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또 저가형 태블릿을 내놓았고, 40만원 정도에 아이패드 에어 2를 사서 쓰고 있는 나는 그동안 잘 쓴 것은 생각 안 하고 뭔가 손해본 기분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어째 사람이 물건을 샀으면 자기 것이라 생각하고 써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꼭 다시 팔아서 최대한 많은 금액을 회수하려 드는 것이다. 금전적 집착과 물질욕에서 비롯된 사고방식인데, 결국 모든 것은 내 손을 거쳐갈 뿐 나는 빈손으로 가게 된다는 불교적 무소유 관념과 엇비슷하게 맞물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우습다.
아무튼 나는 아이패드를 1세대 끝물부터 쓰기 시작해서 2를 오래도록 썼고, 그러다 넥서스7 2세대를 들였고, 그 뒤에 아이패드 2를 처분한 뒤 아이패드 에어2를 샀다. 태블릿을 두 종류나 쓰고 있는 것이다. 남들은 스마트폰 하나로 잘만 생활하고, 심지어 태블릿을 사놓고도 오래도록 손도 안 대는 경우도 있다는데 어째서 태블릿이 둘이나 필요하단 말인가?
하지만 쓰다 보니 어느 것 하나 필요하지 않은 게 없다. 어차피 스마트 기기가 거의 그렇듯이 대체로 할 수 있는 기능은 비슷한데 사이즈가 다른 탓에 용도를 나눠 쓰게 된 탓이다.
아이패드는 학생 시절에는 늘 갖고 다니며 노트 필기도 하고 게임도 하고 책도 보고 온갖 용도로 사용했지만, 이제 밖에서 작업할 때는 맥북을 갖고 다니니 굳이 아이패드를 쓸 이유가 없다. 자연히 아이패드는 집안에서 '키보드가 붙어있지 않은 노트북’ 비슷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맥북 옆에 놓고 유튜브로 작업용 배경음악을 틀어놓았다. 음악이야 당연히 맥북으로도 틀어놓을 수 있는데 어째서인지 꼭 아이패드를 사용하게 된다. 창 전환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 공간에서 작업을 수행시키는 것보다는, 눈만 돌리면 보이는 자리에서 음악이 재생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더 좋은 게 아닐까 싶다. ‘그런 뭔지 모를 레이저총보다는 더블 배럴 샷건이 최고지’ 하는 구닥다리 감성의 디지털판에 가깝다.
쉬면서 영상을 감상할 때도 그 자리에서 창을 전환하면 그만일 텐데, 십중팔구 아이패드를 들고 자리를 옮기게 된다. SF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아무데나 화면을 띄워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용하는 모습이 흔히 나오는데, 그것을 물리적으로 최대한 가깝게 구현한 모습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맥북 화면과 비교해도 그리 작지 않은 화면을 침대에서도, 소파에서도, 식탁에서도 쓰는 것이다. 맥북으로도 하려면 못할 거야 없지만, 그건 역시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물리적으로도 다루기 귀찮고, 심리적으로도 영 손이 가지 않는다. 나에게 노트북이란 어쩐지 ‘지금부터 이걸 꼭 하고 말겠어’ 할 때 쓰는 결전 병기처럼 느껴지는 탓이다. 코트가 아무리 멋지고 훌륭해도 편의점 갈 때 입기는 꺼려지는 것과 비슷하달까.
그럭저럭 아쉽지 않은 대화면이 필요하지만 그렇게까지 본격적으로 필요하지는 않은 애매한 상황에는 역시 태블릿이 적절하다. 운동할 때도 꼭 아이패드로 뭔가를 틀어놓고 하는지라 실내 사이클에도 옷걸이를 구부려 거치대를 만들어 놓았는데, 여기에 딱 맞는것은 역시 아이패드다. 스티브 잡스가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는 카테고리를 보급했구나 싶다.
(앵그리버드를 할지라도 태블릿으로 하면 좀더 여유롭고 전문적인 느낌이 난다)
하지만 집을 나서면 당장 아이패드를 쓰기에는 부담스러워진다. 특히 지하철 같은 교통수단에서는 가방을 크게 열고 아이패드를 꺼내서 두 손으로 잡고 사용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특히 동영상을 틀어놓으면 이건 옆 사람에게 같이 보자고 보여주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모양이 되기 때문에 부담스럽기 이를 데 없다. 그런 사람 옆자리에 앉아봐서 알지만 옆자리 사람으로서도 부담스럽다. 사마귀처럼 뭐가 움직이는 게 보이면 저절로 눈이 한 번은 가고 마는 것이다.
이럴 때 활약하는 것이 7인치인 넥서스 7이다. 점퍼 주머니에도 들어가는 이 기기는 한 손으로 잡기도 알맞고,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내가 너무 대놓고 광고하듯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부담감도 거의 없다. 덕분에 집이 아닌 곳에서 스마트폰 보다 큰 화면을 쓰고 싶을 때는 꼭 넥서스 7을 쓰고 있다. 특히 전자책을 읽을 때 가장 이상적인 사이즈라고 멋대로 판정했다. 실제로 문고본과 너비가 비슷하기도 하다. 주머니에 들어가는 휴대용 기기가 가질 수 있는 최대 사이즈가 이 정도 아닐까? 아이패드 미니도 훌륭한 물건이긴 하지만, 넓적한 탓에 주머니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아무튼 집안에서는 아이패드를, 집 밖에서는 넥서스 7을 태블릿으로 쓰는 셈인데, 집에서 뭔가를 읽을 때는 담당 분야를 미묘하게 나누고 있다. 둘 다 쓸 수 있는 상황에서는 그때그때 기능과 기분이 복잡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일단 웹툰은 넥서스 7으로 보게 된다. 화면이 크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니라 아이패드를 쓰면 그림을 필요 이상으로 확대해서 보는 기분이 드는 탓이다. 하지만 펼침면으로 보는 단행본 만화는 아이패드로 감상한다. 실제 만화책과 흡사한 감각으로 보려면 아이패드로 볼 수밖에 없다. 도트가 보이지 않는 고해상도로 만화책을 펼쳐놓고 손으로 들고 보는 맛은 다른 방법으로 재현하기가 힘들다. 한편 넥서스 7은 세로로 길어서 펼침면 감상이 불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원래 스크롤해서 보는 환경에서 만들어진 웹소설류는 단행본으로 사놓고도 넥서스 7으로 보는 편이다. 아무래도 한 손에 어울리는 정서적 무게감 같은 것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대조적으로 아주 무거운 소설이나 작법서, 자기계발서 따위는 책상 위에 아이패드를 세워놓고 바르게 앉아서 펼침면으로 읽는다. 이런 책들은 어째 한쪽면으로 보면 두꺼운 참고서 한쪽을 말아놓고 보는 것처럼 영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써놓고 보니 정말 괴팍하기 짝이 없군. 뭐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다 있담.
그나저나 요즘에는 스마트폰도 워낙 대형화되어서 7인치대의 태블릿은 필요없는 게 아닐까 싶을 때가 많다. 사실 아이폰 6s를 쓰는 나도 어쩌다 밖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 때 ‘이럴 줄 알았으면 넥서스7을 가져올 걸!’ 하고 땅을 치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아쉽긴 하지만 6s로도 어지간한 일은 다 할 수 있다. 적어도 밥을 티스푼으로 먹는 수준으로 불편하진 않다.
그러나 역시 밖에서도 태블릿이 있는 편이 훨씬 나은 것은 사실이다.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굳이 핫스팟을 경유해야 하는 와이파이 모델 태블릿이 갖는 특유의 매력 같은 것이 있기도 하다. 이런 물건을 꺼내들고 핸드폰을 집어넣으면 나는 종이책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온갖 쓸모없는 알림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물론 따지고 보면 내 정신상태가 문제인 셈이지만......
아무튼 이제 태블릿 없는 일상은 영 상상하고 싶지 않다. 넥서스 7은 험하게 써서 많이 상했는데, 이 녀석이 박살나면 비슷한 사이즈의 태블릿을 새로 살 작정이다. 물론 한 기기의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굳이 태블릿 둘을 쓸 필요도 게 없겠지만, 그런 기기가 보급되려면 5년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2018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