 삶을 살아가는 주석은 그녀와 아이를 찾아 이곳 꼬방동네에 당도한다. 그렇지만 이미 그녀(명숙)는 새로운 남자(김희라)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아이와 그녀 주위를 맴도는 그는, 가족에 대한 애착이 있는 남자였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최근에 본 [플레이스 비욘 더 파인즈]라는 영화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영화였다. 주석은 [플레이스 비욘 더 파인즈]에서 라이언 고슬링이 분한 역할과 많은 부분 닮아 있다. 스턴트맨으로 일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는 그는 어느 한 곳에서, 한순간 사랑에 빠진 여인이 있다. 그녀와 1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재회하여 그 둘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의 그녀 역시 이미 새로운 남자와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착실하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단란한 한 가정을 가지고 싶었던 그는 결국 은행털이범이 된다. 아이에게 단지,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싶었던 그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캐릭터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석은 요즘 많이 회자되고 있는 '상남자'라는 표현에 걸맞는 캐릭터이다. '진짜 남자, 남자 중의 남자' 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비단 주석에게 해당되는 표현은 아니다. 명숙의 동거남이자 새로운 남편인 태섭(김희라) 역시 거친 남자지만 명숙을 사랑함에 있어, 그리고 자신의 과거 죄를 인정하는 부분에 있어서 상남자의 매력을 풍기고 있다. 상남자 안성기와 김희라님. 아름다운 외모에 생활력 강한 엄마 역할의 김보연님. 모두 다 매력 있고 공감이 가는 캐릭터라 재밌게 볼 수 있었다. 자꾸만 엇나가려고 하는 어린 아들 역할을 맡은 아역 배우의 어색한 연기를 보는 것도 재미 중의 하나였다.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 정지영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정지영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당시 섹시 이미지를 부각시킨 친자매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1983년도 흥행 6위) 실제 자매인 오수미와 윤영실씨가 극중에서도 자매로 나온다. 각각의 직업이 디자이너와 모델이라 스타일리쉬한 그녀들의 모습이 마치 앙드레김의 의상을 입은 것만 같다. 남자 주인공인 신일룡씨는 남성미를 강조한 듯 근육질의 몸매가 드러나는 민소매 상의를 자주 입고 나오는데, 유사 이소룡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오래된 영화라는 느낌은, 영화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의 뚱뚱한 텔레비전, 안테나가 V자로 길게 뽑혀진 라디오, LP판과 카세트 테이프. 아빠의 옛 사진에서 보았던 장발의 남자 등장인물들, 옛날 승용차 등등.
이미 영화의 반전에 대해 알고 봐서 그런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에 쉽게 빠져들진 못했다. 하지만 갑자기 큰 볼륨으로 나오는 음향효과 때문에 순간 깜짝 놀라기는 했다. 죽임을 당한 혜련(오수미)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장치로써 자주 등장하는 마네킹과 하얀색 옷. 아마도 그 당시에 그런 음향효과나 소품이 순진한 관객들을 많이 놀라게 했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남자 주인공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대변하듯 배경음악이 요란하게 깔리고, 자주 등장하는 (처제인 도희(윤영실)와 형부 성민(신일룡)의) 정사씬에서도 배경음악은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빠지지 않고 흐른다. 게다가 그런 에로틱한 장면은, 관객들도 마음껏 충분히 즐기라는 듯 (과하게) 오래 지속된다. 또한 주인공의 집 조경사로 일하는 남자는 시도 때도 없이 이곳저곳에서 정사를 벌여 주신다.
이 영화가 ‘한국영화에서는 드물게 두 여주인공을 팜므파탈로 등장시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누아르풍 영화’라는 평을 받았다지만, 이러한 의도적인 에로장면을 보면 이 영화를 에로영화의 범주 안에 넣어 보아도 될 것 같다. 흥행 6위까지 했던 영화이기에 아마도 그 당시 많은 관객들의 관심을 받은 영화일 것이다. 당시 관객의 NEEDS에 맞는 영화이면서, 3S정책의 영향을 받은 영화.
한편의 소중한 영화이지만 영화를 수단으로써 사용한 영화를 보면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아는 영화는, 친구이고 그 하나로 순수한 매체이다. 그렇지만 영화가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되도록 좋은 의도를 가지고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라이방을 쓴 혜련이 배신을 저지른 그들(그 둘)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정지화면이 되는 것이다. 그 마무리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내가 느끼기에 지지부진했던 에로장면과는 다르게 깔끔하고 심플한 마무리.
종종 그런 정지장면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화가 있다. 그런 영화들은 이야기를 어떻게 끝내야할지 몰라 허둥대다가, 그렇게 쉽게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기분 좋게 나도 이 글을 마무리해 본다.
이번에 보게 된 1982년도에 제작된 한국영화 6편은, 내게 간접경험과 동시에 ‘백 투 더 패스트’의 기회를 주었다. 1982년에 막 태어난 내가 그 시대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나는 ‘영화’를 선택했다. 1982년도의 시대 상황, 역사 이런 것을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오랜 시간 영화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꾸준히 우리의 삶 속에 함께 성장하고 발전해 온 것을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영화가 과거에 비해 꼭 더 우수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는 것이다. 과거의 영화, 오래된 영화를 보며 느낀 점은 바로 이것이다.
당연하기도 하고 새삼스럽지만, 고전 영화를 보존하고
일반에게 서비스하고 활용하고 있는 기관이 있음에 감사함과 다행인 마음.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서비스를 이용자로서 마음껏 누리는 것. 또한, 우리네 부모님이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가르쳐드리는 것.
우리 세대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알아서 편리하게 다 이용할 줄을 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는 이제 우리가 가르쳐줘야 한다. 이번 기회에 나도 어머니와 아버지께 VOD서비스 이용방법을 가르쳐드리고, 내가 봤던 1982년도 영화를 보시도록 권하고 싶다. 보고난 후엔 그 당시의 이야기를 부모님께 들어보고싶다. 부모님과 공유한 영화와 함께 1982년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 벌써부터 두근두근.
★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매년 진행하는 <도전 나도 프로그래머> 이벤트에 2013년 응모했던 글입니다.
★★
위아더나잇의 <별, 불, 밤> 추천합니다. 연인과 '별'을 세며 보내는 '불' 같은 '밤'을 아름답게 표현했어요. 밤바다와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르는 곡입니다.
" 불이 타오르네 이거 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