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사후 세계관은 죽어서 영혼이 천국으로 직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알고 계시다면 성경이 말하는 부활 신앙이 아니라 동화나 무속 신앙에 등장하는 천당을 믿고 계신겁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이미 이 나라에 무속 신앙적인 사후 세계관이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생소한 성경의 개념을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거기에 맞춰 간편하게 설명해왔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지혜로웠고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초보적인 설명을 터득한 이후엔 다음 단계로 가야만 합니다.
그냥 넘어가면 되지 뭐하러 바르게 알아야 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를 지나치면 성경의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기독교인의 궁극적 소망이 무엇인지도 이해할 수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이 구약과 신약 전체, 더 나아가 역사 전체에 걸쳐 펼치고 계신 구원의 드라마를 제대로 알 수 없게 됩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가면 된다" 혹은 "예수 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사영리 전도지 한 장이 복음의 전부라 생각하는 매우 협소한 개념에 머물게 되는겁니다.
물론 예수 믿고 천국 간다는 말이나 사영리 전도지가 틀린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렇지만 복음의 풍성함을 드러내주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비유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간다는 말이 복음의 전부인 것처럼 소개하는 것은, 마치 한국의 대표 먹거리를 소개하면서 불고기나 갈비찜, 순두부 등등의 맛있는 음식들(지극히 주관적인 리스트)은 내버려두고 오직 김치만 소개하는 현상과 비슷합니다.
분명히 김치가 한국의 대표 먹거리인건 맞는데, 명절에 외국인들이 TV에 나올 때마다 김치만을 소개한다면 왠지 모르게 좀 짜증이 나실 겁니다. 이것은 김치의 잘못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사영리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라 생각해서는 더욱 풍성하고 깊은 의미를 누릴 수 없습니다.
이 뿐 아니라, 성경적 사후 세계관을 모르면 여러 신앙적 개념에서 혼동을 겪게 됩니다. 죽어서 영혼이 천국간다는 사후 세계관에는 '부활'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자꾸 교회가면 부활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언제 부활한다는 소리지?" 따라서 부활을 그저 천국 간다는 소리의 비유 쯤으로 대충 생각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이는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 신앙을 제외하고는 기독교에 남는게 없다는 식으로 몇 번이나 호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죽어서 천국 간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게 됩니다. 재림이 매우 애매모호하여 도대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시대에 살게 될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될 일로 생각하고 대충 넘겨버립니다. 혹은 내가 사는 이 시대가 종말의 때여야만 한다는 이상한 집착에 빠지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재림을 '마지막 날에 사는 특정한 사람들만의 소망' 이라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엄청난 오류입니다. 재림은 이미 죽은 사람을 포함한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이 땅에서 거짓이 패배하고, 정의가 세워지며 천국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연과 사회를 돌보지 않게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어차피 버리는 카드로 여겨지는 이 지구가 우리와 대체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더욱 더 교회 안에만 있으려 하는 사고가 굳혀지고, 교회 밖의 것들은 모두 악하다는 이원론 식의 사고가 형성되고 맙니다. 세상의 더러운 것들 몸에 안묻히고 최대한 고고하게 교회 안에서 숨어 있다가 천국만 가면 된다는 사고 방식입니다. 2천년 전에 이러한 생각을 똑같이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이와 정확히 반대로 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소위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일컫어지는 분들이 세상 모든 예술과 학문, 정치 등을 내 편 아니면 네 편으로 가르는 것을 종종 보셨을겁니다. 창조과학이 아니면 전부 나쁜 세속과학, 기독교적 음악이 아니면 모두 사탄의 영감을 받은 노래, 백워드 매스킹, 미디어의 사탄 숭배,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바코드, 베리칩 등등.. 각종 음모론에 집착하는게 다 이원론적 사고 때문입니다. 세상만 악의 구렁텅이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안에 온갖 악한 것이 가득한데 도대체 어디로부터 도망간다는 소리입니까?
중요한건 그곳에 예수가 계시냐 안 계시냐입니다. 예수님이 안 계시는 교회도 많을겁니다. 오히려 길거리에서 자신의 신앙을 담아 랩을 하는 힙합 청년들 가운데 예수께서 함께하실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숭고한 클라이맥스인 십자가 사건이 일어난 곳은 성전 안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한복판 골고다 언덕이었습니다. 이처럼 바로 지금 이 땅에 천국이 임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면 세상을 소홀히 할 수 없게 되며, 정치, 문화, 자연, 학문, 예술 등은 더 이상 버리는 카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책임을 지고 선하게 회복해야 할 영역들로 여겨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성경이 말하는 사후세계관은 무엇일까요? 우선 용어를 정리해야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천국은 똑같은 말입니다. 복음서는 보통 하나님 나라라는 말을 자주 기록하는데, 오직 마태복음만 천국이란 단어로 대체해서 씁니다. 그렇다면 계시록 해석들, 즉 천년왕국, 휴거, 대환란 등 신학적으로 논쟁점이 되는 부분은 모두 제외하고 딱 뼈대만 나열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이 말하길, 사람이 죽으면 둘 중 하나입니다.
역사의 마지막 날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잠들어 있을 것이란 의견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아마도 시간을 초월하여 순식간에 자고 일어난 것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보고 잔다고 표현하시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성경적 지지를 받습니다.
낙원이라 불리는 임시 천국에서 잠시 예수님과 함께 머물 것이란 의견이 있습니다. 이 의견을 지지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옆의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 말씀하신 구절이나, 이미 죽은 엘리야와 모세가 모습을 직접 드러낸 변화산 사건 등 때문입니다. 그러나 낙원이란 곳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곳은 임시천국이지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기독교 세계관의 최종 종착역이 아니란 의미입니다.
이 둘 중 무엇이 옳은지는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팽팽한 논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두 의견 다 죽어서 직행하는 천국, 즉 이미 저기에 존재하는 본향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바가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가 그런 뉘앙스를 풍긴다면 작곡자도 이를 오해한겁니다. 성경은 역사의 마지막 날 예수님처럼 ‘몸으로’ 부활해서, 그 때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엔딩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선 계시록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5장과 고린도전서 15장만 잘 살펴보셔도 명확합니다.
그렇다면 완성될 하나님 나라가 무슨 말이냐? 기독교인이라면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니 (already but not yet) 이란 말을 들어보셨을겁니다. 무슨 뜻이냐면 천국은 예수님의 처음 오심을 통해 이 땅에 이미 시작되었고 (already), 역사의 마지막 날 이루어질 재림을 통해 마침내 화룡정점을 찍는다는 의미입니다 (not yet). 예수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이 엔딩에 참여하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재림을 늦추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은 황금이 가득한 엘도라도 같은 도시가 아닙니다. 그런건 다 비유이고, 예수님이 마침내 왕이 되어 모든걸 공평하고 정의롭게 통치하시는 그 곳이 천국입니다. 천국에 무엇이 있냐, 어떤 장소냐가 중요한게 아니고, 누가 왕이냐가 중요한겁니다. 완전히 선한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통치하는 곳은 완전히 선한 곳입니다. 그곳이 정말로 좋은 곳임은 당연할겁니다.
그렇게 역사의 마지막 날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그때서야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여 최후의 심판을 받습니다. 믿는 사람만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부활합니다. 하지만 부활의 종류가 다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니 확실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5:29 KRV)
그러나 이처럼 행위대로라면 생명의 부활로 나올 자가 없습니다. 최후의 심판에서 단 한명도 처벌을 면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의인은 없나니 한명도 없고 모두가 죄를 범하였다는 로마서 3장의 선언대로입니다. 완전히 정의롭고 죄를 혐오하는 하나님의 심판에는 봐주는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자기 힘으로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죄의 값, 즉 죽음을 대신 지불하셨고, 이 사실을 믿어 의롭다고 칭해진 사람들만이 최후의 심판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 풍기는 뉘앙스의 한계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마치 건전하게 잘 살고 있던 사람들을 데려다 예수를 안 믿는다고 지옥에 던져버리는 이미지입니다. 그게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 모두는 암 말기 환자나 마찬가집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만이 있을 뿐, 모두가 결국 완전한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사태를 해결할 유일한 치료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천국 불신지옥보다는 '원래지옥 예수천국'이 훨씬 적합합니다. 예수의 공로를 통해 최후의 심판에서 통과한다면, 마침내 천국에서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여 보며 영생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천국에 가려면 그냥 죽으면 끝이 아니라 이러한 기간과 절차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야말로 최종 종착역입니다. 구약에서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에 걸쳐 확실히 약속하신 언약의 땅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그리스도인과 예수님의 결혼식, 즉 어린 양의 혼인 잔치장인 것입니다.
이러한 큰 그림을 잘 이해하면 구약성경의 복선과 연결고리들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라면 받침대로만 쓰고 싶던 성경이 재미있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관련된 선지자들의 외침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이스라엘을 회복하러 오는 메시아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의 관계가 무엇인지, 에덴동산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더 나아가 출애굽, 유월절, 성전, 안식일, 제사, 대제사장, 할례, 율법 등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것인지 점차 풍성하게 알게됩니다. 이제 말씀 읽기는 더 이상 고통이나 의무가 아닙니다. 끝도 없이 풍성한 의미를 알아가는 즐거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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