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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유럽 정신의 본산이라 불리는 아테네와 로마는 모두 화폐라는 경제 체계를 통해 부상했습니다. 교역의 매개로 쓰이거나 약탈한 물건을 거래하는 용도로 쓰이는 등 대단위의 인구가 각각의 특화된 직업을 가지고 일정한 사회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언가 척도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화폐의 특성에 대해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시장의 신뢰를 통해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많은 경제학 이론가들은 화폐에 대해 저마다 다른 정의를 내립니다만, 신뢰를 잃어버린 화폐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그저 물건일 뿐이라는 데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할 것입니다.
특히 화폐는 일반적으로 발권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높은 액면가를 지닙니다. 화폐의 실물가치가 액면가보다 높아지면 누구도 교환을 하지 않으려 들거니까요. 쟁여두기만 하겠죠. 그렇기 때문에, 화폐의 신뢰가 사라지면 화폐 자체가 갖는 내재가치는 더더욱 빠른 속도로 추락합니다.
로마 말기부터 초기 프랑크 왕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신뢰를 상실한 화폐, 그리고 그 화폐의 종말과 새로운 화폐 질서의 대두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로마 말엽으로 돌아가 봅시다. 카이사르가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루비콘 강을 건너 쿠데타를 저지르고 종신 최고사령관임페라토르에 스스로를 임명하면서 사실상 로마의 공화정은 끝나고 황제 시대의 막이 오르게 됩니다.
시저는 암살당했지만, 그의 유지는 이어져 로마 제국을 이룹니다.
한동안 로마는 잘 나갔습니다. 그러던 것이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에 접어들면서 대격변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이전까지 로마는 비록 제국이긴 했으나, 형식적으로라도 원로원이 선출하는 모양새를 보였습니다. 물론 콘스탄티누스의 즉위 전까지 로마의 정치 구도는 매우 어지러웠던것은 사실입니다. 원로원도 기실 유명무실했죠. 네 황제의 해나 다섯 황제의 해, 군인 황제 시대 등 수십여년간 수십명의 황제가 죽어나갔습니다. 이런 복잡다난한 정치적 문제가 있었습니다만, 로마의 시민들에겐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자기네들끼리 치고 박는 정치 쇼에 불과했거든요.
그런데 콘스탄티누스 대제처음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고 정치적 혼란기를 정리하면서 로마 제국 처음으로 대제라는 의미인 'Magnus'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는 세습 체제를 확립해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는 한편,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정신적 지도자인 당시 교황, 실베스테르 1세를 강하게 압박합니다. 박해에서 갓 벗어나서 세력을 규합하기 힘들었던 기독교 세력에게 공인이라는 '선물'을 준 콘스탄티누스의 입김은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족쇄로 작용했죠.
정신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스스로의 입지를 다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목표는 무력의 추구에서 권력의 유지로 바뀌게 됩니다. 권력의 유지를 위해 수많은 독재자들이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반대 세력의 숙청입니다. 콘스탄티누스 역시 목소리를 내던 원로원과 귀족파들을 숙청합니다. 어떤 방법이었을까요? 무력입니다. 하지만 당장 자유민들을 징집할 수 없었기에, 그리고 더 이상 약탈할 토지도 남아 있지 않아서 군대가 유인 효과를 주지 못했기에 콘스탄티누스는 용병에 손을 댑니다.
용병은 돈을 받고 싸우죠. 콘스탄티누스 이전 40%에서 90%까지 증가한 용병의 비율을 보면 당시 로마가 부담해야 했던 국방비가 얼마나 컸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돈을 메꾸기 위해 솔리두스와 같은 금, 은화를 주조했고, 모든 상업과 수공업을 황제의 소유로 독점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당시 로마의 가장 큰 적이었던 페르시아 제국과 근접한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천도하게 됩니다.
로마 향락의 극치를 보여준 대규모 목욕탕입니다.
황제가 공업과 상업을 독점하고 이에 대해 강한 세금을 거두고, 금과 은을 캐서 그걸로 화폐를 생산한다. 그 화폐로 용병을 사서 스스로의 안위를 보장한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 봐도 매우 취약한 구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로마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 제국은 과도한 지출을 해소하기 위해 세금을 꾸준히 올렸고, 대부분의 국민은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를 떠받든 금광과 은광은 점점 고갈되어 갔습니다. 금의 고갈을 벌충하면서 화폐를 발행하기 위해 금화에 함유된 금은 점점 줄어들어갔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로마 편년사에는 '최소 1억 세스테르티(세스테르티우스가 약 1.2g의 은화, 현재로 따지면 약 120t 정도입니다.)의 은화가 인도와 중국으로 흘러들어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 은의 유출과 악화의 도래는 로마 화폐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격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황제는 관료를 보내어 이런 경제적 파국을 잔혹한 통치수단을 통해 시민들을 억누르는 것으로 해소하고자 했으나, 이미 사태는 커질만큼 커진 뒤였습니다.
관료들은 스스로가 먼저 변절하여 자체적인 영지를 건설하고, 황제에 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대관료들은 자신들의 장원을 구축했습니다. 엄청난 너비의 토지에 많은 수의 노예와 농민, 장인을 수용하고 외부 세계와의 교류 없이 자체적인 생산기반을 갖췄습니다. 이런 현상이 가속되면서 로마라는 체제는 점점 흔들려갔습니다.
대관료들의 독립은 이후 중세의 '장원'제도로 이어지게 됩니다.
앞서 로마는 약탈 경제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고 한 바 있습니다. 만약에 이 약탈을 가능케 한 무력이 완전히 뒤집히게 된다면 어떨까요? 약탈이 불가능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갈리아와 그리스, 소아시아와 이집트의 단물을 쪽쪽 빨아먹으며 버텨나가던 (서)로마는 동로마가 분열하며 소아시아와 그리스, 그리고 대규모 곡창지대였던 이집트와 아프리카를 모두 뺏아가자 약탈 경제의 한 축이 크게 흔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휘청대던 로마에 결정적인 충격을 가한 것은 바로 기병대의 대두였습니다. 짧은 칼인 '스파타'로 무장한 로마 군단병은 훈족의 빠른 경기병 전술에 매번 흔들리며 병력을 잃어갔습니다.
물론 로마군도 매번 패주한 것은 아니고, 카탈라우눔 전투 등에서 큰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만 용병으로 구성되었다는 한계가 결국 발목을 잡았습니다. 스틸리코나 아이티우스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사라지자 로마제국의 영토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만 갔습니다. 갈리아, 브리타니아(잉글랜드), 히스파니아(스페인), 북아프리카를 모두 상실하면서 사실상 이탈리아 일대로 쪼그라들었죠.
약탈 경제라는 큰 기둥과 무력이라는 다른 하나의 기둥을 잃어버린 (서)로마는 빠르게 세력을 잃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메꾼 것은 서로마 시대부터 이어진 몇몇 장원들과 부족 단위의 게르만 정착지였습니다. 이들에게는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구심점이 존재하지 않았고, 교통 자체가 매우 불편했기 때문에 거래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이들의 세력은 모두 엇비슷하여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쉽사리 정복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유럽 버전 Free for all이었죠.
로마의 세력 상실은 로마 화폐의 신용 상실을 불러왔고, 이는 행정 체계의 빠른 붕괴를 불러일으켰으며, 더 빠른 로마 세력 상실을 낳았습니다. 이후 사를마뉴(카롤루스 대제)가 나타나서 로마와 같이 하나로 묶인 국가를 만들기 전 까지 화폐는 사라지게 됩니다. 정확히는 국가라는 무력 집단 안에서 그 국가의 수장인 왕의 보증을 받는 대형 시장과 그 시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권력이 등장하자, 비로소 다시 은화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아테네의 붕괴와 로마의 흥망성쇠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바로 화폐의 본질은 신뢰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 신뢰는 너무나 연약한 인간의 사회라는 틀 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틀이 무너지면 화폐 경제는 어김없이 무너졌고, 잿더미 사이에서 새로운 틀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속해 있는 화폐 경제라는 틀 역시 매번 다양한 방법으로 도전받아왔고, 그 도전을 물리치거나 도전에 굴복하며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 도전은 대부분 권력(정치) 혹은 금력(경제), 그것도 아니면 무력(군사)이 한 곳으로 과도하게 집중되고 집중된 힘이 공동체 자체를 부수려 하거나, 사회 전체가 만든 보상을 오/남용하기 시작할 때 시작되었습니다.
화폐 체제의 붕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경제 공동체 속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향유하던 이들이 불러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함께 해야 하고, 함께 나누어야 하고, 함께 뭉쳐야 살아갈 수 있는 매우 연약한 동물입니다. 그렇게 약한 존재이면서도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를 억누르려 드는 이율배반적인 생명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신뢰를 만들 수 있을지, 인간이 만드는 화폐는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 존재일지,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가 만든 이 시스템을 얼마나 잘 유지할 수 있을지를 말입니다. 인간이 가진 '독점하고 싶다는 욕망을 실현할' 자유는 '화폐 경제'라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화폐 제도'라는 구속을 부수기도 하고, 혹은 '국가'라는 새로운 구속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화폐라는 체계에 암호화폐라는 새로운 변곡점이 다가오는 지금, 우리는 전인미답의 이 땅에서 어떤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기승전 구매력. 결국 우리 모두는 1인 1칰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를 위해 살아갑니다. 1칰을 할 풍부한 칰과 맥주가 없는 세상이 온다면 그날이 바로 아포칼립스가 될지도...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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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도 이미 기병대는 있지 않았나요? 카이사르의 전투에서도 기병대가 나온거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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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유지하기엔 어마어마어마하게 힘들었죠. 정말정말 소수의 인원으로 운영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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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많이 바빠서 순위권 보팅을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전 아니면 눈뜨고 보는 녹틱*스님의 글이
산 정상에서의 시원한 바람처럼 느껴집니다.
환절기 건강 유의하시고 계속 좋은글 부탁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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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라는게 서로간에 충분히 합의되고,공통목적성을 가져야 유지될텐데..가상화폐뿐아니라 모든게 일부 이익집단에 의해 성패가 좌지우지될때마다..움찔움찔하네요. 가상화폐는 크게보고 올해는 제도권정착을 위한해라고 생각했지만..생각뿐이됩니다
좋은글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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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흥망성쇄를 화폐로 풀어보니 더 재미있네요
미국이 달러의 신뢰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할 명분을 생각한다면 코인이 신뢰를 가질수밖에 없는 이유도 명확해질것 같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타지에서 간강 잘 챙기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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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로 새로운 개념의 국가를 하나 만들수도 있지 않을까요? 요즘 허황된 상상에 빠져 삽니다. 정신차리도록 뺨 한대 때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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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창시한 이유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통해 화폐의 신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죠...
“완벽한 전자화폐 시스템은 온라인을 통해 일대일로 직접 전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Financial Institution)은 필요하지 않다.”
[출처: 중앙일보]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 그는 왜 사라졌나
http://news.joins.com/article/22294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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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책임의 부재가 일으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미국이 환경을 파괴하면 그 영향은 전 지구에 나눠서 천천히, 파괴한 사람들이나 대빵들은 이미 죽었고, 그 책임을 지우기에는 책임이 존재하는가조차 사람들이 모르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남산의 공기오염에 남산에 디젤 관광버스 출입을 허가한 사람이 더 책임이 클까요? 저 멀리에서 미세먼지를 날려주는 나라의 책임이 더 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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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잃게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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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화폐가 신뢰가 기반이 되지 않는다면 끔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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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본질은 신뢰라는 말에 큰 공감을 얻고 갑니다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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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 너무 좋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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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감사합니다 noctisk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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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전적과 그에 대한 통찰을 통해 시장을 읽는 혜안에 감동하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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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를 도입하는 국가가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신 암호화폐의 한자리를 담당하게 될 기축통화가 무엇이 될지 궁금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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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1일1칰
하지만 오늘은 픽픽
녹티스님두 저녁 맛있게 드세용•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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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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