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햇살이 다가옵니다. 이제 두꺼운 패딩을 입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날씨입니다.
이런 날에는 사람 냄새나는 멜로 영화가 보고 싶은 시점이기도 하죠.
2004년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치카와 다쿠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비가 오면 나타났다가 비가 그치면 사라져야 하는 슬픈 운명을 지닌 여인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가 2018년 다시 리메이크되어 우리에게 다시 찾아왔습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영문 원제 Be With You)입니다.
한 아이가 누군가가 남긴 동화책을 읽고 있습니다.
비가 오면 올지도 모르는 엄마 펭귄을 기다리는 아기 펭귄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입니다.
그 책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수아가 남긴 동화책이고 그 동화책은 그의 아들 지호가 읽고 있습니다. 지호는 자신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고 자책하고 있습니다. 지호의 아빠인 우진은 그 어떤 말도 해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냥 이 비가 그치는 것처럼 지호가 엄마의 기억을 잊어주길 바랄지도 모를 일이죠.
잘 나가던 수영 유망주였던 우진는 스포츠 센터에서 청소 잡일을 하고 있습니다.
물이 무서워 다가가기 두려운 사내. 어쩌다가 그는 물을 두려워하게 된 것일까요?
그러던 어느 날 지호와 우진은 지금은 운영되지 않는 간이역을 거닐다가 쓰러져 있는 여인을 발견합니다. 영락없이 그는 수아랑 빼닮았습니다. 지호는 엄마가 돌아왔다고 말하고 그렇게 이들은 다시 세 식구가 되었습니다.
비가 오던 날 그가 왔고 세 사람은 행복한 순간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러던 것도 잠시 동화책 마지막 페이지 내용처럼 그에게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는 정말로 지호가 맞을까요? 그리고 이 사랑스러운 가족들을 뒤로하고 떠나야만 할까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작품은 이치카와 다쿠지의 소설이 원작(いま、会いにゆきます/영문원제 한국, 일본 동일)인 작품으로 이후 먼저 영화화가 되고 후에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2018년에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과거에서 미래로 온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타임슬립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마지막 성인이 되는 아이를 위해 편지를 쓰는 이야기는 일본 영화 '해피 버스데이'(Birthday Card, バースデーカード/2016)에서도 등장하게 되지요.
이야기는 원작의 뼈대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나 몇 장면이 살짝 변경되기도 하였습니다.
타쿠미(리메이크에서는 우진)가 미오(리메이크에서는 지호)를 짝사랑하던 학창 시절부터 결정적인 타임슬립 상황까지 모두 동일합니다. 생일 케이크 상황이라던가 몇몇 상황도 동일하지요. 하지만 원작과 달리 우진을 육상선수가 아닌 수영 유망주로 등장해 직업을 더 강조한 부분이나 생일 케이크의 모티브가 되는 이야기도 단순히 모티브로 그치는 것이 아닌 케이크를 만든 곳이 우진의 친구 홍구가 운영하는 가게라는 점도 인상적이죠.
더 재미있는 사실은 홍구가 운영하는 가게의 이름이 '선녀 빵집'인데 일본 원작에서 나올 수 없는 '선녀와 나무꾼'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에 녹여낸 것이죠. 오프닝의 하늘나라 기차를 기다리는 지호의 이야기나 우진이 수아를 떠나보낼 수 없어하는 행동은 마치 동화 '선녀와 나무꾼'에서 선녀가 날개 옷을 가져가지 못하도록(떠나지 않도록) 붙잡아야 하는 나무꾼의 심정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죠.
모두가 원작에서 좋아했던 해바라기가 가득한 꽃밭에서 타쿠미와 미오가 나누던 명대사도 리메이크에서는 사라졌습니다. 해바라기 밭은 없지만 그들이 나눈 대화는 리메이크의 우진과 지호 역시 그대로 등장하고 있으니깐요.
물론 아쉬움이 남기는 합니다. 원작만큼 리메이크도 깔끔하긴 하지만 러닝타임이 원작에 비해 더 긴 편에 속한데 최근 국내, 해외 영화들을 통틀어서 들었던 느낌이 '영화는 길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시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은 그래서 그것이 굳이 이 영화가 길어야 할까라는 의문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좋은 배우들을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는데 어설픈 수영강사로 등장하는 이준혁 씨나 마치 썸을 탈 듯 먼 곳에서 우진을 바라보는 스포츠 센터 동료 직원인 현정으로 등장하는 손여은 씨의 분량은 차라리 없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렇게 짧게 등장시킬 것이라면 분량을 많이 주고 일본 원작과 다른 시도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요. 영화 속 물을 두려워하는 우진처럼 이 작품도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소지섭 씨나 손예진 씨는 멜로의 왕, 여왕이라 두 말할 필요가 없으며 아역으로 등장한 김지환 군과 이야기의 무게 중심을 잘 잡아주는 고창석 씨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물론 반가운 얼굴들도 보이는데 가령 공효진 씨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며 마지막에는 히든카드처럼 또 다른 배우를 영화 말미에 숨겨놓았습니다. 이것을 찾아보시는 재미도 솔솔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 우린 그렇게 정해져 있어.
따뜻한 봄 감성 멜로가 찾아옵니다.
기다려 주세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