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화폐, 신용화폐, 그리고 암호화폐

in coinkorea •  7 years ago 

이 글은 제 이전 포스팅 왜 비트코인은 가치를 가지는가에 대한 짧은 답변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비트코인, 혹은 암호화폐 전반에 대해 논할 때 자주 듣게되는 주장은 비트코인은 화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주된 근거는 실물이 아닌 허공에서 찍어내는 화폐라는 것과 변동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제목과 같이 화폐의 본질과 그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저도 화폐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기에, 큰 흐름을 짚는 정도에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초창기 화폐는 잘 알다시피 실물이었습니다. 쌀이나 소금, 돌, 조개껍데기 등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시작을 했죠. 이것들이 화폐로 쓰일 수 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범용성이라든지 적당한 희소성이라든지요.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이 재화들은 교환 가치를 지니게 되었고 화폐가 되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현재도 교도소에서는 담배가 돈 대신 화폐로 쓰인다고 합니다.

근데 이런 화폐의 문제점은 이동이 어렵거나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소금은 비를 맞으면 녹아 없어지고, 조개 껍데기는 밟으면 부서집니다. 쌀은 오래 두면 곰팡이가 슬고 부패합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점차 금속을 화폐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초기에는 은화나 금화 같은 동전 형태가 아닌 은 덩어리나 금 덩어리 같은 것들이 쓰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화폐의 단위는 얼마짜리 동전이 몇 개가 아니라 저울로 측정된 무게였을 것입니다.

화폐가 발달하면서 덩어리 금속 화폐들은 주화의 형태를 띄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는 중앙국가의 영향도 강하게 작용했습니다. 세뇨리지(화폐 주조비용과 명시가격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이익)를 통해 재원을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죠. 또한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는 민간이 발행하는 화폐에 비해 성분비를 더 잘 지킬 것이라는 신뢰도 어느 정도 작용했습니다. 물론 국가가 주도적으로 함량비율을 속이는 일도 있었고, 마모된 화폐만 시장에서 유통되고 멀쩡한 화폐는 금고에 잠들어있는 문제점(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이를 뜻합니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화는 무엇보다도 무거웠기에 큰 거래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화폐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 수표나 지폐의 형태를 띄기 시작합니다. 일종의 IOU라고 할 수 있는데요, 다시 말해 1 그램골드라고 적힌 수표를 발행자에게 주면 금 1g을 내어주는 것이죠. 이런 화폐는 19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상식이었습니다. 우리가 많이 배우는 금본위제 화폐들이죠. 예를 들자면 브래튼우즈 체제에서 35달러는 금 1온즈와 항상 동일한 가치를 지녔습니다.


1922년의 달러. The Dollars in Gold Coin이라고 적혀있다

사실 이러한 태환의 성격을 지닌 수표나 지폐는 신용화폐와 실물화폐의 경계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신용은 실물을 보증해준다는 것에 대한 신용입니다. 그런데 금본위제를 끝내면서 나타난 신용화폐, 즉 우리가 현재 상식으로 삼고 있는 신용화폐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실물 대신에 국가가 그 화폐의 가치를 보장해준다는 것이죠.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오늘 짜장면이 5000원인데 내년에도 5000원 언저리가 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국가는 경제 정책을 펼치고, 통화량을 조절하고, 세금을 매기고 등등 여러가지 활동을 합니다. 만약 국가 시스템이 신뢰할만하지 못하다면 우리가 쓰고 있는 신용화폐는 그 가치를 급격하게 상실할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짐바브웨죠.

이쯤에서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 중 두번째 질문인, 비트코인은 허공에서 찍어낸다는 비판을 보죠. 사실 이 비판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화폐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의 신용이라는 실물이 아닌 것을 믿고 찍어내는 화폐가 바로 달러나 원 같은 화폐들입니다. 본질적으로 따지자면 우리가 쓰는 화폐들도 종이랑 잉크만 있으면 찍어낼 수 있는, 거의 허공에서 찍어내는 것과 마찬가지인 화폐인거죠.

또한 변동성에 대해 얘기해보죠. 제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이 되어있고, 내일신문의 기사 비트코인 가격보다 불환화폐 몰락을 보라 에도 잘 나와있듯이,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불환화폐의 상대적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현재 가격이 투기수요 때문에 많이 올라간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가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 대 달러 같은 신용화폐끼리의 비교보다는 불환화폐 대 암호화폐라는 방식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트코인, 혹은 암호화폐는 어쩌면 실물화폐와 더 많이 닮았습니다. 초기 실물화폐가 적당한 희소성과 교환의 용이성을 토대로 만들어졌듯이 비트코인도 희소성과 교환 용이성(비록 아직 많이 느리긴해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건, 쌀이나 소금 같은 초기 화폐들이 누구나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것과 비슷하게, 비트코인도 채굴기만 있으면 누구나 생산할 수 있습니다. 물론 비트코인 초기에는 일반 컴퓨터만 있으면 채굴이 되었고, 사실 이런 분산된 생산체제가 사토시 나카모토의 구상이었는데 채굴기 때문에 많이 중앙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비유하자면 현재는 화폐 주조 공장들이 주로 생산을 하는거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암호화폐의 제일 혁신적인 장점은 신뢰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예전 실물화폐에서는 함량이나 중량을 속이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어야 했습니다. IOU나 신용화폐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신용이 필요했고요. 하지만 비트코인은 최초로 신뢰가 필요없는 "무신뢰" (Trustless)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신뢰가 필요없기에 은행이 파산해도, 국가가 망해도 1 비트코인은 그냥 1비트코인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물론 은행이 파산하거나 세계 대공황이 오는 상황이라면 신용화폐 대비 비트코인의 가치는 엄청나게 상승하겠죠.

노파심에 한번 더 강조하지만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투기의 영향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본질적인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비트코인으로 투기를 해서 돈을 버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신용화폐에서 암호화폐로 부가 이전하는 상황에서 진정으로 부를 가져가는 사람은 투기꾼이 아닌 암호화폐의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동의하고 안 하고는 물론 각자의 판단입니다. 코인 하는 사람은 이런 생각도 하는구나 정도로 받아들여주시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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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클리앙에 달린 댓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1518320

  ·  7 years ago (edited)

클리앙은 안해서 몰랐는데 거기 댓글들 보니까 아직도 블루오션이네요.

20일때 거품,30일때 거품 50일때 거품, 100, 300, 500, 1000, 1500, 2000... 영원히 거품이라고 떠들도록 그냥 내비두시죠.

거품은 언젠가는 터지겠지만 거품은 터진다는건 애들도 아는건데 ....그걸 대단한 지식처럼 포장해서 현상황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상대하면 피곤해지니까 그냥 그려려니하시죠

일단 가즈앗!!~~(근데 인간적으로 지금은 거품 맞음 , 거품도 이런 거품이 없네요.)

  ·  7 years ago (edited)

사람들이 비트코인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많은 경우 단기투자자산(시세차익)으로서의
비트코인에 한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스팀잇 역시 단기투자자산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변화된 컨텐츠 플랫폼이라는 틀에서 본다면
기존의 여러 논란들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좀 더 호흡을 길게 가져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술적인 글들은 베이스가 없어서 잘 이해를 못하고 있지만
올려주시는 글들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My one concern regarding the trust of Bitcoin is that arguably, over 50% of the miners reside in China (speculation on my part). Since Bitcoin runs on a majority rules philosophy, if a single organization (for example, the Chinese government) controls over 50% of the bitcoin nodes, would that not give them the opportunity to validate invalid transactions?

Don't get me wrong, I trust cryptocurrency far more than I trust fiat, but it's "distributed trust" is based on the assumption that one organization does not manage the majority of the nodes. I think it is quite possible that a single organization could manage the majority of the nodes which would give that organization the ability to validate invalid transactions.

That's my concern too. So I am glad to hear Japan and other countries dive in miner production. (But I don't like mining much LOL)

국가의 보증이라지만 행정부, 입법부의 보증이나 다름 없고,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행정부, 입법부 구성원은 국민들이 결정합니다. 결국 개개인이 자신이 보유한 재산의 가치를 보증한다고 볼 수 있지요. 구성원 전원을 국민이 결정하는 것도 아니니 오히려 자기 자신의 보증보다도 약하다고 볼 수도 있지요. 대중들이 얼마나 쉽게 휘둘리는가를 생각하면 이들의 보증이라는게 얼마나 취약한지도 알 수 있습니다. 사용자들이 화폐에 신용을 부여하는 것과 다름 없는데 이는 암호화폐에서도 가능한 일이지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한 시대의 전환이라면, 당장의 급등락은 있어도 .. 미래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

Good post!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흥미롭네요

비트코인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요..그래서 제대로된 해석도 이해도 힘들구요.믿는 사람은 미래를 이야기하고 안믿는 사람은 현재로 그 가치를 말하니 대화가 안되는거겠죠

i saw this post

좋은글이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너무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비트코인의 가치에대해 주변인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항상 들곤 하는데 참고할만한 좋은 글이었습니다.

좋은 내용 잘보고 갑니다^^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거품이 있기에 가치를 더 생각해보는 기회라고 조금 긍정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요 며칠은 거품이 쪼금 과하다고 생각은 들지만요..! 좋을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로의 부의 이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의 비트코인은 거품이 많지만 그 거품이 꺼지면 가상화폐의 진짜 가치가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적으로 사기다, 모조리 거품이다라고 보는 것은 그만큼 시대에 뒤떨어지는 발상이라고 봅니다.

정리 감사드립니다

저도 암호화폐의 가치를 믿고있는 1인입니다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클리앙을 하는데 반갑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제 개인적 의견은 과열양상이 없지 않나 있는 듯해요
확실히
돈에 대한 간략하고 얄팍한 지식밖에 없는 저라도
조금만 뉴스를 틀어보면
'제로 금리', '헬리곱터 돈 뿌리기', '아베노믹스' 등등의
일련의 일들을 보노라면 법정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누구나도 알수있죠

그렇기에 그러한 대안 중에 하나가 가상화폐를 통한
가치보존이고요.

가상화폐를 가치를 보존해주는 하나의 재화(맞나?ㅋ)로 접근하고자
배워나가는 저의 입장은 위에서도 말한대로
오히려 경계를 하고 싶은 상황입니다.

좋은 지식 피력해서
덕분에 많은 걸 배워갑니다.

잘 보고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