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임상심리전문가의 정신장애 이야기 #16] 신경증과 정신병의 경계: 성격 조직의 발달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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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맥윌리엄스가 쓴 정신분석적 진단 제3장을 공부하고 제 말로 풀어썼습니다.

이 장은 낸시 맥윌리엄스가 친구와의 대화를 상기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심리치료에 관한 경험이 없는 낸시 맥윌리엄스의 친구는 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문제를 듣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덧붙이죠. 세상에는 '미친 사람'과 '안 미친 사람'이 있다. 낸시 맥윌리엄스는 이에 관해 두 가지 질문을 덧붙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미쳤고, 미쳤다면 어떤 식으로 미쳤을까?

정신장애에 관한 지금의 진단 분류체계는 100년 전쯤 Emil Kraepelin(1856–1926)이라는 독일 정신과 의사가 신경증(Neurosis)과 정신병(Psychosis)을 구분했던 것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낸시 맥윌리엄스에 따르면 Kraepelin은 조발성 치매(dementia praecox)라는 용어를 통해 내인성 요인(유전적 요인, 뇌의 이상 등)에 의해 발병한 치료 불가능한 정신장애의 개념을 설명한 바 있는데, 이것이 정신병에 해당합니다. 반면 오늘날 양극성장애(조울증)로 부를 수 있을 만한 manic-depressive psychosis는 환경적 변수들이 장애의 발병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기 때문에 신경증에 가깝다고 보았죠. Freud는 이런 Kraepelin의 분류 기준을 받아들입니다. Freud의 환자 중 "Wolf Man"은 그가 obsessive-compulsive neurosis라고 기술했죠. 오늘날의 개념으로 보면 강박성 성격장애입니다.

강박증에 관한 보다 세부적인 분류를 알아보는 것은 성격발달의 수준을 어떻게 나누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조금 풀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DSM-5에는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가 있고 강박성 성격장애(Obsessive-Compulsive Personality Disorder)가 있습니다. 이 둘의 주요 차이는 1.얼마나 오랫동안 증상이 지속됐느냐, 즉 상대적으로 급성이냐 만성이냐 2. 환자가 증상을 자아이질적으로 느끼느냐 자아동질적으로 느끼느냐 입니다. 강박증이 매우 오랫동안 지속됐고, 자아동질적인지라 증상으로 인한 불편감을 전혀 느끼지 못 한다면 강박성 성격장애에 해당합니다. 비교적 급성이고, 강박증상이 불편감을 초래하지만(즉, 자아이질적이지만) 강박사고나 강박행동을 안 하면 뭔가 파국적인 일이 발생할 것 같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박사고 및 행동이 시키는 대로 따르게 된다면 그것은 강박장애죠.

강박장애의 세부진단 중에 with absent insight/delusional beliefs 라는 게 있습니다. 강박장애는 자아이질적이라고 했는데 강박장애 중에도 자아동질적이라 자신의 증상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고 강박사고를 진실로 믿는 망상적 신념을 지닐 수 있다는 말입니다. 복잡하죠? 이런 사람은 신경증일까요 정신병일까요? 증상이 자아동질적인 데다가 현실검증력이 없으니 정신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혹시 이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강박증은 이렇듯 [증상에 대한 통찰이 있는 강박장애]-[강박성 성격장애]-[증상에 대한 통찰이 전무한 강박장애]로 나눌 수 있습니다. 증상 신경증(Symptom Neurosis)-신경증적 성격(Neurotic Character)-정신병의 수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성격장애, 즉 신경증적 성격에는 신경증적인 수준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류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반사회적 성격장애나 경계선 성격장애라고 부르는 성격장애는 신경증이라기보다 정신병적인 수준에 가까워 보입니다. 이런 사람을 치료함에 있어 기존의 분류 체계를 통한 진단이 한계에 봉착합니다. 임상가들은 곧 다른 분류 체계를 고민하게 됩니다.

임상가들의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해주었던 것이 영국의 대상 관계 운동(Object Relations Movemnet)과 미국의 대인관계 학파(Interpersonal Group)입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영유아기의 발달 단계를 특정 순서대로 지나간다고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들어보셨을 구강기-항문기-남근기.. 이런 단계죠. 이 중 어떤 단계에 고착되었는지가 이후 성인의 삶의 형태를 상당 부분 결정한다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런 추상적 이론을 대인관계에 비춰 조금 더 현실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발달시킨 게 영국의 대상관계 이론과 독일 태생의 에릭 에릭슨입니다. 대상관계 이론을 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헝가리 태생의 의사 마가렛 말러(Margaret Mahler)는 다음과 같은 발달 단계를 얘기합니다(괄호 안은 말러의 발달 단계에 상응하는 에릭슨의 발달 단계 과업입니다). 이 중 어떤 단계에 고착되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조직의 발달 수준을 알 수 있다고 보았죠.

  1. dependency issues (trust vs. mistrust)
  2. separation–individuation issues (autonomy vs. shame and doubt)
  3. more advanced levels of identification (initiative vs. guilt)

저도 아직 공부가 더 필요한 부분이지만 1번부터 살펴볼까요. 영아는 자아경계가 발달하기 전이기 때문에 내가 엄마인지 엄마가 나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 머무르게 됩니다.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며 공생(symbiosis)하는 단계죠. 쾌/불쾌의 '느낌'만이 존재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불쾌보다 쾌를 훨씬 더 많이 경험할 수 있어야 세상에 대한 신뢰가 생깁니다. 에릭슨이 trust vs. mistrust라고 나눈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참 따뜻하다.' 언어 이전에 이런 느낌이 형성될 수 있어야 언어의 세계로 접어들었을 때 세상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죠. 세상을 신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와 내가 아닌 것에 관한 최소한의 구분이 가능해집니다.

이 단계 이후에는 분리-개별화(separation–individuation)의 단계가 이어집니다. 아이가 엄마와의 공생관계를 벗어나 하나의 독립된 자아가 되는 과정입니다. 아이를 낳은 부모라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것인데, 생후 10개월이 넘어가면서부터 아기는 엄마 품에서 빠져나와 기거나 걸으며(걷는 건 대개 돌 이후) 방 안 여기저기를 탐색하게 마련입니다. 굉장히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신이 나서 걸어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다가 16개월 즈음부터는 엄마와의 따뜻했던 공생 관계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와 자율성을 지키고자 하는 욕구 사이의 심한 내적 갈등이 발생하게 됩니다. 수련 받을 때 제가 공부하며 써놨던 글을 일부 수정하여 옮겨 옵니다.

이 때의 아기들은 엄마가 자신을 보살펴 주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엄마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신경을 쏟으면 엄마를 밀어내고 거부하는 행동을 반복한다고 한다. 연습기(10~16개월)의 의기양양함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도 세상에 많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면서부터 누그러지기 시작하고, 이 때 엄마와의 공생관계 속으로 퇴행하려는 욕구가 생겨나게 된다. 하지만 연습기의 과대성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에, 항상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만은 아닌 엄마에게 완전히 의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혼자서 세상 속으로 나가기에는 두려운 마음이 큰 양가감정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내적 갈등이 엄마에게 와서는 이내 엄마를 밀어내고 거부하는 혼란스러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단계를 마가렛 말러는 재접근기라고 칭했습니다. 재접근기를 정상적으로 통과한다면, 아기는 자신의 전지전능감을 점차 떨쳐 버리게 됩니다. 전지전능감을 버림으로써 심하게 취약해진 자신을 보듬어주는 엄마의 사랑 안에서 그렇게 '보듬어주는 엄마'를 마음 속에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이렇듯 엄마를 내면화 하게 되는 단계가 동일시(identification) 단계입니다. 이제 엄마가 없어도 마음 속에 보듬어주는 엄마가 있기 때문에, 즉 대상항상성이 생겼기 때문에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이후의 삶에서 감정조절을 계속 배우게 되겠지만 가장 중요한 초석을 쌓게 되는 것이죠.

이런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 모델은 성격조직의 발달 수준에 상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공생단계에 고착된 사람은 정신병, 동일시 단계를 통과한 사람은 신경증 성격 조직을 지녔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 분리-개별화 단계에 고착된 경계선(Borderline) 성격 조직이 위치하게 되죠.

잠깐 옆길로 새자면, DSM 진단 분류 체계에 경계선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가 있습니다. 지금이 DSM-5 버전인데 1980년에 나온 DSM-III부터 경계선 성격장애가 포함되었습니다. 이 장애가 DSM에 포함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정신과 의사인 Gunderson입니다. DSM-III에 경계선 성격장애가 포함되면서 경계선이라는 용어가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성격장애'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폭이 축소돼 버린 감이 없지 않다고 합니다. 낸시 맥윌리엄스는 이에 대한 우려를 표현합니다.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I worry that with the DSM definition having become accepted, we are losing a way of talking about, say, obsessional or schizoid people at the borderline level (e.g., the “quiet borderline” patient of Sherwood & Cohen, 1994).

자기애성 성격장애나 경계선 성격장애를 연구하다 보면 반드시 마주치게 돼 있는 정신과 의사가 Otto Kernberg입니다. Kernberg는 Borderline을 성격조직의 발달 수준에서 논하는 대표적인 학자라고 합니다. Kernberg는 '경계선'을 다음 두 가지로 정의 내립니다. 1. 정체성 통합의 결여 그리고 2. 현실검증 능력이 완전히 상실되진 않았지만 일차적(원초적) 방어에 의지한다는 점입니다.

경계선 성격장애는 신경증적 성격이라고 부르기에는 정신병에 가까워 보입니다.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환자는 실제로 환청을 듣거나 이인감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현실검증 능력을 일시적으로 상실할 때가 있고 이럴 때 보면 정신병 환자 같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Kernberg가 정의 내린 것처럼 이들은 신경증이나 정신병이 아닌 '경계선' 성격 조직으로 개념화하는 것이 임상적으로 유용합니다. 경계선 수준의 경계선 성격장애라 하니 동어반복적인 면이 있는 것 같네요. 이해를 더 돕기 위해 경계선 수준의 강박성 성격장애, 경계선 수준의 연극성 성격장애, 경계선 수준의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들 수도 있습니다. 응용도 가능합니다. 신경증 수준의 강박장애(자기를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고 현실검증 능력이 온전한 강박장애), 경계선 수준의 강박장애(자기에 대한 설명이 매우 단편적이며 현실검증 능력이 많이 약화된 강박장애), 정신병 수준의 강박장애(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조차 분명하지 않으며 현실검증 능력을 상실한 강박장애)로 나눠볼 수도 있을 테죠.

성격조직의 발달 수준에 따른 이런 틀은 치료에 있어서도 유용합니다. 일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진단은 치료와 직결됩니다. 이런 성격조직의 발달 수준을 잘 이해하는 것이 진단에 중요하고요. 성격조직의 발달 수준이 지닌 치료적 함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신병 수준이라면 현실검증을 잘할 수 있게 도와야 할 것이고 신경증 수준이라면 자아의 경직된 방어 체계를 유연하게 만들 필요가 있겠죠. 경계선 수준이라면 롤러코스터 탈 준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치료를 받으러 와서도 치료를 안 받겠다는 태도를 보이기 쉽죠. 엄마에게 와서는 엄마 밉다고 밀쳐내는 아기처럼요. 환자로부터 야기되는 온갖 부정적 감정의 소용돌이를 잘 버티면서, 자아동질적으로 느껴지는 환자의 증상을 자아이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관건이라고 합니다.

ref)
McWilliams, N. (2008). 정신분석적 진단: 성격구조의 이해 (정남운, 이기련 공역). 서울: 학지사. (원서출판 1994).

2018.07.24 12시54분 최종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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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차에 도전하세요

그리고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도전했습니다~!

역시나 명 해설입니다. 대단히 어려운 개념을 쉽게 잘 풀어주셨습니다.

리스팀하고 가끔씩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글 쓸 때면 어깨에 조금은 힘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 쉽게 풀어주셨다고 하니 안도감이 듭니다.

흥미로운 주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나무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