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티아고. 여정의 기록 #2

in camino •  7 years ago  (edited)

2017 08 31 /  day 1 / Saint jean pied de port ~ Roncesvalles
 첫날, 생장 피에드 포르 ~ 론세스바예스 / 피레네 산맥  (1400m) / 26KM 

첫날은 가장 험한 코스중 하나인 피레네 산맥(1400m)을 넘는 날이다. 설레지만 살짝 겁이나기도 했지만 일단은 실감이 나지 않고 내가 이곳에 와있다는 그 사실자체에 벅차오르고 신이난다. 

다들 두근거리는 마음이었겠지. 각자의 까미노의 첫 걸음. 첫번째로 만난 조개 표지판! 모든 까미노 루트에는 조개표시와 노란 화살표들이 길을 안내해준다. 길을 몰라도, 지도가 없어도 화살표만 잘 따라가면 길을 잃을일이 없다. 그치만 나는 왜 자꾸만 길을 잃었는지.. 그치만 잃은 길 조차 아름답다.

저멀리 구름이 보이기 시작하는 경치를 열심히 담고있는데 한 외국인 커플이 카메라를 달라고하더니 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찍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말이 뭔가 맘에 크게 와닿았던 기억이 난다.
항상 사진 좀 찍어줄래? 하고 내사진 찍기만 바빴던 나였는데..  누군가를 찍어주고픈 마음, 담고픈 마음.을 가진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했고 길을 점점 걸으면서 나는 어느새 Could you take a picture of me? 보다는 Let me take a picture of you guys !! 를 더 많이 외치고 다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를 담는다는 것. 그들을 기억하고 훗날 추억할 수 있는 기쁨이 어떤것인지. 알게되었다고 할까.

잠깐이었지만 나에게 변화를 준 그들을, 나도 담고싶어서 그들을 카메라에 담았고 지금이순간에도 떠올리고 있다. 

그들과 어느새 조금씩 닮아가고 있는 내모습을 발견할 때.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나도 좋은사람이 되고 싶어서.

안녕? 이곳의 동물들은 사람을 전혀 경계하지 않는다.

구름위에 선 기분은 구름 위에 서 봐야만 알 수 있다. 

#그날의 생생한 기록.

내생에 첫 까미노 데 산티아고!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행복하다. 지금 너무 행복하다.  벌써 이렇게 행복한걸보니 아마 목적지에 도달 했을때는 그 이상으로 행복해질 것 같다. 행복은 먼 데 있는게 아니다. 이게 행복이다. 마음이 가장 충만한 순간. 

나는 지금 내가 불과 몇 년전에 생각해왔던과는 아주 많이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물론 어느정도는 마음 한켠에서 막연하지만 조그맣게나마 꿈을 키우고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이 길 위에 서있는 것이긴 하지만 . 정말 내가 이 길위에 실재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길을 걷고 있다. 처음 혼자 여행길에 올랐을 때, 그리고 처음 내 고향을 떠났을 때, 홀로 사회에 내던져졌을 때, 그리고 그 사회를 벗어나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안정적인 삶과는 먼길로 나오게 되었을 때에도..
생각해보면 언제나 첫 시작에는 막연한 기대와 상상을 했었다. 물론 처음에는 신선함과 설렘이 있지만 동시에 기대한만큼의 실망도 뒤따랐다. 그 실망감은 속상하다거나 부정적인 감정은 아니다. 약간의 안도감 비스무리한것  과 같은, 그러니까 조금의 실망감에 뒤따르는 안도감이라고 할까. 

세상에는 내가 상상했던 것 만큼, 두려워했던 것 만큼
그리 거창하고 대단한 것은 없다는 것.

막상 상황에 맞닥뜨려보면 할만해, 할수있어, 내가 할수있다는 말은 곧 누구나 할수있다는 거다. 나는 특별히 잘난사람도 아니고 똑똑한사람도 아니고 지극히 평범하거나 어쩌면 평범보다 못한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내가 한다는 건 누구나 할수있다는 말이다. 단지 그 시작이 어려울 뿐이다, 다른걸 조금만 포기한다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래야만 한다는 건 아니다. 자신이 원한다면, 그냥 원한다면 마음이 끌린다면 하면 되는거다. 이 까미노 길 만큼은, (아직 시작선에 있긴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어떤 실망도 따르지 않는다. 그냥 너무 행복하다. 사실 사람들이 너무 미화하는 경향이 있어서 막상가면 별거없다는 소리를 들어서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말했다. "나는 가서 그 실망감을 맛보러 갈거야 "라고. 너는 왜 그 길 걸으려고 하니? 라고 물을때면 글쎄 나는 사실은 막상가면 별거없다는 걸 한번 느껴보고 싶기도 해서 가보는거야 라고 말했다. 까미노도 결국에는 별거없다는 걸 내가 직접 몸으로 느끼고 확인하고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오니까 너무 좋은거다. 너무 좋다. 하나도 힘들지 않다 정말이다. 좀 힘들만 하면 뒤돌아서서 광활하게 펼쳐진 이지적인 산맥에 걸쳐진 구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단 몇초만에 재충전이 되는 듯 하다. 이대로라면 30일은 물론 그 이상도 쭉 걸을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마음이 이내 바뀌어버릴지는 아직 모를 일이지만 이번만큼은 이마음이 변치 않을 것 같다. 이 길이 끝날때까지 나는 이 충만한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다른말로는 표현할 수 가 없다. 어떤 말로 이 감정을 좀더 풍요롭게 표현할수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행복하다 충만하다 꽉 차있다 . . ..

내 머리로 더이상의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나는 이 길을 꼭 가족과 함께,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가장 친한 벗과 함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리고 내가 사랑할 나의 자식들과 함께, 꼭. 이 길위에 올라 함께 나란히 한걸음 두걸음 나아갈 것이다.
2017 .08. 31 내생에 가장 꽉 찬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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