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느 영화제의 괴물
스테판 들롬
2015년 칸느 영화제 에디션은 기자들로부터 그다지 호평을 얻지 못했다. 이는 내가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이라 하겠다. 우리는 단 몇 편의 영화들만을 건져서 돌아 왔으며 경쟁 부문에서 토드 헤인즈, 허우 샤오 시엔, 위대한 우리들의 승리자 모레티만이 수상했을 뿐이다. 열 아홉 편 영화들 가운데 세 편은 너무 적은 수다. 수상 소식은 쓰라린 상처를 더하는데 칸느 영화제 요약본은 이번 주 일요일 24일, 작은 스푼으로 추스려졌음을 고백한다. 올해 칸느 영화제의 실패는 두 위치를 점거한 것들이 결합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 첫번째는 이미 잘 알려진 대로 그처럼 무례한 예가 없던 "등단의 아름다운 행진"을 베푼 것이다. 가론의 <테일 오브 테일즈>, 빌뇌브의 <시카리오> 혹은 마이웬의 <나의 왕>은 국제적인 파이의 일부를 차지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웃지 않고서는 도저히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다. 또 배우들의 정책에 대해서도 영화보다 정사(<시카리오>, <테일 오브 테일즈>)를, 혹은, "매개로서의 스타"인 파스빈더와 꼬띠야를 영화제에 오도록 하기 위해 시시한 <멕베쓰 >를 선택한 일을 꼽을 수 있다. 이같은 계산은 선도적 영화, 시장의 법칙을 휘두르면서 영화 시장이라는 곤돌라의 머리에 해당하는 경쟁부문의 존재 근거에 대해서 의문이 들게 한다. 두번째 위치 점거는 더욱 사악한데 그것은 바로 "칸느의 상품들"이다. 이는 칸느 영화제가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어떤 "장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영화제를 위해 제작된 영화들에 대해서 어떠한 가치를 매길 것인가는 사안이 된다. 칸느 상품들은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영화감독들에 의해서, 영어로 만들어진, 스타 게스트들이 출연하는 (존 C. 레일리의 그로테스크한 런닝-개그는 세 편의 칸느 영화제 영화들 중 십 분 동안이나 소개되었다), 국제적인 거래상들의, 충격적이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시나리오의, 혐오스러운 악랄함에 의혹을 제기하게 한다:(<유쓰>, <크로닉>). 그럼에도 이번 영화제에서 좋았던 영화는 옛날에 '어떤 시선' 부문에 올랐던 카닌과 8월 31일, 오슬로의 요고스 란티모스, 그리고 조아침 트리에다. 작품 <랍스터 >는 폭탄보다 더 강력하다. 최근 칸느 영화제의 시스템은 위대한 작가영화들을 격심한 경쟁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작년 우리는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영화들의 세 가지 궤도들을 분석한 적이 있다. 그것은 자연주의(다르덴, 캉떼, 케시쉬), 악당의 영화 (문주, 하네케) 그리고 시적 영화(말릭, 위라세타쿨 )였다. 까이에는 솔직히 말해서 앞의 두 카테고리들에 속하는 충격적인 영화들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취하는 세번째 궤도에 해당한다. 자끄 오디야는 이러한 궤도들이 모두 가능한 종합판으로서 자연주의와 악당 영화를 혼합해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을 거부했던 거대한 폭력적인 제스춰는 아피찻퐁이 훌륭한 영화를 가지고 대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돌아 갔지만 이는 티에리 프레모가 어떤 영화에 대해서는 자기 취향을 양보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됐다. 위대한 프랑스 영화 작가인 필립 가렐의 새 영화들은 ‘감독 주간(라 껭젠느 la Quinzaine)’에서 갈채를 받았다. 미구엘 고메즈의 <천일야화>는 상식에서 벗어난 프로젝트로서 감독이 지향하는 세계를 취하는 한 편의 영화이면서 우리를 완벽한 자유로 인도하는 영화다. 세 달 동안 개봉됐던 반짝거리는 영화들은 올 여름 상영시간이 긴 영화로서 선보인다.작가 영화 시장으로서 칸느 영화제는 세계 영화계의 FMI처럼 괴물이 되어 버렸다. 내적 대안의 부재는 "명성들"이 어떤 것도 발견하게 제안하지 않은 이후 이어지는 비평가 주간과 작가 주간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전 세계적으로 활동 중인 젊은 영화작가들이 부재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최근 우리가 옹호했던 영화들, 오스카 루이즈 나비아 (베를린의 바라, 로카르노의 로스 옹고스), 클레베 멘돈카 필로 (로테르담의 레시프), 가브리엘 아브란테스, 나데이 라피드 알렉스 로스 피에리(로카르노), 토마스 살바도르(쌩 세바스티앙)…등은 칸느 영화제를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온 작품들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 꿈꾸는 작은 아이들이 틀은 둥지는 괴물이 되어버린 칸느가 아니라, 어딘가에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래리 클락의 <우리들의 냄새 >나 페드로 코스타의 <카발로 디네이로>와 같은 영화들이 작년 칸느 영화제에서 거부된 사례와 올해 소쿨로프와 벨로치오가 베니스 영화제로 갈 것이라는 사실은 또 다른 칸느 영화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2015년 6월, 7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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