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사라지는 사무실

in coaching-note2 •  7 years ago 

센터가 문을 연 것은 지난해 7월이었다. 3년 이내 창업 초기 기업들에게 1년간 입주공간을 제공하는 우리 센터에는 40팀이 입주해있다. 사실은 퇴소한 팀이 몇 팀 되어 실제 입주팀은 2-3팀 적을 것이지만 '계획상' 연간 40팀을 입주시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그중에 20팀은 지난해 7월 1일에 입주했고 20팀은 올해 2월에 입주했다.

두 번 입주팀을 선발해보니 스타트업에서 '사람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왜 하는지를 너무 잘 알겠다. 서류로 지원을 받았을 때 기대가 컸는데 정작 발표를 들어보면 아직 설익은 아이디어를 '사업계획서'라는 틀 안에 얼기설기 엮은 팀도 보이고 뭔가 사업 아이템은 부족해 보여도 그 사업에 대한 열정이 보여서 기대감을 주는 팀이 있다. 물론 발표는 고작 30분 안쪽이기 때문에 발표시간을 통해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다. 실제로 입주해서 부딪치다 보면 생각보다 더 성실하고 팀워크가 좋은 팀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팀들도 있다. 그런데 역시 팀워크가 좋은 팀이 성장이 빠르다. 결국 사업을 추진하다가 아쉽게 중도하차하는 이유는 대부분 팀워크가 깨져서이다.

센터 입주팀을 뽑을 때 심사에 참여했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선발하다 보니 몇몇 걱정스러운 팀들도 섞여 있었다. 사업 아이템이 덜 영글었거나 수익 모델과 단단하게 연결되지 않았거나 확장성이 크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은 너무 꿈이 원대하여 1년 동안 매출 목표를 지나치게 크게 잡은 경우도 속한다.

자리 배치를 할 때 가능하면 그런 팀들을 모아 우리 운영팀이 함께 하는 사무실에 배치를 했다. 센터에는 6개 크고 작은 방으로 나눠져 있고 방은 서로 크기가 달라 어떤 곳은 4팀이, 어떤 곳은 10개 팀 이상이 함께 쓰기도 한다. 어쨌든 자주 얼굴 보면 좀 더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걱정스러운 팀을 함께 모았는데 절반이 입주 2개월 만에 퇴소를 했다.

그중 한 팀은 센터에 들어온 지 한 달 만에 '피보팅'을 했다며 면담을 요청했다. 피보팅이라기보다는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였다. 하필 식당을 회원으로 하는 예약 서비스를 기획했다. 얼마 전까지 식당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내가 보기에는 시장을 읽는 노력이 부족해 보이는 사업 계획이었다.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고 팀은 그런 질문에 합리적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중 한 명이 내게 물었다.

"그래도 지난번 아이템보다는 이번 것이 더 낫지 않나요?"

무엇이 낫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팀이 실행력을 갖추지 못한 사업 아이템은 '낙제점'이 있을 뿐이지 더 낫고 못하고 점수를 매길 수는 없다. 마치 지난번 리포트는 B였는데 그래도 이번 것은 B+는 되지 않느냐고 묻는 대학생 같았다.

우리 센터에 입주하는 창업팀 가운데는 정말 초기 팀들이 많아서인지 모르지만 사업계획서를 성적 받기 위한 리포트처럼 작성하는 팀을 간혹 볼 수 있다. 얘들아, 사업계획서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정리해서 내는 리포트가 아니란다...

이럴 때는 왜 사업을 하려고 하는지를 묻는다. 어떤 이유로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성공이 보장되지도 않는 창업가의 길을 가기로 했는지, 어떤 동력이 스스로를 움직이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길 권한다.

나의 느닷없는 질문에 무안한 웃음을 짓길래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차근히 답을 찾아보라고 하고 미팅을 마쳤다. 그리고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그 팀은 짐을 꾸렸다.

창업에 대한 지원이 크게 늘었다고는 해도 창업은 여전히 힘겨운 싸움이다. 죽어라 해도 안 되는 경우가 더 많고 한 고비 넘긴다 해도 또 다른 어려움이 몰려오는 것이 창업가의 숙명이다. 그래서 누구나 창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타트업이 우리의 미래 희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창업가가 탄생하고 더 많이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걱정스러운 팀들을 모았는데 정작, 그들이 포기하는 것을 보는 마음은 결코 편치 않았다. 남은 팀들이라도 어려움을 잘 헤쳐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남아있는 팀 가운데 A가 내게 말했다.

"줄리아, 여기 터가 안 좋다는 소문이 돌아요. 팀들이 자꾸 깨진다고요..."

웃으며 말했지만 우리 모두에게 가슴 철렁한 얘기다.

그대들 만이라도 꼭 버텨서 좋은 기업을 일궈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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