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 혐오의 기저에는 욕망이 있다. There is desire at the base of disgust.

in book •  7 years ago  (edited)


나무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나무는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나무가 되면 평온할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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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na al Sole woman_sunx _ Edward hopper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의 그림은 언제나 쓸쓸했다.
채식주의자를 읽기 전까지는.
광합성을 하며 평온을 느끼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제 호퍼의 그림에서 빛의 온기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나도 발가벗고 광합성을 한다.
나무가 된 나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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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의 영혜는 나무가 되려고 한다.
고기도 밥도 먹지 않는다.
물구나무 서서 햇빛과 물만 받아들인다.
그녀는 이끼를 키우고 꽃이 피어나는 나무가 되고 싶어 한다.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 몸으로 다른 나무를 받아들인다.


세상의 나무는 모두 형제 같아.


나무는 모두 형제이고 모두 남이다.
가족의 개념이 없기에 근친상간의 개념도 없다.
어떤 나무라도 사랑할 수 있으며 받아들일 수 있다.
나무들은 가족과 사랑을 나눴다고 손가락질 받지 않고 정신병원에 처넣지 않으며 숨어지내지 않아도 된다.


나무에게는 도덕이 없다.
나무는 도덕이 필요 없는 완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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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열렬히 사랑하지 않으니 특별히 권태로울 것도 없었다.


영혜의 남편은 영혜가 동박새를 뜯어먹고 입에 피를 묻히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내빼버린다.




나무가 되려는 광기를 지닌 영혜,
그 광기에 매혹되어 처제를 범하는 남자,
영혜와 남자의 광기를 지켜봐야 하는 언니 인혜.


마지막 책장을 덮는 동시에 폭력, 욕망, 근친상간 등의 자극은 사라졌다.
채식에 대한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또한 영혜가 추구한 것이 고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무를 보며 고독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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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달리며,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나를 보던 두 눈을 기억해.
아무렇지 않더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이 장면에서는 <꿈꾸는 황소_션 케니프>가 겹쳐졌다. 암컷들의 도축 장면을 목격한 황소 에트르. 그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암소의 가죽이 벗겨지고 목이 잘리고 내장이 파헤쳐진다. 황소는 자신을 'Etre 존재하다' 라 칭한다. 스스로 존재하는 황소는 자아를 지녔다.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는 것은 자아를 지녔다는 의미이다. 자아를 지니지 못한 인간은 진정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만이 자아를 지녔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에트르처럼 자아를 지닌 동물도 있다. 자아를 지니지 못한 인간이 있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다면 육식에 대한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동안 소도 돼지도 닭도 먹지 않을지도 모르고 이효리처럼 채식주의자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저 가축들에 비해 인간은 강하다. 강하기 때문에 약한 동물의 섭취한다.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답게 모든 것을 섭취한다. 자연의 섭리 그대로 사냥하고 섭취하는 것까지는 괜찮을까? 꿈꾸는 황소의 에트르와 같은 사육된 가축을 섭취하는 것은 부당한가? 그렇게 사육된 고기는 먹고 싶지 않고 적어도 자유롭게 자란 고기만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도 지극히 인간적인 이기심이다. 또 이런 생각도 한다. 창조주가 동물을 창조한 이유는 인간을 위함이 아닐까 하는. 이 또한 인간적 합리화일 뿐.

꿈꾸는 황소가 동물애호에 관한 이야기인지 실존에 관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논쟁할 필요는 없다. 제인 구달은 동물애호가의 입장에서 이 소설을 느꼈을 테지만 나는 실존주의자로 꿈꾸는 황소를 느꼈다. 에르트는 카프카의 벌레와 동족이며 자아를 지닌 인간과도 동족이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자아를 지닌 존재는 동족이라고 하면 미쳤다고 할까? 나는 살짝 미친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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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지니고자 한 황소 에르트와
나무가 되고자 한 영혜,
두 존재 모두 미쳤다고 하면 그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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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가 없으니까.
손도, 발고, 이빨도 세치 혀도, 시선 마저도.
무엇이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나무도 번민하고 나무도 욕망한다.
그러나 나무는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
인간의 젖가슴처럼.

나무는 고독하지 않다.
나무는 스스로 충만하다.

스스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세상의 모든 나무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쓸쓸할까.
고독은 나무를 바라보는 인간의 감정일 뿐이다.
영혜는 그러한 나무와 같은 존재가 되고자 했을 뿐이다.
다른 나무에게 무엇도 강요하지 않는 나무.
육식을 강요하지도 폭력을 가하지도 않는 나무가 되고 싶었던 거다.




Eleven am_mf.jpg

Eleven AM _ Edward hopper


혐오의 기저에는 욕망이 있다. 영혜의 혐오의 기저에도, 영혜를 혐오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도 욕망이 있다. 혐오는 그냥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탄생의 순간, 혐오감을 품고 태어나는 인간은 없다. 혐오는 가족, 사회의 영향으로 자라난다. 그 혐오의 뿌리는 욕망이다. 터부시 된 욕망은 혐오로 발현된다. 영혜는 일체의 일반화된 관습(기르던 개를 잡아먹는 것과 같은) 을 혐오하며 사회는 영혜(백치처럼 금지된 욕망을 행하는 자)를 혐오한다. 영혜는 모든 일반화된 관습(육식)을 욕망했으며 그러한 자신을 혐오하여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작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의도한 바와 내가 느낀 것이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의 작품은 모든 독자에게 다른 화두를 던져줄 수 있을 때 가장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주제가 명확한 글은 문학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이처럼 다양한 분석이 가능한 작가가 나는 좋다. 한강은 불멸의 작가들만 읽으며 동시대의 작가를 등한시한 나를 깨부수는 돌이 되어주었다.



Evening wind _ Edward hopper.jpg

Evening wind _ Edward hopper


나는 그녀가 나무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녀의 몽고반점을 지닌 나무를 보면 그녀를 기억하리라.
아름다운 나무가 된 그녀를 반갑게 안아주리라.
입 맞춰주리라.




written, photographed by @madamf MadamFlaurt
#book #author #think #desire #taboo





@hodolbak 호돌님의 이벤트로 <채식주의자>를 선물받은지 얼마가 지났는지...
이제야 후기를 올리다니 저의 게으름을 이해해주세요. 호돌님^^
게으름을 피운 것은 아니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한번에 정리를 못한 탓이에요.
좋은 책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호돌님!
숲의 향긋한 가득한 호돌님 @hodolbak 의 휴양림 소식이 얼마나 좋은지...^^



[madamf’s author]

마담플로르 @madamf가 애정하는 작가들
Raymond Carver 레이먼드 카버, “진짜 대단하군, 이 사람아!”
Stoner 스토너, 존 윌리엄스 | 묵묵히 제 길을 가는 이들을 위하여...
나른함으로 가득한 봄이여 _ 앙드레 지드 Andre gide
Scott & Zelda Fitzgerald 스콧 and 젤다 피츠제럴드
알베르 까뮈 Albert Camus, 나의 권리.
Le sixieme sommeil by Bernard Werber 여섯번째 잠, 베르베르 베르나르
마음가는 대로....수산나 타마로
나른함으로 가득한 봄이여 _ 앙드레 지드 Andre gide
사람은 불행해지면 도덕적이 된다 _ 마르셀 프루스트
메마른 연주를 하지 않을 게 틀림없어 by 마틸드 in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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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후기만큼 더 멋질지 모르겠네요~ 심오한 듯, 어려우면서도, 왠지 읽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매력이 느껴집니다. 혐오는 방어기제 인걸까요? ^*

매력적이고 멋진 소설입니다.
혐오는 방어기제일 수도 있겠지요.
빛블루님, 일주일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화이팅!^^

아름다운 글 잘 읽었어요. '광기로 하여금 이성을 감시하게 하라'란 말이 떠오릅니다.

광기로 하여금 이성을 감시하게 하라!

멋집니다. 인석님의 문장인가요?^^

라캉의 문장입니다. ^^

라캉도 인석님만큼 멋지군요.^^

이 3부작은 작가가 남겨놓은 것만으로도 너무 버겁고, 여운이 너무 강렬해서 다른 이의 리뷰를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마담님의 리뷰 참 좋네요. 특히 나무는 고독하지 않다는 말, 고독은 나무를 바라보는 인간의 감정일 뿐이라는 말이요.

제게도 특별한 소설이었어요.
좋게 느껴지시니 기쁘구요.
라라님, 팔로했으니 종종 뵈어요.^^

@madamf 님 안녕하세요ㅎㅎ
한강 작가 작품 꼭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고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리뷰로 봐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녕하세요. 경아님 ㅎㅎ
팔로는 해뒀는데 인사는 첨이네요. 반가워요.^^
저도 한강 다른 작품 읽으려고 해요.
도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니 기대되구요.
경아님, 점심 맛있게 드세요.^^

한참 전에 읽었는데 되세기게 해주시네요.
감사해요..

그 느낌을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플로르님의 전류가 흐르는 포스팅!
오늘도 짜릿하게 느끼고....자기앞풀봇 남기고 갑니다.

전류를 느껴주시니 저도 짜릿하네요.ㅎ
자기앞 타타님 좋아요ㅎㅎ

저는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로 이 책 재밌게 들었어요ㅎㅎ 점점 독서가 힘들어지네요ㅜ

팟캐스트도 있군요.
무엇으로라도 읽는 것이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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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읽었던 많은 "채식주의자" 독후감 중에 단연코 가장 크게 와닿는 글이에요.
아직 찬바람에 나무들이 떨고 있네요..

불이님의 칭찬은 제게 큰 힘이 되어 주지요.^^
잘 썼다도 아닌, 와닿았다 라니!
저를 춤추게 만드시는 건가요 ㅎㅎ
감사합니다. 불이님!^^

'혐오의 기저에는 욕망이 있다'
이 문구가 마음에 남네요..
맞팔 부탁 드려요~

감사합니다.
팔로했으니 종종 뵈어요.^^

책만 사두고 읽지 못한 책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바로 그책이네요. 덕분에.. 어서 읽고 싶어집니다. 호퍼의 그림도 너무 좋네요. ^^

호퍼와 잘 어울리는 글이었어요.
사색이 가능한 시간에 만나보세요, 제롬님.^^

아- 제겐 적지않은 충격을 안겨준 책이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리뷰라니...! ㅎㅎ
잘읽고갑니다 마담님 > <

특급 칭찬이네요.ㅎ
감사해요, 신농님^^•

오우오우! 이런 리뷰 넘 좋아요. 이제 앞으로 절대 북리뷰 따위는 올리지 않을 거야라는 다짐을 부르는 리뷰입니다. 최고네요. 플로르님!!! 사랑합니다! 리스팀도 부르는 ㅋ

갑자기 고백받으니ㅎ 설레임이 밀려드네요ㅋㅋ
부끄부끄하구요ㅎㅎ
운동은 잘 하고 계신가요?
늘씬해지시면 인증컷 한장 올려주세요, 에빵님!^^

아니에요.
이런 정도의 후기라니
많은 작가분들이 본인의 책을 드리고 싶겠는데요~~
정말 제대로 된 주인을 책이 스스로 찾아간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스쳐지나쳤을지도 몰라요.
호돌님의 선물이 아니었다면 말이죠.
호돌님 덕분이 작가 한강을 만나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호돌님^^

소설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ㅎㅎ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팔로했으니 종종 뵈어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채식에 관한 글이 아니었군요..ㅎㅎ 저는 마담의 글이 더 좋습니다. 혐오의 기저에 욕망이 있다는 말.. 요즘 더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남자와 여자는, 사람과 사람은 얼마나 서로를 욕망하는지 말이죠.. 오랜만입니다. ^^

그러게요. 마법사님!
오랜만이네요.^^
욕망은 인간의 본질이니까요.
행동과 생각 모두 욕망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리스팀된 글을 보고 저도 방금 리스팀했습니다.
제 눈앞에 한강의 <채식주의자> 몇 달째 보입니다. 한 문단 읽고 접었습니다. 뭔지 모를 희구스러운 느낌에서요. 그 이유를 이 글을 보고 알았습니다. 어떻게 보지도 않고 아냐?..한강의 인터뷰를 보고 동질감을 느꼈고, 그녀의 책을 어떻게 언제 읽어야할지 망설이고 있던 차...이제 읽을 때가 됐나봅니다. 혐오뒤에 욕망이 있죠..네 공감합니다. 욕망이 없다면 혐오도 없을 겁니다. 앞으로 자주 소통하고 싶습니다..

희구스럽다...

새로운 단어를 배웁니다.
한강의 인터뷰를 읽지 않았지만 제가 느낀 것이 엇나간 것이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저도 팔로했으니 자주 뵈어요.
좋은 하루 되시구요.^^

감각적인 마담식의 리뷰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을 읽는다면 육식에 대한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희의는 느낄지언정 고기를 향한 식욕도 억제될지 모르겠습니다ㅎ

조금 고기를 덜 먹게 된 것도 같아요.
대신 다른 걸 많이 먹었겠죠.ㅎ
소울메이트님, 맛있는 점심 드세요.^^

  ·  7 years ago (edited)

제 생각보다는 살짝 어두운 소설인 것 같은데요?
나무가 되고 싶은 여자의 이야기라니 읽어봐야 제대로 알 것 같은 작품입니다.
지난 달에 한강의 다른 책을 읽었는데 마담f 님 리뷰를 보니 괜히 반가웠어요 ㅎㅎ

감각의 대상들을 품에 안고 있는 사람한테서 그것들에 대한 애착이 솟아나느니, 애착은 열망을 낳고 열망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마비를 낳고 마비는 기억상실을 가져다주고 기억상실은 이성을 파괴하고 이성의 파괴는 철저한 파멸을 이끄는도다. [바가바드 기타 제2장 62, 63]

이 구절도 떠오릅니다.

집착심이 철저한 파멸을 이끌지만 또한 집착심때문에 우리가 존재하지요. 중요한 것은 덜 집착적인 삶인 것을... 그러니까 덜 욕망적이려고 노력해야겠지요. 그래서 인생은 힘들죠. 욕망은 힘이 들어감이니까요.

덜 집착하기, 덜 욕망하기란 어렵죠.
그렇게 보이는 사람도 그런 척 하는 거지
진실로 그런 건 아닐테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