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 이레이즈드> : 나를 지울수록 지워지는 것들

in aaa •  4 years ago 

‘재러드’(루카스 헤지스)는 전도사로 활동 중인 아버지 ‘마셜’(러셀 크로우)과 헌신적인 어머니 ‘낸시’(니콜 키드먼)가 꾸린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 독실하게 종교를 믿는 청년이다. 그는 자신이 믿는 신에게 구태여 질문을 던질 일이 없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지점까지, 그는 기독교적인 윤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동성에게 끌린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 자신이 믿었던 종교와 그것에 뿌리내린 관계들 그리고 그 속에서 갑자기 이단적 존재가 된 자신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다. 그를 ‘교화’하기 위한 전환치료소 ‘러브 인 액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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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인 액션’에 들어가면서부터 그곳의 규율들이 적용된다. 치료과정은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지만, 참가자들은 그들이 무작위로 거는 전화에 매일같이 응답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참가자의 모든 기록을 열람하고 보관할 수 있지만, 참가자들은 전환치료소 안에서 있었던 일을 외부에, 심지어 가족에게도 발설하면 안 된다. 이런 찝찝한 규율들로 시작된 치료였지만, 초반에는 꽤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러브 인 액션의 책임자 ‘사이크스’(조엘 에저튼)은 1달러짜리 지폐를 예로 들면서 “상처가 나도 우리의 가치는 그대로”라고 이야기하며, 참가자들의 전환 의지를 북돋는다. 재러드도 처음에는 러브 인 액션의 치료과정에 큰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러브 인 액션에서 벌어지는 비상식적인 치료과정에 그는 점점 자신의 세계였던 종교 자체에 의문을 가진다.

러브 인 액션에서 하는 전환치료의 시작은 가족력을 찾는 일이다. 가족 중에서 누군가가 동성애적 행동, 마약, 난교 등 종교와 위반되는 행동을 했는지를 참가자 스스로 찾아내게 한다.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재러드는 어머니에게 물어 겨우 ‘여성적’이었다던 외삼촌 빈센트를 지목한다. 이렇게 가족력을 찾는 이유는, 자신은 종교적으로 완전히 무결한 존재였으며 신의 의도가 아닌, 타인(인간)의 영향으로 더럽혀졌음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와 연관되어 이어지는 치료는 바로 그 대상을 증오하는 마음을 심는 일이다.

그렇게 참가자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종교에서 오는 개인적 혼란을 ‘타인에 대한 증오’라는 이름으로 전가시키는 것을 훈련받는데, 그렇게 되면 가장 먼저 찢겨져 나가는 것이 ‘가족’이다. 참가자들이 치료소까지 오게 되는 과정에서 가장 심하게 부딪혔던 관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람이 사는 내내 영향을 받고 갈등하는 관계가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개인은 죄인이 되고, 가족은 쪼개지며, 신은 손쉽게 전능하고 무결한 존재가 된다.

전환치료소에서 재러드와 함께 치료를 받는 치료자들은 그에게 ‘연기하라’라고 조언한다. 바뀔 수 없다면, 연기를 해서라도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장기 치료를 위한 시설에 묵게 된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러브 인 액션의 전환치료 중에서 ‘남성성’을 연기하도록 가르치기도 한다. ‘남성적’이라고 생각되는 몸짓, 체력, 담력 등을 연습하고 연기하다보면 ‘진짜’가 된다는 식이다.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에 대한 분류는 매우 쉽고 간단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유아기 때부터 그렇게 교육받아왔기 때문에 머리로도, 몸으로도 그것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다만 이제는 ‘의식적으로나마’ 그러지 않기로 노력할 뿐이다. 이런 이분법을 떼어내고 싶지만, 이미 문화로, 교육으로 몸에 베어버린 이상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나와 다른 남을 응시한다. ‘나’를 표현하는 감출 수 없는 방식들이 타인들에게 그들과 ‘동등한 타인’으로 인식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시선과 정적 그리고 그들의 머뭇거림에서 알 수 있다. 그렇게 ‘구분되는 감각’을 느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연기하는 것이 분리되는 것보다 편리하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가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규정들은 다시 학습된다.

이런 연기들이 모여서 ‘진짜 같은 연기’가 탄생된다. 그리고 결국 연기일 뿐인 그것을 따라하면서 느끼는 것은 ‘진짜’와는 전혀 다른 ‘나’라는 존재다. 나와 다른 것을 연기하는 일이 지속되면, 그것이 내 인생에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연기가 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결국 연기는 어쩔 수 없이 연기일 뿐 ‘진짜 내’가 될 수는 없다.

재러드는 전환치료소에서 남성성을 연기하기를, 타인을 증오하기를, 자신의 변화를 거짓으로 꾸며내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재러드는 동료 참가자 ‘캐머런’의 가족들을 불러, 그를 성경으로 때리게 하는 의식을 보고나서 발작하듯 그곳을 빠져나온다. 전환치료소에서 ‘교화’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일들은 재러드가 그동안 믿었던 세상을 송두리째 부정하게 만들었다. 신과 종교의 이름을 빌려 개인의 존재를 지우는 현장들을 보고 겪으면서,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재고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는 자신에 대한 확신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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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자비에’와 ‘헨리’라는 사람을 만났었다. 그자비에는 재러드에게 신과 자신을 동시에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었다면, 헨리는 그를 성폭행했던 사람이다. 심지어 헨리가 재러드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그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려, 재러드는 반강제로 커밍아웃을 하게 된다. 재러드는 종교, 그리고 아버지가 이 둘을 모두 이단적 행위로 덮는 것에 분노한다. 특히 종교가 성폭행 피해자인 그의 상처를 감싸고 보듬는 것이 아닌, 피해를 자신의 죄로 인식하게 강요하는 것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낀다. 동시에 종교의 규율대로만 자신을 대했던 아버지에 대한 믿음도 잃어버린다.

낸시는 남편도 신도 사랑하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로 한다. 그녀는 전환치료소에서 데리고 나가달라는 아들의 절박한 전화에 바로 달려가, 러브 인 액트에서 재러드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재러드와 마셜의 관계가 회복되기까지는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마셜은 타임즈에 실린 재러드가 전환치료소에 대해 쓴 기사를 읽고서야 비로소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시선으로 재러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노력하기로 한다.

우리는 사람의 성장과 변화에 대한 가능성들이 무한하다고 믿는 반면에 ‘개인을 개인답게 만드는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존중과 이해는 부족하다. 동등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의 일이다. 그렇기에 이는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일부가 된다. 따라서 그것을 지우려고 하는 일은 곧 세상에서 한 사람을 지우려고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 된다. 한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그와 연결된 모든 관계들이 무너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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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치료소의 일, 특히 끝내 자살을 선택한 캐머런에게 행해진 일들은 살아있는 한 사람을 내면에서부터 죽이는 살인행위다. 실제로 가족들이 그를 성경으로 때리게 했던 강당은 장례식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꾸몄다. 가족들에게 성경으로 매를 맞으면서 캐머런은 극단적인 관계의 단절을 체험했을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죽음을 체험했다. 그리고 자신을 부정할 수 없었던 그는 종교 혹은 전환치료가 예고한대로 죽음을 선택한다. 이제는 그와 연결되어 있는 관계들이 그의 죽음을 상실이라는 이름으로 체험할 차례다. 성경에 맞아 죽은 아들에 대한 상실의 슬픔을 그들은 어디서 위로받을 수 있을까. 종교에 적힌 단 하나의 규율에 대한 사람들의 무자비한 맹신이 종교가 말하는 생명과 사랑, 유대들을 역설로 만든다.

재러드는 차창 밖으로 손을 뻗는다. 낸시가 그 행동을 통해 손이 잘린 사람이 있다는 기사를 보내 위험을 경고했음에도 그는 손으로 바람을 쓰다듬고 유영하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그가 자신의 사랑과 자신을 인정하는 것은 그런 일이다. 틀 밖에 있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 그는 손이 잘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 일을 타인의 뜻 때문에 멈추지 않기로 한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지워지지 않기 위해서.

https://brunch.co.kr/@dlawhdgk1205/211

영화 URL: (https://www.themoviedb.org/movie/472451-boy-erased)
별점: (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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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지 더울 듯 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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