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버지니아 에피라)은 오랫동안 해왔던 심리치료사를 그만두고 작가의 길을 걸으려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다 할 이야기가 없다. 옆에서 출판사 직원이 열심히 책의 소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시빌은 그저 앞에 돌아가는 회전초밥들만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시빌은 그렇게 흘러가는 순간들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낚으려 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수확은 없다.
세월을 낚는 낚시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시빌에게 운명처럼 전화가 걸려온다. 그녀가 상담을 접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응급실에서 응급환자를 연결해주었던 것이다. ‘마고’(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 임신 2개월이지만, 아이를 낳을 자신이 없다. 시빌은 절박한 마고의 목소리를 밀어내보지만,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결국 시빌은 마고를 상담하게 된다.
마고는 시빌이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한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신인 여배우이고, 남자친구인 ‘이고르’(가스파르 울리엘)는 유명 배우이다. 이고르는 감독 ‘미카’(산드라 휠러)와 사귀며 마고와 내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마고는 이고르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다. 복잡한 삼각관계에 더해진 비극은 이고르의 추천으로 마고가 미카의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촬영지는 땅에서 멀리 떨어진 활화산이 타오르는 섬이라는 점이다.
마고는 시빌에게서 확신을 얻고 싶어 한다. 낳아봤자 서로에게 원망이 될 것 같은 아이를 떼어낼 확신. 하지만 시빌은 계속해서 그녀에게 확신을 보류하게 만든다. 그 지점에서부터 시빌은 이미 그들의 사랑놀이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환자인 마고를 자신의 소설의 인물로 만들어 세 사람의 관계를 굴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소설로 옮긴다. 소설을 뽑아내려면 마고를 계속해서 극단으로 몰고 가야 한다.
마고는 결국 활화산이 있는 섬으로 연기를 하러 간다. 하지만, 마고의 불안정한 상태는 시빌까지 그 섬으로 불러오게 하는데, 이는 소설 밖에서 전지적이었던 시빌의 위치가 1인칭으로 그녀의 소설에 인물로 추가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곳에서 마고, 미카, 이고르의 관계 사이에서 관계 사이의 빈자리를 대신하면서 복잡한 세 사람의 관계를 더욱 엉망으로 만든다.
시빌이 마고의 이야기에 빠져든 것은 그녀의 과거와도 연관되어 있다. 불안정한 관계의 남자친구 사이에서 임신이라는 사건을 맞게 된 이야기는 마고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시빌 또한 전 남자친구인 ‘가브리엘’(니엘스 슈나이더)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시빌은 마고를 상담하면서 계속해서 과거를 회상한다. 그 당시에 불안했던 자신, 남자친구에게 배신당한 마음을 태어난 아이에 대한 희망으로 대신했던 자신,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낳은 딸을 매일 같이 바라보는 자신. 시빌은 마고에게서 자신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개입한 이야기는 전지적인 동시에 1인칭 시점인 소설이 된다.
활화산에서의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시빌은 영화와 소설, 두 창작물의 창조주가 된다. 그녀가 개입한 두 창작물은 눈물이 흐를 정도로 만족스럽다. 하지만, 시빌의 인생은 그녀가 만들어낸 이야기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무너져 내려가고 있다. 소설을 쓰면서 맺어졌던 관계들은 모두 그녀의 존재로 인해 흩어졌으며, 현재의 관계들도 소설을 쓰면서 침범한 과거들로 인해 그녀를 외면해버린 상태이다. 그렇게 시빌은 활화산이 타오르는 섬에서 신의 놀이를 했던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결국 시빌은 인생에서 튕겨져 나와 관계들에게서 온기를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인생에서 거리를 두고 캐릭터를 보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그녀의 말마따나 인생 자체가 소설이 되는 듯했지만, 삶은 그렇게 쉽게 정의 되지 않는다. 전 남자친구인 가브리엘 사이에서 낳은 딸이 그녀에게 묻는다. “제 아빠는 누구에요?”. 과거가 현재가 되어서 불시에 인생을 관조하고 있는 그녀를 찌른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가 없다. 그녀는 자신의 무너진 인생을 똑바로 쳐다볼 수밖에 없다. 신의 놀이를 흉내 냈던 한 인간은 결국 과거에서 현재를 더해 미래로 흘러가는 피할 수 없는 삶의 흐름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 제 24회 부산 국제영화제
https://brunch.co.kr/@dlawhdgk1205/196
영화 URL: (https://www.themoviedb.org/movie/559401-sybil?language=en-US)
별점: (AA)
@tipu cur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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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창작의 산물인데, 주변 사람을 이용해 인위적 사건을 만들어 소설을 쓴다면 진짜 창작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재미있는 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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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 설정이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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