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지도, 책 [서른다섯, 늙는 기분]

in book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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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랬다. '멀리 놀러 갈 때, 집에 돌아갈 걱정을 하면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래.'
예전에는 그리도 좋아했던 인사동을 멀다는 이유만으로 가지 않게 되었을 때, 나도 이제 늙었구나 싶었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을 때, 새치의 개수가 하나 둘 늘어날 때, 예쁜 옷보다 편한 옷이 좋을 때, 불편한 상황도 '그럴 수 있지'하고 넘길 때 등등. 일상의 수많은 포인트에서 나는 내가 이전보다 나이 들었음을 느낀다.

생각보다 나이 드는 것이 그리 끔찍한 일은 아니었다. 이제 더 이상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저 조금 아련할 뿐이다. 생각 없이 일을 벌이고 수습하지 못해 도망쳤던 시절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겠지. 하지만 외적으로 찾아오는 변화는 아무리 담담해져 보려 해도 쉽지 않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일 때면 나는 병적으로 집게를 집어 든다. 크게 웃음을 터트리다가 문득 입 주위를 꾹꾹 눌러준다던가 거울을 볼 때마다 목 주름이 신경 쓰이는 걸 보면,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사실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늘어나는 흰머리를 더 이상 새치라 부를 수 없는 나이, 팔자 주름이 신경 쓰이는 나이에 심지어 결혼정보 회사에서도 반기지 않는 35살이라는 나이 앞에서 씁쓸함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들여다보기로 한 것이다.

35살의 나는 돈보다는 시간이 없는 사람이고 따라서 시간을 아끼기 위해 돈을 번다. 돈을 벌기 위해 오늘도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하지만 시인은 직업이 아니라서, 그 자체로 사람이라서 돈을 벌지 못한다.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부자가 될 순 없지만, 나는 내 시간을 채워줄 돈이 필요한 35살이라서 오늘도 어김없이 글을 쓴다.

시인으로서, 산문가로서, 그리고 스스로를 온전히 책임지며 살아가야 하는 서른 중반의 한 사람으로서 작가는 본인이 평소에 경험하고 느낀 바를 솔직하고 촘촘하게 책에 담아 두었다. 변해가는 외형뿐만 아니라 심적으로도 성숙함이 요구되는 시기를 거치며 때로는 휘둘리기도 하고 때로는 담대히 마주하며 여느 하루를 보내고 있는 저자를 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게 되더라.

비록 나는 아직 30이 채 되지 않은 나이이지만, 서른을 곧 바라보는 나이로서 예전보다 훨씬 변화를 두려워하게 된 것 같다. 체력적으로도 예전 같지 않고 피부, 머리카락 모두 다 빛을 발해 가는 시기에 더해진 책임감이 가슴을 짓누르는 기분이 든다. 이제 더는 투정을 부릴 수 없겠다는, 내가 온전한 나를 감당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 걱정이 앞서지만, 사실 그것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것이 꼭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만 찾아오는 감정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꼭 서른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책 <서른다섯, 늙는 기분>을 읽다 보면 중간중간 공감이 가는 포인트를 만나게 될 것이다. '맞아, 나도 그랬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구나' 등과 같은 소소한 공감은 '괜찮아, 누구나 나이를 먹고 늙어가니까!'라는 말보다 훨씬 큰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혹자는 나이가 들어간다는 말을 지혜와 치환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들어가며,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생각해 볼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부분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고 곧바로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숙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익어갈 시간. 햇빛을 받고 비를 맞으며 속이 꽉 찬 과실이 되어갈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니 조급해 하지 말자. 우리, 좀 시간이 걸릴지라도 하나씩 받아들여보자. 자연스러운 그레이 헤어가 오히려 멋들어지는 멋진 어른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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