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뭐가 뭔지 잘 모르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아이들은 우리를 믿으니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아느냐고.
그래서 남자는 남들을 따라했다. 아는 척했다.
아이들이 응가는 왜 갈색이고,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북극곰은 왜 펭귄을 먹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아는 척했다. 아이들은 나이를 먹었다. 가끔 그가 그걸 깜빡하고 아이들 손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 때가 있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열두 살짜리에게 네가 어렸을 때는 내가 너무 빨리 걸어서 네가 달려와 내 손을 잡았다고, 그때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손바닥에 닿았던 너의 손끝. 내가 얼마나 많은 일에 실패했는지 네가 아직 몰랐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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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는 것이 끔찍한 이유는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고, 앞으로는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세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일을 하고 공과금을 납부하고, 치실을 쓰고 회의에 늦지 않고, 줄을 서고 서식을 작성하고, 케이블과 씨름하고 가구를 조립하고, 자동차 차이어를 교체하고 전화 요금을 내고 커피머신을 끄고 아이들 수영 수업을 잊지 않고 신청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일상이 우리 머리 위에 "잊어버리지 마!"와 "잘 챙겨!"로 이루어진 폭탄을 새롭게 투하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내일이면 또 다른 폭탄이 위에서 쏟아질 것이기에. 우리는 여유롭게 생각하거나 숨을 돌리지 않고 그냥 일어나서 그 산더미를 헤치고 나아가기 시작한다.
회사나 학부모 간담회나 길거리에서 가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남들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아는 것 같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아는 척해야 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남들은 여러가지를 감당할 여유가 되고 여러가지를 잘 다룰 줄 알며 그러고도 에너지가 남아서 더 많은 것을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남의 집 아이들은 수영을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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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무엇일까? 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복잡한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가 진실이 복잡하길 바라는 이유는 먼저 간파했을 때 남들보다 똑똑한 사람이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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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특정 나이까지 부모를 무조건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사랑하는 이유는 단 하나, 부모가 자기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은 어쩌면 맞는 말일지 모른다. 부모와 형제자매가 당신을 평생 사랑할 수 있는 것도 똑같은 이유에서다.
진실, 세상에 진실은 없다. 우리가 우주의 경계에 대해 어찌어찌 알아낸 게 있다면 우주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뿐이고, 신에 대해 아는게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목사였던 어머니가 가족들에게 요구한 것은 간단했다. 최선을 다하라는 것.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를 심으라는 것.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구하라는 것.
<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베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