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와 그의 리버럴 아트에 대하여

in art •  7 years ago 

위대한 선구자, 생산적인 자아도취자, 현대의 개척가, 인류의 혁신가, 유일무이한 최고의 리더, 진정한 예술가.
나의 멘토이자 스승, 영원한 이상향.

0

난 스티브 잡스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비록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는 잡스의 지인 다수에게 평가절하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완전히 무시할 수만은 없다. 잡스라는 개인을 입체적으로 상상하며 이입할 수 있는 여러 이야깃거리들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왜 잡스에게 그토록 열광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정리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스티브 잡스는 내가 항상 갈망하는 창조적 인간의 완벽한 상(想)이다. 어렸을 적 픽사(PIXAR) 전시회에서 그동안 감탄해왔던 ‘다른 세상의 물건 같은 전자제품’들 뿐 아니라 ‘환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해준 애니메이션’들 까지도 잡스의 머리에서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순간이 아직도 떠오른다. 당시 들었던 감정은 순수한 경탄과 진심어린 존경심이었다. 난 꽤나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와 기계 다루기라는 두 분야에 종사하고 싶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들은 언뜻 멀어 보이지만,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교차하는 만나는 두 분야다. 그 점에서 예술을 창조하는데 기술을 이용하고, 기술을 다루는 동시에 예술을 하며 자신의 창조물로 세상을 뒤흔든 잡스는 내 미래의 이상과 겹쳐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자신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열정과 모든 경험들이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가치관, 항상 극한을 추구하고 변화를 갈망하라는 반항아의 기질 역시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수많은 명언들과 드라마틱한 행적들 사이에서도 나를 가장 크게 움직였던 것은 잡스의 누구와도 달랐던 그만의 시각, 그렇기에 누구와도 달랐던 그의 삶 자체다. 나는 잡스의 삶을 크게 세 가지 키워드로 읽었다. 첫째는 가장 널리 알려진 ‘직관’, 둘째는 ‘전인(全人)’, 앞의 키워드들을 포함한 모든 것이 통합되어 발현된 진정한 ‘창조’가 그것이다.

1

청년 잡스가 인도 여행을 다녀와서 서구 중심적 사고의 한계를 목격하고 직관과 감성의 힘을 깨우쳤다고 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잡스가 선불교 스승을 둘 정도로 동양사상에 심취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서양의 논리적 사고와 동양의 감각적 직관의 만남은 잡스가 평생을 가져간 통합적 사고의 시작이었다. 그에게 직관은 제품이 심플하고 직관적이어야 한다는 것보다 훨씬 이상의 의미였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이 우주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러한 종류의 질문들에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 누구도 논리적인 해답을 내놓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존재의 의미라는 수수께끼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해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핵심은 ‘어떠한 느낌을 갖느냐’에 있고, 이것은 주관적인 체험과 인식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꺼지지 않는 열정과 목표를 부여하주기에 창조적 사고의 기본이 된다. 잡스는 영적 체험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비전이자 기가 막히는 통찰인 ‘우리는 우주에 흔적을 남기러 왔다(We are here to put a dent in the universe)’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우주 속 한 존재로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 의미의 답을 깨닫는 일은 우주에 흔적을 남기는 데 가장 우선적으로 행하여져야 하는 일이다. 요가의 아버지 파탄잘리(Patanjali)가 말했듯이 어떤 위대한 목적과 특별한 목표에 영감을 받으면 모든 생각은 속박을 벗어나고 정신은 한계를 초월하게 되어, 꿈만 꾸던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직관은 잡스를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었다. 잡스가 동양에서 배워온 것 중 하나가 명상인데, 참선을 배워본 적이 있는 적이 있는 내 경험에 비추었을 때도 명상은 더 높고 맑은 정신 너머의 것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임이 틀림없다. 정신 너머의 비물질적인 그 무언가에 대한 생각은 인류가 사고를 시작한 이래로 수많은 형태-멀게는 동양의 ‘도’나 ‘기’, 가깝게는 스타워즈의 ‘포스’ 등-로 변주되어 왔으며, 심지어는 몇몇 지식인은 그 무언가를 진정한 신 그 자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것의 본질은 ‘상상력’이다. 인간의 감성을 그 누구보다 신봉했던 낭만주의 시인들은 상상하는 행위 자체가 단순한 사고나 정신을 넘어선, 사물을 분류하고 개체화 시키며 ‘창조’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명상과 직관의 힘을 깨우친다는 것은 신의 능력이자 인간의 특권인 ‘창조력’, 저 머나먼 정신의 우주에 떠돌아다니는 ‘상상력’을 손 안에 쥐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잡스의 직관은 그로 하여금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세상의 작은 진리 한 조각에 도달하게 해주었고, 혼자는 이룰 수 없는 위대한 업적들을 이뤄낼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2

스티브 잡스를 ‘전인’으로 지칭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 전인은 실제로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개념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전문 분야들을 알고 있는지를 떠나서, 잡스는 인류가 일궈낸 수많은 분야들의 통찰들을 엮어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재주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에서 강조되어 한국에서까지 유명해진 한 단어가 있다. 다름 아닌 리버럴 아트(Liberal Art)다. 이 개념은 잡스가 그린 이상적인 인간상이 무엇인지 확연히 드러내는데, 이는 단순한 ‘인문학’이나 문과 과목을 의미하는 개념이 아니다. 리버럴 아트의 정의는, 직관과 상호 보완적 관계에 위치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의 지식인이 관심을 가져야 할 소양들과 학문들의 모임’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과목들이 사실상 끝이 없는 과목이라는 것이다. 리버럴 아트는 끝이 없는 지식들을 배우고, 그것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넘어서는 ‘태도 그 자체’를 의미한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 인용한 문구 중 가장 유명해진 ‘Stay hungry, Stay foolish’도 같은 의미다. 닿을 수 없는 극한을 ‘바보같이’ 항상 ‘갈망’하라는 것이다. 잡스는 이러한 정신과 과학기술이 교차할 때 얼마나 대단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극한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곧 통섭적이며 통합적인 ‘전인’의 삶, 진정한 지혜와 진리를 추구한다는 말과 같다. 리버럴 아트는 전인이 갖춰야 할 태도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가장 근본이 되는 통합은 물론 이성과 감성-논리적 사고와 감각적 직관의 만남이다. 실제로 정신적 직관이 정밀한 분석적인 사고 끝에 떠오르는 경지라는 것은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저자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역설하는 사실이다. 직관은 오직 자신이 전문적으로 잘 알고 있는 분야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작곡가 히사이시 조(ひさいし じょう) 역시 창작 활동을 할 때면 내면에 쌓여있는 수많은 경험들과 느낌들이 이성적인 지식들과 뒤섞여 경계를 알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둘 다 틀렸다. 바깥세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과학, 논리, 이성과 내면을 표현하는 예술, 직관, 감성 등은 전부 인간의 본질이고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잡스는 알았다, 그렇기에 결국 인류 학문 최고의 과제인 자연과학과 예술의 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이며, 진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제품들을 창조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몸과 마음, 감성과 이성, 정신과 감각, 행동과 마음, 과학과 예술의 합치. 잡스는 그야말로 완벽한 완벽주의자였고, 그 자신 또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전인이 되길 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일정선 내에서는 분명히 성공했다. 이것이 ‘전인’ 잡스의 ‘리버럴 아트’의 힘이다.

3

창조력과 상상력은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생존에 맞춰 진화해왔지만 딱 한 가지 예외가 있다. 이 드넓은 우주의 진리를 체계화시키고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호기심이다. 이것은 생존본능을 넘어선, 인간에게만 주어진 선물이다. 인간이 이루어낸 단일 개체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위대한 업적들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모두는 새로운 경험을 사랑하는-단적으로 도박을 하면 도파민이 분비된다―호기심 넘치는 탐험가이며, 창조를 사랑하는 상상가다. 잡스는, 적어도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 중 이 인간의 본성을 완벽하게 인지하여 가장 시대에 알맞게 세상에 발현했던 사람이었다.
세상에는 항상 수많은 문제들이 산재해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격변의 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문제 해결력’, ‘기업가 정신’ 등이 본질적으로는 창의력과 같은 말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그 동시에 너무도 뻔한 말이기도 하다. 실질적으로 문제가 ‘어디서’ 발생하고 보통 세상에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교수에 의하면 진짜 현실의 문제는 학문들의 교차점에서 발생한다, 각 학문들이 진리가 서로 모순되고 부딪히는 지점, 아무도 생각지도 못한 그러한 지점이다. 아마 보이지 않아 문제로조차 취급되지 않는 지점도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인류의 손에 컴퓨터가 없다는 것은 스마트폰 이전에는 아무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본다면 인류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중대한 문제였다. 기술과 리버럴 아트의 교차점에서 수많은 업적들을 해내기 전에, 잡스는 그 사이에서 문제를 먼저 발견해야만 했다. 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 힘이 바로 호기심과 상상력이 아닐까?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지만,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아님은 분명하다.
똑똑하기만 한 사람은 전문 기술자가 될 수 있을망정 예술가, 개척가, 혁신가는 절대로 될 수 없다. 그것은 똑똑하지 않더라도 ‘창조적 전인’이 되어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정을 가진 사람, 그 자신에 열정에 부합하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4

내가 읽은 잡스의 삶이 핵심과는 거리가 먼 나만의 망상일지도, 완전히 잘못 짚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잡스가 이러한 삶을 살았고, 이러한 삶을 살았기에 ‘스티브 잡스’라는 위대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믿는다.
물론 다른 수많은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선천적인 지능과 재능,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와 성격, 잡스가 자란 환경, 수많은 운 등. 그렇다고 해도 내가 스티브 잡스에게 배운 이 철학들을 나의 삶에서 실천하는 것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잡스의 비전을 이어받아 우주에 흔적을 남긴다는 나의 꿈을 절대 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6-2-17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