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에 대하여 1

in career •  6 years ago  (edited)

생각해 보면 나는 줏대 없는 남자였다.

인생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라고들 하는데,
내겐 내가 꼭, 굳이 가고 싶은 방향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잘 모르겠으니 남들은 어딜 바라보나, 눈치를 보고 다수가 선망하는 곳이라면 그게 마치 내 방향이라고 생각해서 그 방향으로 가길 원했던 듯 하다.

꿈이란 것이 자라면서 변하기 마련이지만
어렸을 때 내가 학교 '장래희망' 란에 적었던 것 중 기억이 나는 건 '대통령', '전투기 조종사' 정도였던 것 같다.

부모님을 따라 해외에 갔었던 나는 어떠한 포부도 깊은 생각도 없이,
부모님이 한국에 들어올 때 같이 고교 무렵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국이라는 '좁은 우물' 속에 있던 개구리, 게다가 서울도 아닌 지방도시를 전전해오던 내가
갑자기 우물 밖 연못도 아닌 미국이라는 거대한 '호수'로 내던져진 것이다.

'나'라는 존재와 마주 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 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었다.
안정적인 공무원이라든지, 사회적으로 선망 받는 '사'자 직업을 가지면 될 것 같은 막연한 생각만이 있었다.

그렇게 한국에 들어왔고,
마치 왜 싸워야 하는 지 의미도 모른 채 베트남전에 투입된 미군들마냥 그저 하루하루를 입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텼던 듯 하다.
나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고생한다'는 아주 어중간한 why에 기대 버텨왔다.

당시 나는 열심히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목표하던 인서울 나름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
학과는 내 관심사라기 보다는 당시 사회적으로 선망을 받는 곳으로 점수가 되는대로 가장 높은 곳인 법대를 들어갔다.

내가 들어간 학부의 학생들은 대부분이 자연스럽게도 고시를 준비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렇게 또 주변에 휩쓸리듯 나는 고시 준비를 했다.
나 자신에 대한 성찰 따위, 할 여유가 없었다기 보다는 성찰 자체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른 채 세태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떠다니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법학도 나름 흥미로운 학문이었지만 역시나 '호수'라는 큰 세계를 맛본 개구리에게 연못 같은 국내에 집중하는 법대는 따분했다.
그 무렵 첫 유럽 배낭여행과 일본이라는 가깝고도 먼 나라를 맛본 이후로는 국제 교류가 좋아졌다.
정치외교학과를 이중전공했고 꽤나 성적도 좋았다.
외교관이 되고 싶어 외무고시에 잠시 뜻을 두었지만, 고시라는 '동면'을 감내하기에 나란 개구리는 너무도 인내심이 없었다.
그렇게 학교에서 후원하는 국제교류 프로그램에는 닥치는대로 지원했고 곧잘 붙었다.
하지만 어떤 확고한 뜻이 있어 지원한 것도 아니고 단지 공짜로 해외에 보내주는 게 좋아서 지원했었던 듯 하다.

그래도 성적이며 말발은 좀 있어 가지고 어찌저찌 선발은 되었지만,
점점 나의 이력서는 초점을 잃은 활동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일본에 깊이 끌렸고 그렇게 독학으로 일본어를 득달했다.
당시 리먼 위기가 터져 엔화가 2배 이상 치솟았는데 교환학생을 갈 형편이 안 됐다. 그래서 숙소를 제공해주는 유럽계 제조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아쉬운대로 도쿄에서 생활해 볼 수 있었다.

이쯤되니 난 정말 재밌는 이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글자 그대로 '대단한'이 아닌 '재밌는 이력의 소유자.
법대를 나와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제조회사에서 인턴을 했다.

당시 오지상이었던 나의 상사는 좀 더 남아 이 일을 해주길 원했지만
사실 나는 이 일에 아무런 흥미도 열정도 없었다. 오로지 나의 일본 생활을 지원해 줄 돈이 목적이었다.

그렇게 인턴십을 마치고 입대를 했고 제대를 했다.
복학하자마자 내게 남은 학기는 1학기밖에 없었다.
학교를 더 다니긴 싫었으니 이게 막학기였다.

당장 취업준비를 해도 바쁠 시기였지만, 나는 무슨 패기인지 제대하자마자 스페인으로 떠나 학기가 시작할 때까지 무려 1달 남짓한 시간을 타지에서 보냈다.

부랴부랴 입사지원을 했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 머리 좀 있는 녀석들에게 컨설팅펌, 투자은행가 선망의 대상이었다.
돈도 나름 많이 벌고 말끔한 양복을 입으며 달변하는 그들이 스마트해 보이고 쿨해 보였다.
근데 나는 경영전략, 금융에 대한 지식은 1도 없는 놈이었다.

그렇다.
나는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 되어 있을 때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이 없었다.
여러 개를 어느 정도는 알았지만 어느 것에도 정통하거나 내세울만한 게 없었다.

포부 있게 내 인생의 전략을 세워야 할 판에
나는 제대로 된 취업전략조차 없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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