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실망과 낙담, 죄책감이 해일처럼 덮치고,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쏟아져 들어올 때가 있다. 특히 직장에서 중요하고 위험한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앉아있거나, 가정을 책임을 맡고 있는 가장이거나, 자녀를 정성껏 돌보는 부모이거나, 필자처럼 교회공동체를 맡고 있는 경우, 더욱 그렇다. 그게 아니라도, 그동안 다정했던 배우자나 자녀와의 관계가 악화되고 갈등이 깊어질 때, 혹은 그동안 힘을 다해서 노력하고 애쓴 결과가 물거품처럼 허물어졌거나, 특히 기도훈련을 하는 울 공동체 식구들은 정신없이 허우적거려도 손에 아무 것도 잡히지 않을 때 그럴 것이다. 그럴 때는, 그냥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 때려 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오기도 한다. 그래서 절망스럽고 막막한 마음을 품고 전전긍긍하게 된다. 솔직히 필자도 그런 때가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그만두고 때려 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답답하고 어두운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하릴없이 방황하거나 고통을 곱씹으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얘기를 좀하고 싶다.
필자의 나이가 이제 육십이 되었으니, 나름 살만큼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실패뿐인 인생이었음을 자조적으로 고백할 뿐이다. 그러나 어찌된 판인지, 이제는 사람들의 인생문제를 상담해주며 공동체 식구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자리에 있으니 기가 막히다. 솔직히 필자의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인데 말이다. 그러나 필자가 원했던 일도 아니고 하나님께 능력을 인정받아 하는 일도 아니므로, 하나님께서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꾸역꾸역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생의 삼분의 이를 넘어선 인생선배로서 신앙을 훈련시키는 교회지도자로서, 마음이 무너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조언을 드리고 싶다.
먼저, 마음이 무너질 때는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싸우면서 격렬하게 저항하시라. 어떤 이들은 마음을 풀어보려고 영화나 TV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서 위로나 격려를 받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물론 적절한 조언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일 때는 어떤 위로를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야 술로 푼다고 하지만 크리스천들은 그럴 수도 없으며, 과거의 필자의 경험(?)으로 말씀드리면 술에 취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저항하면서 싸우시라. 낙심천만한 생각이 들어올 때, 받아들여서 곱씹으면 생각 속에서 더욱 증폭이 되어 더욱 커진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마음이 고통스럽고 힘들게 된다. 그래서 예수피로 쳐내면서 싸우라는 얘기이다. 낙담과 절망 등 마음이 무너지는 것은, 배후에 미혹의 영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파워가 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설령 아무리 예수피를 외치면서 싸워도 효과가 없더라도, 속절없이 받아들여 무너지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그러나 이는 기도훈련이 어느 정도 되어 있는 사람에게 가능한 일일 것이다. 평소에 부정적인 마음과 싸우는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엄두도 못내는 일일 것이다.
또한 마음이 무너질 때, 절대로 평소에 습관을 들인 기도방식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어둡고 답답한 마음이 들어올 때는 정말 기도하기 힘들다. 집중이 되지 않고 기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물밀 듯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칙적이고 습관적인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기도를 멈추면 진짜 회복이 불가능할 수도 있으며, 대부분 돌이키기 어려울정도로 무너지게 된다. 실망과 낙담은 미혹의 영의 치명적인 공격이며, 기도를 중단하는 것은 이들이 노리는 목적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기도하기 싫더라도 그냥 기도자리에 앉아서 기도하는 흉내라도 내라. 그게 미혹의 영과 싸우는 자세이다. 필자는 기도하기 싫을 때는 일부러라도 더 기도하려고 애쓴다. 평소에는 샤워를 하고 나서 기도하지만, 그럴 때는 더 일찍 일어나고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생략하고 곧장 기도자리에 앉는다. 집중이 잘 되지 않으므로 다른 기도는 생략하고, 오직 예수피로 싸우는 기도와 회개 그리고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만을 한다. 그러다가 마음이 좀 밝아지면 감사기도를 덧붙인다. 집중하기 힘들 때는 중보기도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이 계속해서 가벼워지면 원래의 기도로 돌아가기도 한다.
기도를 하더라도 실망스럽고 절망스런 현실이나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래서 기도자리에서 일어나면, 또 그 상황이 생각나서 갑자기 어두운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마음이 어둡거나 절망스러운 이유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상사, 배우자, 자녀, 부모 혹은 자신에게 어떤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감이 무너지면서 마음이 허망해지는 것이다. 필자는 희망사항이나 기대감을 포기하고 순리대로 하려고 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생각과 계획 그리고 바라는 바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럴 때 마음이 정말 힘들다. 그러나 그 마음을 잡고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바라보면서 집착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해결해주시지 않는다면,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며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다. 하나님이 절대 선하시다고 믿는다면, 그분의 선하심을 믿고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으라. 평소에 기회가 날 때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맡긴다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렇게 하시라. 자신의 생각과 욕심을 포기하고 순리대로 맡겨라. 당신이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면, 나중에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더라도 마음이 허망하고 어두운 기분이 쉬 사라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가볍게 산책을 하거나 기분전환을 하시라. 자연은 언제나 치유의 능력이 있다. 필자는 마음이 어두울 때는 정원의 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거나 주변의 산과 들로 산책을 한다. 마음이란 쉬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쉽게 어두워지기도 하며,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아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믿지 마시라. 세간에 솔로몬왕이 했다고 전해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히브리어로 ‘감 제 야바르’로서, 번역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인생은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이 씨줄과 날줄로 엮어지는 옷감이라고 누가 말했다. 그러므로 마음이 무너질 때라도,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눈이 부시게 찬란한 날도 올 것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