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유리감옥 The Glass 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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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감옥 The Glass Cage

니콜라스 카 Nicholas Carr/이지원/한국경제신문

2009년 5월 31일 저녁,승객과 승무원 228명을 태우고 리오데자네이루를 이륙해 파리로 향하던 에어버스 330기종의 에어프랑스 447기가 승객에 대한 기내 경고 방송도 없이 순식간에 대서양으로 추락한다.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이 사고는 열대성 폭풍우 속을 자동운항하던 여객기의 속도센서가 결빙으로 이상 작동하면서 발생한다.

사고 당시 3명의 파일럿은 교대로 짧은 잠을 청했는데 비행시간 11000시간의 베테랑 기장 두보이스가 조종실 밖에서 휴식하는 동안 6500시간 비행 경력의 조종사 로버트와 2900시간의 30대 초반의 젊은 조종사 보닌이 자동운항장치가 작동하고 있는 조종석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기장이 자리를 비운 지 약 9분후 속도센서 이상으로 자동모드가 해제되고 수동 운전 경험이 많지 않은 보닌이 자신쪽 조종간을 움켜지면서 여객기는 급속도로 속도를 잃고 하강한다.

조종석에서는 속도저하를 경고하는 stall warning 사운드가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고 계기판의 정보를 오독한 젊은 조종사는 조종간을 당기며 기수를 높이려 애쓰고 있었다. 한편 왼편 기장석에 앉은 조종사 로버트는 갑작스런 속도저하의 원인을 찾으려 애썼지만 신뢰할 수 없는 계기판과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는 경고음 속에서 도무지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없다.

여객기는 점점 속도를 잃고 고도는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었다. 호출을 받은 기장은 황급히 조종실로 복귀했지만 상황을 파악하고 조처를 취하기엔 이미 여객기는 대서양 해수면과 너무 가까워져 있었다. 그가 계속적으로 조종간을 당기고 있는 보닌의 오른손을 알아차리고 비행기의 각도를 낮추려 했지만 고도 35000피트 상공에서 불과 5분여만에 동력을 잃은 여객기는 곧장 해수면으로 곤두박질친다.

후에 발견된 블랙박스 속에는 그 급박한 순간의 기록과 마지막 파일럿들의 절망적인 대화들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다. 이 블랙박스를 통해 추락 원인을 조사하던 항공 전문가들은 이 두 장의 사진의 차이점으로 그 원인을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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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사진은 에어버스 330의 조종실이고 두번째 사진은 보잉사의 최신 여객기 보잉 787의 조종실이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전통적 조종간이 사라진 에어버스 330의 모습이다. 이는 단순한 기내 조종석 디자인의 차이만이 아닌 두 비행기 제조사의 항공 기술철학의 차이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책으로 들어가보자.

대형 항공기 제작업체인 에어버스와 보잉은 30년 전 디지털 비행 제어 시스템을 출시한 이후 항공기 디자인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취해왔다. 먼저 에어버스는 기술 중심적 접근 방식을 추구한다. 에어버스가 표방하는 목표는 사실상 '조종사가 없는'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전면부에 장착된 대형 조종간을 측면에 장착된 초소형 조종간으로 대체하기로 한 회사의 결정이 그러한 목표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였다.(중략)이와 달리 보잉은 디지털 비행 제어 시스템 구축에 대해 보다 인간 중심적인 전략을 취해왔다. (중략) 또한 보잉은 구식 대형 조종간을 그대로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조종사들이 비행기의 조종 매커니즘을 직접 통제하던 시절에 느꼈던 것을 모방한 인공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도록 조종간을 설계했다.

  • P249~250

만약 이 조종사들이 에어버스가 아닌 보잉사의 항공기를 운행하다 위와 똑같은 악천후와 속도센서 이상의 상황을 직면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가장 짧은 비행경력의 보닌이 속도센서 이상으로 인한 계기 오작동에 반응해서 속도를 높이기 위해 기수를 올리려는 시도를 계속적으로 했을 때 왼편에 앉은 로버트가 자신 앞의 조종간을 통해 금새 그 상황을 알아차렸더라면 그리고 조종간에서 손을 떼는 것만으로도 비행기의 기수는 수평을 유지하며 제 속도를 잃지 않았을 거란 항공 전문가의 견해는 폭풍우 치는 시계 제로의 깜깜한 대서양 한가운데를 각종 센서에 의존해 비행하던 파일럿들에겐 너무 잔인하고 냉혈한 분석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란히 앉은 두 조종사가 충분히 상대방의 조종간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보잉사의 조종간과 그것을 과감히 축소해서 서로의 움직임을 확인하기 힘든 바깥쪽 창가로 조종간을 옮겨버린 에어버스의 결정이 이 사고의 결정적 요인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좀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보잉사는 전통적 조종간의 위치와 기능을 남겨두는 것에 더해서 자동화로 인해 잃어버린 아날로그적 감성까지 되살리려 시도하고 있다. 즉 조종간의 움직임이 두 조종간 모두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물론 기체의 여러 계기 지표들을 조종간의 떨림과 진동으로 인공적으로 구현해서 보다 직관적으로 오감을 통해 비행정보를 받아들이고 조종할 수 있게 설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니콜라스 카의 <유리감옥>이 우려하는 맹목적 자동화 세상의 빛과 그림자와 관련해 언급한 가장 참혹한 사고여서 관련 기사를 찾아 내용을 덧붙여봤다. 전작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만큼 재밌지 않고 동어 반복적이다. 대신 전작과 달리 적극적 행동 요령이 소개되어 있다. 이 산만하고 살벌한 자동화의 세상과 컴퓨터 스크린이라는 유리감옥으로부터 도구의 주인으로서 자연과 호흡하며 살아남기 위한 '몰입'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가 즐겨 되새기는 시구와 함께.

사실은 노동이 알고 있는 제일 달콤한 꿈이다.
The fact is the sweetest dream that labor knows.

  •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Frost <풀베기 mowing> 중에서

번역자의 솜씨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노동은 있으나 노동자는 없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구 속의 노동자 를 빼면 모두 근로자다. 하~

최근 시범운행 중이던 우버 자율주행차가 자전거를 탄 보행자를 사망케 한 사고로 자율주행에 대한 비판적인 뉴스들이 떠들썩하게 쏟아지고 있다. 이 책속에도 모든 경우의 수를 설정하여 프로그램화 할 수 없는 자율주행차의 한계에 대해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사고 발생시 지나가는 사람을 우선시 할 것인지 타고 있는 사람을 우선시 할 것인지에 대한 도덕적 물음까지 알고리즘화 하여 자율주행차 속에 입력해 두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 등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는 자연스럽게 부여된 자율주행이 땅으로 내려오기엔 더 많은 시간과 논의가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엘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주도하든 구글이나 우버가 주도하든 자율주행차를 향한 끊임없는 기술적 모색은 이제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지금도 도로 위를 미친듯이 질주하는 스트레스 덩어리들과 로드 레이저들 road ragers 그리고 일상적인 무례와 조급함이 허용되는 아슬아슬한 도로 위를 생각하면 "여가활동들 중 가장 몰입감이 높"다는 "자동차 운전"(p42)의 즐거움을 자동주행차에게 뺏길 날이 머지 않아 보인다.


셀프보팅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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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 years ago (edited)

한번쯤 브레이크를 걸고 좀 천천히 가는 것도 좋은데요.. 이런 초 스피드 변화의 과정때문에 사람들은 오히려 인간적인 관계를 더욱 갈망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오셨네요...

기억해 주시니 ... 이젠 저보다 파워가 더 빵빵하십니다/"훅 불면 날아갈" 봄입니다. 유니콘피쉬님.

아니!!! 그동안 어디 계시다가 온거여요? ㅠㅠ 외계인한테 납치된줄 알았잖아요. 몰래 와서 보팅만 하고 가셨군요! -외계인이 스팀좀 주던가요 ㅋㅋㅋ 아! 요건 제 포스팅 내용입니다 ㅋㅋㅋ
걱정 아닌 걱정으로 자주 블로그를 들어와봤답니다. 이렇게 어려운 책 들고 오셔서 제가 풀보팅해드릴께요 ㅎㅎㅎ 저 보팅게이지바 생겼거든요 ㅋㅋㅋㅋ

참 성실하십니다. 이제 이벤트도 하시네요/잊지 않으시고 ... 봄입니다. 에빵님.

제가 별로 할일이 없어요... 반백수랍니다. 스팀잇에 뼈를 묻을 일만 남았습니다. 봄이 왔군요! 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