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잡설_01] 어떤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은가

in anicreator •  7 years ago  (edited)

얼마전에 받은 질문이었습니다.

"어떤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은가?"

당시 이직에 관련된 면접을 본 상태였기 때문에
본업에 관련된 pd로서의 대답을 할 수밖엔 없었습니다.

"현재 만들었으면 하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없다."

저도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고 싶어하는 한 사람입니다만
피디로서 '하고 싶은' 혹은 '만들었으면 하는' 애니메이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프로젝트로서 이야기 구조와, 사업적 모델 등이 나와있어야 한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면서는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내가 좀 더 장황하게 이야기를 했어야 하나'
'나한테 기획 일까지 전부 떠맡기고 아무것도 안하려고 하나'
'이 참에 감독 한다고 해볼까'
'라인피디로 면접 봐놓고 다른 일도 시키려고 하나'
등등....

그리고

내가 만들고 싶었던 애니메이션은 무엇인가... 를 조금 더 생각해보았습니다.

현재 30대 후반이면서 애니메이션을 좋아했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나 <카우보이 비밥>을 좋아하실겁니다.
아마 저도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아니었으면 현재 애니메이션 일을 안하고 있을 수 있었을겁니다.
(돈도 더 벌 수 있었을거구요....ㅠㅠ)

아래는 제가 에반게리온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의 액션 장면입니다.
사실 액션장면이 나오는 이전에 주인공 이카리 신지가
"나는 이카리 신지, 에반게리온 초호기의 파일럿입니다!"
라고 외치는 장면이 가장 좋습니다만... 뭐 이건 전체 스토리를 봤을 때 그의 성장이 보이는 장면이구요.
모든 에피소드에서 액션이 나오지 않으면서도 액션이 나오는 에피소드에서는 그 강도가 엄청난 것이 에반게리온의 특징이었죠.

<카우보이 비밥>은 에피소드 하나하나의 작품성이나 연출력, 음악 등등 하나도 빠짐 없이 완벽에 가까웠다고 생각됩니다. 캐릭터들도 하나하나 너무 좋구요. 캐릭터들의 성격과, 과거가 뒤엉켜 복잡한 에피소드가 나왔다가, 쉬어가는 에피소드도 나왔다가 하는 것도 좋고, 에피소드에 나오는 단역들과 엮이는 이야기들도 깊이가 있어 다시 보고 다시 봐도 너무너무 좋습니다.
<카우보이 비밥> 또한 액션에서 아쉬움이 없죠.

(영상은 유투브에서 대충 긁어서... 생각보다 영상이 잘 없네요. 문제되면 없어질겁니다 ㅠㅠ)

하지만 이런 영상들을 어찌 보고 안좋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처음에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만 할 때는
어른들도 좋아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 잘 만들어지는 것에 열광했고

애니메이션을 업으로 살면서는
애니메이션을 잘 만들기 어렵다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우리나라 시장에는 대부분 유아용 tv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에 또 다시 한계를 느끼고
경험이 쌓이다 보면 유아용 애니메이션마저도 사업적으로 돈이 되지 않는 현실에 좌절을 느끼게 됩니다.

돈을 버는 회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제대로 '굴러간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회사는
감히 말씀드리지만 손에 꼽습니다.
사업 진행되는걸 보면... 5년 후에는 몇 회사 안 남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회사들이 또 생겨날 테니 많은 회사들이 있긴 하겠죠.

지금도 10년 넘은 회사는 많이 있습니다만...
일반 사람들에게 인식이 된 애니메이션은 거의 없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줄 겁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사람들도 한국 애니메이션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더 많이 알고 있으니까요....

여튼 다시 돌아와서...

제가 가장 만들고 싶은 애니메이션에 가장 가까운 애니메이션은

위의 두 작품이 아니라...
<FLCL(프리크리)>입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만들었던 '가이낙스'가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대박이 나고 난 후에
투자가 잔뜩 들어와 마음껏 만들었던 애니메이션으로 얼마나 자유롭게 마구마구(?) 만들었는지 보이는 애니메이션이고
그만큼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재미있어하며 만들었는지도 보이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아래는 첫 화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보통 일본 애니메이션은 디즈니로 대표되는 미국 애니메이션에 비해 비용 절감을 위해 프레임을 적게 쓰고 어쩌고 한다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이 장면을 보면... ㅎㅎㅎ 다른 면으로 막나갔다는 걸 아실 수 있을겁니다.
상상력과 표현력에 있어서 너무나도 자유롭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자유롭고 파격적인 장면은 애니메이션에 만화책을 가져온 장면이죠.

미야자키 하아요 감독이 만드는 것처럼 뛰어난 이야기가 있는 작품을 하고 싶기도 하고
픽사에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처럼 잘 다듬어진 이야기의 작품을 하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프리크리>처럼 즐겁게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는 토양이 빨리 만들어지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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