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황학주 - 사랑은 살려달라고 하는 일 아니겠나

in book •  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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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를 갈무리하는 일은 혼자만의 일인가. 생각해보면, 그 일은 누군가와의 협동으로 더더욱 정갈해지는 법이었다. 개인이 겪는 사건들은 상이해도, 느끼는 감정과 정서는 유사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각자의 사건들을 한데 모아 광의로서 기능하는 감정의 이름 아래, 하나의 꾸러미로 매듭지을 수 있었다.

그것을 일종의 제의, 축제, 위령제와 같은 것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함께 나누는 정서의 갈무리, 즉 사담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인간적이며 영적인 공유가 아닐까.

황학주 시인의 <사랑은 살려달라고 하는 일 아니겠나>는, 그 스스로가 시로 얘기한 구절처럼, 서정이라는 낡고 거대한 이름 아래 묶인 ‘장르적 사담’의 한 꾸러미다. 시를 통해서만 허락되는 도치와 모호함의 병치 아래, 시인은 교집합이 된 직관적 공간으로 말들을 따라낸다. 그것은 슬픔으로밖에 해석될 수 없는 사랑, 풀어지지 못한 역사의 응어리, 삶이 되는 하루의 고단함, 그런데도 여전히 저물지 않는 의문들이다.

우리가 시인의 말에서 떠다 마시는 것들은 그러한 것들이 모여 생긴 서정의 샘물이다. 샘물을 마시기 전에 그 수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헤엄치며 떠다니는 시어들이 보인다. 시어들은 흐트러졌으나 반짝이고, 반짝이는 시어들을 연결하면 별자리가 된다. 마침내 별이 된 말들은 이미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빛나는 생의 고비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광활한 사담, 또는 장르적 사담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서정은 칭찬하거나 경배하는 것이 아니므로, 나는 시인이나 이 시집에 대하여 어떠한 갈채나 존경을 표할 의사는 없다. 다만, 이제는 내버려 짐에 가까운 취급을 당하는 우리의 정서를 모아 묶은 이 낡고 해진 장르적 사담에 참여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사담에의 참여는 내 생각과 그의 생각이 어떠한 공유지대에 동시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닮은 생각은 닮은 감정에서 오기도 하면서 닮은 감정을 낳기도 한다. 그러한 생각과 감정들이 생의 공간을 얼마나 빽빽하게 채우는가. 삶이란, 굵직굵직한 사건들의 푯말 아래 헤쳐모인 작은 자갈들로서의 이야기가 채워진 유리병과 비슷하다. 무심히 흘려보내는 무의식과 비인지로서의 시공간은 별일 아닌 일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강물이다. 우리의 비극은 이토록 커다란 질량을 지닌 평범함들에 무심하도록 태어났다는 데에 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반복되도록 지어진 사회와 일련의 심리적 매크로들. 그리고 정서와 유치한 깨달음을 천하게 여기도록 가르치는 자조의 교조주의. 우리가 거대하고 광막한 탑들에 시선을 가두는 사이, 발밑을 지나가는 그림자와 서늘한 바람은 의미를 만나지 못하고, 비우고 떠나온 집에 먼지가 쌓인다.

그렇게 홀로선 우리의 귓가에 귓속말로 사담을 걸어오는 시인, 작은 것과 가벼운 이야기로 묵직함을 채우는 시인이 있다. 낡은 이름으로, 쓸쓸해진 오래됨으로, 비효율의 죄목으로, 구시대의 유물로 비난받는 서정으로 텅 빈 집을 지켜온 시인이 있다. 그가 간만에, 여전한 말투와 범주로서의 이야기를 가지고 말을 걸어왔다.

오랜만에 벌어지는 이 사담에 우연히 참여한, 한 명의 나는 달리 기쁨을 맛보지는 않았으나, 어딘가에 놓고 왔던 마음의 무게를 회상하듯 체감했다. 그것이 집을 떠나온 나에게, 엄준한 이름 아래 흐느적거리던 나에게, 나를 버린 나에게 어떠한 무게가 되었는지는, 굳이 글로 쓰지 않더라도, 쉬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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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