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여행3

in busy •  7 years ago 

잊을 수 없는 그 맛
지리산 여행1
지리산 여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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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데이션 기법으로 지리산의 풍경을 살펴보자면 노고단 쪽으로 갈수록 둥글둥글한 초록에 가까워지고 천왕봉 쪽으로 갈수록 기암괴석과 함께 점점 뾰족해지는 산세를 확인할 수 있다. 양쪽 모두 그 중후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노고단은 여성적이고 천왕봉은 남성적이라고 구분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배낭은 가벼워지는데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피로는 급속하게 쌓였고 우리는 더 자주 쉬어야 했다. 장터목 산장까지는 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여서 슬슬 맥이 풀리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뷰 포인트다 싶으면 배낭을 풀고 땀을 식혔다. 나무, 산, 바위, 무엇이든지, 다듬을 수 없고 길들일 수 없는 원시의 형태 그대로, 점점 대담하게 천왕봉을 향해 달려갔다. 달력 사진에나 나올 법한 이국의 풍경을 한 시간에 12장씩 넘겼다.

세석평전을 한참 지나 천왕봉 가는 길의 고사목 군락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구름이 잔뜩 서려 있던 회백색 능선 주변, 또 다른 무채색을 담고 있는 고사목들은, 성장판을 닫은 채 세월의 흔적을 버린 후에야 더욱 단단해졌다. 눈과 비를 견디어 왔던 나이테, 멈춘 순간부터 얼마나 버리며 살아왔는지, 이십 대의 나는 가늠하지 못했다. 심각하게 우스운 폼으로 사진을 찍던 우리 일행에게 고사목은 아무 말도 전하지 않았다. 벌거벗은 채 무거운 무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길게 늘어진 천왕봉의 턱수염을 잡아당겨 가며 산의 뿌리에 접근해 갔다. 후배 한 명을 장터목 산장에 먼저 보내서 자리를 잡도록 했다. 1차 종주에서는 후배 한 명이 끝까지 함께했다. 축지법을 쓸 줄 아는, 워낙 건강한 녀석이라(우슈와 축구에 능한) 제 임무를 훌륭히 소화했다. 장터목 산장은 말 그대로 장터였다. 산장이건 근처 텐트 자리건 사람들로 빼곡했다. 후배를 먼저 보내지 않았다면 텐트 칠 자리를 새로 만들 뻔했다. 2차 종주에서도 후배 한 명이 있었는데 이 아이는 세석평전에서 하산했다. 도저히 못 가겠다고 하는 놈을 잡을 수가 없어서 가진 거 다 빼앗은 다음 산 밑으로 던져 버렸다. 집안 형편이 좀 되는 녀석이라 끝까지 함께 갔으면 회에 매운탕까지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물론 내 차비를 털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물 긷는 일도, 설거지도...

우리는 천왕봉으로 향하는 베이스캠프에서 두 번째 밤을 준비했다. 사람들은 장터목 산장을 베이스캠프 삼아 하룻밤을 보내고 천왕봉 일출에 맞춰 새벽을 산행한다. 새벽이 오자 잠을 깰 수밖에 없었다. 산 공기가 워낙 좋아 일찍 일어나기도 했지만 부스럭거리며 텐트 옆을 지나 천왕봉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인기척 때문에 더는 잘 수 없었다. 우리도 늦을세라 후다닥 일어나 천왕봉으로 향했다.
가파른 길을 올라 통천문 앞에 섰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여서 통천문을 지나갈 때는 끝없이 올라가야 할 것 같은 아찔함을 조금 느꼈다. 시선 너머에서 아득하게 추락할 것을 알고 있는 롤러코스터 같았다. 잠깐의 어지럼증을 뒤로하고 우리는 천왕봉 정상에 섰다. 그리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짙은 구름은 가시지 않았고 비 같은 것을 얼굴에 맞으며 이 바람과 구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운해랄 것도 없이 구름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미련한 기다림 끝에 결국 베이스캠프로 돌아와야 했다.

천왕봉 일출은 3대에 걸쳐 공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렇다 할 선을 행하지도 않았으면서 단지 한 번의 산행에 너무 큰 것을 바랐나 보다. 발밑에 깔린 봉우리들의 실루엣이라도 보았다면 좋았으련만 우리는 공덕 찌끄래기 근처에도 가까이 가보지 못했던 것이다. 백무동 계곡 반대편, 중산 쪽으로 내려오면서 우리의 1차 지리산 여행은 끝났다.

2차 산행은 총 5명이 시작하였다. 그중 한 명은 선배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노고단까지 함께 차를 타고 오른 후 그 형은 뱀사골까지만 함께했다. 그곳에서 개인적인 일을 핑계 삼아 내려가셨다. 뱀사골 능선의 악명을 익히 들었나 보다. 지리산을 잘 아는 형이다. 세석평전에서 굴러떨어진 후배를 제외하고 나머지 셋은 산행 이틀째 무사히 장터목에 도착했다.
우리는 텐트를 치고 저녁을 먹고 배낭에 남아있던 팩 소주들을 모두 풀어헤쳤다. 가지고 내려갈 수는 없었으니까. 맑은 공기와 남은 음식 부스러기를 안주 삼아 남김없이 먹고 새벽 산행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단지, 조금 늦게 잠들었을 뿐이다.

이번에도 사람들의 인기척에 잠이 깼다. 셋 모두 잠에서는 깼지만 일어나지는 못했다. 서로 "올라갈까?", "너라도 가", "형은 안 가요?", "가 봐야 일출도 못 볼 텐데." "천천히 올라가지 뭐" 등등의 대화를 나누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보니 오전 9시가 지나서였다. 땀이 흐를 정도로 더워서 더 잘 수 없었다.
텐트를 열고 나오자 소나무 잎사귀 사이로 구슬처럼 파란 하늘이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였다. 하산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엿들었다. "일출 진짜 장난 아니다." "이런 거 처음 보는 거 같아." 류의 대화들이었다.
우리는 천왕봉에 오르지도 않았다. 숙취는 평소보다 덜 해도 기운 빠지는 것까지 산신령이 도와주지는 못했다. 공덕은 역시 1년 만에 쌓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한 선배가 "이번에는 이쪽으로 가보자"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우리의 하산은 백무동 계곡 쪽으로 정해졌다.

완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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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쯤 다시한번 도전해 보시죠^^ 이 글 쓴 공덕으로 가을쯤에는 천왕봉 일출을 맞을지도 모르죠^^

지금 올라가면 아마 살아서는 못 내려올 듯...
저질체력이 돼 버려서요..ㅠㅠ

어쩐지 느낌있는 끝맺음입니다!
완전 끝
이라고 쓰여 있으니 좀 서운한 느낌도 들고요...ㅎㅎ

쓸거리를 또 찾아야 하니 저도 좀 서운합니다..^^;;

천왕봉에서 일출은 결국 못 보셨네요.
3대에 걸쳐 공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니 한 번 보고 싶은데요 ㅎ

저도 보고싶었습니다..ㅠㅠ
술이 웬수...ㅋ

이렇게 글을 완성했으니 공덕을 제대로 쌓으셨네요.

다음에 가면 일출을 볼 수 있을 듯ㅎ

햐,, 공덕 쌓은 건가요..
근데 이제 힘들어서 못 올라감..ㅠㅠ

제가 다 안타깝습니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멋진 일출을 바로 코앞에서 늦잠자느라(?) 못 보시다니...
공덕이 아니라 원한이 쌓이는 이야긴 걸요??^^

ㅋㅋ원한이 쌓였을 수도....
그때 못봤고 앞으로도 볼 계획은 없으니 안타깝긴 합니다.
젊음의 실수죠...ㅎㅎ

글 잘보고 갑니다.

주말에 다시 보고싶네요

고맙습니다.
어디 숨겨 놓지는 안을게요..ㅎㅎ

지리산 등반을 한적이없어서.. 한번쯤해보고 싶네요.

기회가 되신다면 적극 추천합니다..ㅎㅎ

나만 스클롤바가 잘 안 움직이나...
노트북 스크롤바가 잘 안움직여요...ㅠ

결국 술이..천왕봉 일출을 먹었군요..ㅋㅋㅋㅋ

네 그렇습니다. ㅋㅋ
술만 아니었어도 볼 수 있었는데...

겨울에 지리산 종주를 할 때에 장터목에서 잠을 자고 천왕봉 일출 보러 간다고 갔다가 다 가지도 못하고 일출 본 기억이 있네요. 참 멋졌는데...

통천문도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통천문에서 찍은 사진이 아직도 어디에 있을텐데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간만에 기억이 새록새록 입니다.

그래도 일출을 보셨군요.. 역시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ㅎㅎ
말린사과님의 기억을 소환시키다니 기분인 좋네요...

운이 좋았죠. 기억에 벌겋게 올라온 것 같지는 않고, 구름에 가린채 보기는 본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서. ㅋㅋ

역시 잠은 늦잠을 자야 맛이죠.^^

늦잠이 큰 기회를 날렸지만 그것도 젊음의 특권 아니겠습니까..ㅎㅎ

아쉽겠습니다..
뭐든지 보고난 뒤에는 기억에 그리 크게 없는대
못보면 늘 여운이 크게 남나 봅니다 ㅎㅎㅎㅎㅎ

못 봐서 남는 여운이 크긴 합니다..ㅎㅎ
오랜만의 추억 소환이라 재밌긴 했어요..

추억할 만한 에피소드가 있으니 된 거죠~ 일출 그까이꺼~ ㅋㅋㅋ

그 때 일출을 보았다면 오히려 재미없었을지도....

재밌게 잘 봤습니다~ ㅎㅎㅎ
유피님 올 해 여름휴가 계획은 어찌되나요?ㅎㅎ
주말에 바쁘실텐데 고생하셔요. 즐거운 주말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씬님도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날이 좋아서 좀 바쁠 듯 하네요. 휴가는 가야하는데 아직 계획은 없네요..ㅠㅠ

산에서는 어지간하면 새벽에 잠을 깨는데..., 도대체 술을 얼마나 드셨길래 9시까지 주무셨답니까요..ㅋㅋ

제말이요..ㅋㅋ 얼마나 먹었는지는 기억안나고 땀 나서 일어난 건 기억난답니다..~~

우와... 얼마나 술을 드신거예요 ㅋㅋㅋㅋ 산에서는 끝까지 조심해야되욬ㅋㅋㅋ 그래두 아쉽당 일출못보셨다니 ㅠ

아쉽지만 포스팅의 반전을 위해서,,,
오히려 다행이었는지도 모르죠..ㅋㅋㅋ ㅠㅠ

ㅋㅋㅋ 그래서였군요. 제가 일출을 영접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았네요. 공덕과 술 ㅋㅋㅋㅋㅋ 이제 뭘 포스팅하실건가요? ㅎㅎㅎ유피님의 맛깔난 시가 그립긴 합니다만!

포스티 할 게 없으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뭐 이벤트 없나 볼까해요..ㅋㅋ
아님 말씀한 거 주문생산이나 해볼까.... 통 감정이 안 잡힌다는 함정이 있긴 하지만요.....

ㅎㅎㅎㅎ 주문생산 포스팅 하시라고 이야기 할까 말까 했는데요... 찌찌뿡! ㅋㅋㅋ 능력있으시잖아요! 뭘 쓰셔도 넘나 좋은것!

일출이 아주 궁금 하군요.

ㅠㅠ 저도 아주 궁금하답니다...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소주가 일출을 앗아갔군요. ㅎㅎㅎ소주를 산에다 바치셨어도 괜찮았을 것 같지만 저라도 다 해치웠을겁니다. ㅎㅎㅎ

나쁜 소주이지만 당장 눈 앞의 유흥을 참아낼 만 한 절제력 따위 필요없을 때였죠...ㅎㅎ

잠이 많은 저는 십분 이해가 갑니다.
뿌리칠 수 없는 꿀잠의 유혹.. ㅠ.ㅠ

절대 일출 보러 산에 가시면 안됩니다...ㅎㅎ
아니면 일찍 도착해서 오후 4시쯤 잠드시면 가능합니다..ㅎㅎㅎ

오랜만에 유니콘피쉬님 글을 정독했네요.
완전끝이라면 다음에는 새로운 주제로 찾아오시겠네요~다음글도 기대할게요^^

인쿠님 오랜만이에요..
새로운 주제 좀 정해주세요...ㅎ
쓸게 없어...ㅠㅠ

그러게 늘 과음이 문제라니깐요 쯧~~~

네 술이 항상 말썽이었어요...
사실 지금도 그래요...ㅠㅠ

서울의 산은 오르는 재미가 없었는데, 설악산에 가보니 경관이 멋져서 홀린것 마냥 계속 걷게 되더라구요. 달력 같다는 표현을 보니 지리산 산행도 그럴 것 같은데, 가는게 쉽지가 않네요.

설악산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지리산의 풍경은 예술입니당...
지리산 등반보다는 시나이 산이 가깝겠는데요..ㅎㅎ

ㅋㅋㅋㅋㅋㅋㅋ 나무 한그루 없는 산은 등산하고 싶지 않아요.

천왕봉 오르는 길의 고사목도 잊을 수 없는 장관인것 같아요^^
완전 끝인데 왠지 더 있을거 같은 ^^

고사목,,, 장관이죠..
그냥 지리산 시리즈로 갈까봐요...ㅎㅎ

역시 술은 우리의 역사에 큰축을 담당하는것 같습니다 ㅋㅋㅋ

그럼요... ㅋㅋ
제가 술을 끊었으면 이미 통일이 되었을지도...ㅎㅎ

아... 일출을 못보셨다니...
살짝 아쉬우셨겠어요.

아쉽긴 했지만 사실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ㅎㅎ

산에서 숙취가 덜해지는 경험은 한번 해보고 싶군요.
등산은 워낙 몸이 비루한 관계로 예전에 포기했구요.ㅠㅠ
처음 가서 천왕봉 일출 보는 건 거의 로또겠네요.ㅎㅎ

해가 쨍하고 뜨는 일출을 처음에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ㅎㅎ
산행을 즐겨하지는 않지만 지리산은 증말 가볼 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