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 92. '오랫동안'에 색깔을 입힌다면?

어느누구 어떤존재이든지 오랫동안을 함께 한다고 약속하는 것은 처음 한 순간의 감정에 치우친 약속으로만 끝나게끔 되어져 있다.

어차피 세상에는 영원히 오랫동안 함께 하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을 테니까, 가급적이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좋은 기분상태일 때, 그러한 시간 동안만이라도 함께 있어보자는 약속에 그치는 것일 뿐,

'오래오래 함께' 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때가 되면 헤어지게끔 되어져 있고 때가 되면 남남이 되는 것은 정확한 자연의 법칙이다. 결국은 각자의 성장과정이 다른 것이고,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성장의 길로 가기를 선택하게끔 되어져 있는 것이 모든 존재의 당연한 자유의지와 선택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오래', '오랫동안', 함께 한다는 것은 아주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것일뿐, 시간의 개념으로서 언제부터 언제까지라는 식으로 한정을 지을 수 있는 대상이 결코 아니겠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죽도록 사랑의 감정이 사무친 존재가 있더라도, 때가 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끔 되어져 있고 멀어지게끔 되어져 있는 것이 최소한 우리가 보도 듣고 말하는 이 세상의 범위 내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법칙이다.

비록 눈에 보이지도 느낄 수도 없는 다른 차원의 이면세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으로 모든 존재가 하나로 연결되어져 있을지는 몰라도, 이 현상적인 세상의 차원에서만은 결코 "오래오래 오랫동안 함께" 라는 것이 영원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처음 만남이 이루어지고 관계가 가까워지게 되면 당연하다는 듯이 "오래오래 오랫동안 함께" 라는 말을 남발하고 있다. 그 "오래오래 오랫동안 함께" 라는 말이 나에게는 20년이 될 수는 있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고작 1년 일 수도 있는 것이겠고, 아니면 그 반대로도 될 수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오래오래 오랫동안 함께' 라는 말은, 그 속에 숨어있는 속 뜻이 어차피 오래하지 못할 것임을 전제로 한다는 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결혼식을 올리는 신혼부부에게 그 앞에서 주례사를 읽는 지긋하신 분께서 조언하시기를, "이 두 사람은 검은머리 흰머리가 되어서 늙어 죽을때까지 서로를 배반하지 아니하며, 평생의 반려자로서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하느냐? 라고 묻게 되지만, 이 말은 상당히 자기모순적인 억지의 틀 속에 인간의 의식을 가둬두려는 무자비한 강압에 다름 아니다.

어차피 신랑이나 신부나 각자가 생각하는 "아주 오랫동안 오래오래"의 시간적 개념이 서로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한 세월이 흘러가면서 각자가 느끼게 되는 "오래오래 아주 오랫동안"이라는 시간의 관념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식으로 고정적이지도 못하고 변화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인데, '한 평생' 이라는 지켜질지도 의문스러운 시간의 틀 속에 옭아 메어버리는 것은 너무도 잔인한 짓이 아닐까?

차라리 너무도 대중적이고 흔해 빠진 결혼식 주례사의 대표격인 멘트이지만, "검은머리 희머리 되도록"과 "늙어 죽는 그 날까지 함께" 라는 비현실적이고도 너무도 매몰찬 시간의 속박을 포기하고, 그냥 " 두 사람의 마음이 잘 합해져서 오래오래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는 그 순간까지" 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멘트로 바꿔주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이 아닐까?

어차피 지금은 평생 한 명의 배우자만을 기대고 의지해야 한다는 강압적인 분위기의 결혼문화가 존재하는 시대도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오늘날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아주 오래오래 오랫동안 함께" 라는 말에 굳이 색깔을 입힌다면 검은색과 흰색의 이중성적인 색깔이라는 설명은 아주 일리가 있는 설명이 된다. 이중적이고 모순적이고 어차피 서로의 "오랫동안"이라는 것에 대한 시간의 관념이 일치해 들어갈 수도 없으면서, 아주 그럴싸하게 포장을 잘 해서 내뱉는 말이기 때문에 검은 것과 흰 것의 모순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듯한 그럴싸한 색깔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