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1861 - 1865)이 한창 진행중이던때 미국 남부주들은 전쟁이 끝난 뒤 중남미를 침공, 병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북부와의 휴전을 통해 두개로 갈라진 국가가 될 경우에 대비해 중남미를 흡수해서 방대한 국토와 인구로 공업이 전무한 남부의 국가경쟁력을 보완하려는 계획이었다. 남부주들은 북부의 간섭없이 노예제도를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영토를 원했고, 아직 국력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안정이 되지 않은 멕시코, 브라질 등은 점령당하기만 기다리고 있는 빈땅으로 보였다.
남부주들은 전쟁중에 멕시코에 첩보원들을 보내 민란을 일으켜보려고 하기도 하고, 브라질 아마존 강 유역을 정탐할 첩자들을 보내기도 했지만, 전쟁에서 지면서 다 헛일이 되고 말았다. 앞에 먼저 브라질에 침략경로를 살펴보러 갔던 남부 미국인들은 결국 남부 골수 노예주의자들이 망명할 땅을 알아보는 일을 하게 됐다.
전쟁이 끝난 다음해인 1866년에 아직 노예제도가 합법이던 브라질 상 파올로주에 적게는 10000명에서 많게는 20000명의 남부 미국인들이 망명해서 아메리까나라는 도시를 이뤘고, 일부는 지금까지 살고 있다. 미국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의 부인의 종조부도 그때 브라질로 망명한 사람들 중 하나였고, 카터도 조지아 주 주지사 시절에 아메리까나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논란이 된 남부기를 브라질의 아메리까나 시에서도 한동안 사용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