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신기할 정도로 컴퓨터를 잘 주워오는데, 사실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잘 보면 뜻밖에 데스크톱이든 노트북이든 컴퓨터를 싹 몰아서 내다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까 신기한 부분은 아버지가 컴퓨터를 잘 발견한다기 보다는 잘 주워온다는 쪽일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점은 버려진 컴퓨터들이 전혀 쓸 수 없는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컴퓨터라는 게 아무리 정밀한 기기라지만 어지간해서는 돌이킬 수도 없을 정도로 고장나는 경우도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냅다 던지거나 물을 쏟지 않고, 먼지도 잘 털고 정리도 잘 해주면 꽤 오랫동안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집에 낡은 컴퓨터가 입고되면 이것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지 점검하는 것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된다. 핵전쟁으로 문명 대부분이 파괴된 세계에서 ‘헤헤, 이건 쓸만 할 지도 모르겠는걸’ 하고 잡동사니를 주워모아 수리하는 상점을 운영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주워온 컴퓨터가 유용하게 쓰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직도 쓸만한 컴퓨터라면 당연히 버릴 리가 없고, 그리고 낡은 컴퓨터라도 잘 관리해서 오래도록 쓰는 사람이라면 컴퓨터를 그런 식으로 무방비하게 완제품으로 냅다 갖다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버려진 컴퓨터를 주워다 수리해 본다는 것은, 컴퓨터에 대해 정말 잘 모르고 돈만 많은 사람이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중고로 처분하기도 귀찮아서 갖다 버린 경우만을 바라는 셈이다.
물론 이것은 도둑놈의 심보라, 정말 멀쩡하고 좋은 컴퓨터가 버려진 경우는 없었다. 멀쩡한 물건이 버려지지 않는 사회는 교육 수준이 높고 절약하는 사회일 테니 기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 개인적으로는 영 기뻐할 일이 아니다. 결국 내가 하는 짓은 버려진 컴퓨터를 주워다 잘 닦고 부팅이 될 때까지 손을 본 다음, 다시 내다 버리는 짓이 될 확률이 지극히 높기 때문이다. 이 비슷한 짓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주워온 컴퓨터를 부팅이 될 때까지 손 본다’는 것은 문장으로 쓰면 지극히 간단하지만 솔직히 여간 번거로운 짓이 아니다. 이상이 있는 부품을 찾아내서 정상 부품으로 갈아끼우는 것은 물론이고, 심하면 포맷을 하고 윈도우까지 새로 깔아봐야 할 수도 있다. 프랑켄슈타인 씨(흔히 알려진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자)가 이 무덤 저 무덤을 파헤쳐 신선한 장기를 손에 넣은 다음 열심히 꿰매고 전기 충격을 가하는 것과 비슷한 짓이다. 심지어 십중팔구 멀쩡한 물건이 나오지 않는 것까지 똑같다!
사실 나도 꽤 예전에는 돈만 많고 컴퓨터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충 버리는 물건이 제법 될 테니 잘하면 부품을 조합해서 그럭저럭 쓸만한 완성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데스크탑을 사자니 돈 아깝고, 없으니까 은근히 아쉬운 상황이라 그런 요행을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몇 번 시행착오를 겪어본 결과 내가 얻은 결론은 ‘다들 버릴 만한 물건만 버린다’ 는 것이었다. 그리고 변변치 않은 물건들을 아무리 모아봤자 대충 10만원쯤 주고 산 중고보다 못할 게 틀림없다는 확신도 얻었다. 10년 전 CPU와 10년 전 램이 절묘한 시너지 효과를 내서 5년 전 물건 같은 성능을 낼 수는 없는 것이다. 아귀만 맞으면 굴러가게 되어 있는 자전거 수준이 아니지 않은가.
(컴퓨터는 고쳐도 쓸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감을 잡기가 상당히 어려운 물건이다.)
하지만 그런 결론을 얻은 뒤에도 넷북을 손볼 일이 생기고 말았다. 외관으로는 완전히 멀쩡하게 생긴 넷북이었으므로 또다시 은근한 기대감이 생겼다. 넷북은 부품을 갈아끼울 수도 없으므로 성공 아니면 실패로 순식간에 결론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상상 이상으로 내부가 엉망진창이었던 것이다. 무선 인터넷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트랙패드 드라이버도 제대로 깔려있지 않았고, 심지어 문서함에 쓰던 파일도 고스란히 있었다.
상태라 그렇게까지 엉망이니 원래 낼 수 있을 성능을 가늠할 수도 없었다. 잔뜩 녹슨 골동품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녹을 닦아내고 광을 내어 보는 수밖에. 그러나 그건 처음 생각한 것보다 훨씬 지독하고 고역스러운 작업이었다. 무선 인터넷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XP를 업데이트 해야 했는데 공식 사이트에서는 더이상 지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여기저기를 뒤적인 끝에 간신히 업데이트 했고, 삼성에서 제공하는 자동 업데이트 프로그램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서 온갖 드라이버를 한참 뒤적인 끝에 겨우 필요한 것들을 설치했다. 하드도 정리하고 아무 쓸모 없는 램 상주 프로그램들도 청소했다. 그리하여 넷북은 몇 시간 만에 겨우 진창에서 기어나와 원래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멀쩡한 기기는 아니었다. 아니, 멀쩡하긴 했지만 너무나도 철지난 기기였다. 그 고생을 해서 살려놨는데, 유튜브조차 제대로 띄우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컴퓨터를 보면 늘 신기하게 느낀다. 분명 한 때는 깔끔하고 가벼우며 웹서핑과 문서 편집에 최적화된 기기라고 선전했을 물건인데, 세월이 좀 지났다고 이 정도로 못 쓸 물건이 될 수 있는 걸까? 10년 전의 웹사이트가 지금의 웹사이트보다 훨씬 가벼웠다는 말인가? 시대가 지나면서 기술이 발전하고 플래시도 퇴출되었으니 예전 기기로도 충분히 가뿐히 웹서핑을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질문에 누군가는 답을 갖고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나는 아니다. 나는 결국 이 넷북을 대단히 저렴한 가격에 팔기로 했는데, 매입 업체에서도 거절당한 것은 물론이고 일반 중고 장터에서도 원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요즘이야 스마트폰도 이보다 훨씬 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물건의 가치는 동일한 무게의 지점토보다도 떨어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 물건을 꼴도 보기 싫다고 내다 버리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을 뒤적여서 그나마 멀쩡한 물건으로 만들어놓은 시간이 아까워서 도저히 냅다 던질 수가 없었다. 한때는 멋진 디자인에 가벼운 무게로 썩 괜찮은 기기라는 평을 받았을지도 모를 물건이, 이제는 아무도 원치 않는 고물이 되어 처박혀 있다고 생각하면 괜한 감정이입이 되기도 한다. 누구나 한때는 썩 괜찮은 평을 받았지만 지금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생의 한 부분을 떠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제때 포기하지 못하면 헤어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쏟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한 점은, 고물은 인생과 달라서 폐품처리를 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간 들인 노력과 시간은 뭐 어쩔 수 없지, 하고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거나 막 주워오는 것도 문제가 있겠지....... 아무튼 여러분도 엉뚱한 일로 횡재할 생각하지 말고 그 시간에 더 재미있는 일을 즐기거나 생산적인 일을 하시길.
(2018.02.14.)
노력이 대단하십니다. 저같으면 손볼 줄도 모르지만 쓰레기 주워 온다고 아버지한테 모진 소리나 했을텐데..
그나저나 넷북은 어쩌실 건가요? 물건에도 정이 들더라구요.. ㅎㅎ 글 정말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자주 들릴게요.. 팔로우 누르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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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팔로우 감사합니다. 저도 싫은 티를 안 내는 건 아닙니다ㅎㅎ 넷북은 아마 고물상에 아주 헐값에 버릴 것 같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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