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느로 귀환
스테판 들롬
페스티벌들이 이어지고 서로 비슷하지 않다. 지난 해 공식적인 선택이 행복하지 않은 결정들로 우리를 실망시켰기 때문에 그만큼 이상했었다. 올해 경쟁은 제대로 노선을 취했다. 편집진은 만장일치로 두 개의 황금 종려상을 택했다. 그것의 양상들 아래 일종의 야수적인 유연성으로 한 장르에서 다른 장르로 웃음에서 섬뜩함으로 이상한 종류로 튀어 오르는 현기증 나는 폴 버호벤(Paul Verhoeven)의 <엘(Elle)>.그리고 우리를 유머, 무기력과 아버지와 딸 사이의 관계의 착란으로까지 밀어 부치면서 끝까지 가기로 놀라게 한 <다른 모든 사람들(Everyone Else)> (2009) 이후 우리가 기다려온 마렌 아데(Maren Ade)의 <토니 에르드만(Toni Erdmann)>. 우리는 아연실색하게 하는 <네온 데몬(The Neon Demon)>, 그러나 <아쿠아리우스(Aquarius)>,<패터슨(Paterson)>, <러빙(Loving)>, <줄리에타(Julieta)>, <나의 루트(Ma Loute)>, <수직으로 머무르다(Rester vertical)>,<단지 세상의 끝(Juste la fin du monde)>도 있다. 경쟁작의 절반일 것이다. 라 크로와젯트( la Croisette)에 대해서 말하는 것의 반대에 있었을 경쟁작이라는 훈장 옆에서 그리고 단지 비평가들 중에서만이 아니라 대중과 산업 속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한다.
<토니 에르드만>은 기자 시사회처럼 공식 시사회에서도 같은 정도로 환호를 받았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다시 한번 칸느의 자연주의 트로피- 테라스의 토론에 겨우 끼어 들었고 그만큼 이 영화는 기분 나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선한 로치(Loach)였고 경쟁에서의 선택을 위한 챔피언의 루틴을 격려했다. 이 아주 보수적인 심사위원장은 버호벤, 마렌 아데 혹은 레픈 Refn의 미장센에서 반짝이는 지성의 반대방향에서 시나리오의 영화들을 포상할 것이다. 로치, 문주(반어적이게도 예의바른 시나리오에 걸쳐있는 영화의 미장센 부문 상), 물론 파라디(Farhadi, 시나리오와 여배우상) 그리고 장 뤽 라가스(Jean-Luc Lagarce)의 소설을 각색한 심리 드라마의 돌론 조차 가족: 켄 로치의 이상적인 포상. 돌란(Dolan), 파라디, 문주(Mungiu). 의 억압된 본능의 발산, 가족으로 판단하는 심사위원의 민감한 선을 건드려야만 했다. 모든 배우 아티스트인 이자벨 위뻬르(Isabelle Huppert), 소니아 브라가(Sonia Braga) 또는 아담 드리베(Adam Driver)에 대한 폭력적인 거부처럼 연기상은 논리적으로 투명한 배우들, 시나리오의 수송 책임자(자클린 조제(Jaclyn Jose)와 샤합 호세이니(Shahab Hosseini))에게 돌아갔다.
영화제에서 가장 주목을 끌었던 토니 에르드만의 승리는 미래에 대한 일종의 중요한 격려가 된다. 페스티발이 단지 우리에게 위대한 배우들의 소식들을 알려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선 시네아스트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일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커다란 공기의 뷔페. 서른 아홉 살의 여성감독이 작은 못 안에서 힘을 종종 유지했던 세대의 장면 앞에서 만난다. 칸느에서 세 개의 분야들에 오른, 이번 달에 개봉하는 앙토넹 페레차코(Antonin Peretjatko)의 <정글의 법칙(La Loi de la jungle)>의 거절은 그에 대한 일종의 보충적 증거다. 그리하여 토니 에르다만의 성공은 하나의 코미디라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경쟁에서 선택되었다면 그것은 우리가 <정글의 법칙>보다 그와 같이 솔직한 소극(笑劇) 앞에서 웃음의 붕괴들을 감히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과 반대로 페스티벌의 대중은 코미디들에 대해서 세상에서 가장 열광적이기 때문이다. 망치의 내리침으로 촬영된 엄숙함의 진지하고 암울한 영화들에 대한 형식이 통과되기를 기대하자.
이 영화제 기간 동안 어떤 에스프리가 우리 옆에서 지키고 있었다. 그것은 부드러움으로 잠입하는 영화 속의 경쟁의 가장 축제의 가득한 빛이면서 그와 동시에 그것이 그토록 많이 찾아 왔던 이 축제의 은둔하는 승객이었다. 이사벨 위뻬르가 버호벤의 영화를 소개하러 왔다. 어떻게 조지 밀러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전사가 우리의 분노하는 프랑스 여인, <엘>의 주인공의 여동생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걸까? 그녀는 홍상수의 새로운 영화를 감독의 자발적인 프로그램에 따라서 매우 조심스럽게 촬영하러 왔다. 이 비밀은 몇일 후 한국 매체들에 의해 알려졌지만 두 공모자들은 고양이와 쥐의 역할을 하면서 즐기는 분위기였다. 버호벤과 홍상수의 이 커다란 격차는 우리가 그에게 제의한 모험에 참여한다고 대답하는 잘 나아가는 어떤 여배우의 경력에 대한 웃음의 부재에 가치를 두었다. 그녀의 역할의 미스터리와 연기의 미스터리를 (적게나마) 이해하기 위해서 그녀와 시간을 보내면서 길게 물어야만 할 것이다. 신중하고 통찰력 있는 이사벨 위뻬르는 많은 주의를 기울여서 그녀의 여배우의 예술에 대해서 극도로 소중한 일종의 닻을 들어 올리는 필수불가결한 공식들에 대해서 발화한다.
까이에 뒤 시네마 723호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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