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sinryeongAll contenthive-129948krhive-196917hive-180932zzanhive-150122steemhive-183959hive-166405photographyhive-185836hive-144064hive-183397hive-101145hive-188619uncommonlabhive-184714hive-145157hive-103599hive-139150hive-193637bitcoinhive-179660hive-109690hive-180301TrendingNewHotLikerswisdomandjustice (82)in leedaeyong • 6 years ago(이대용 장군의 신령 화산 전투) 8-6 화산 전투 이후5 08:00 경 제1중대에게 식사와 실탄이 보급되었음. 제1중대 장병들은 43시간 굶은 끝에 밥을 먹을 수 있었음. 9.5 16:00시경 고지에 있는 제1중대에게 신병이 보충되고 화염방사기 하나가 배속되고, 이 화염 방사기에는 사수와 부사수가 따라왔음. 이날 적군은 북쪽 멀리서 장거리 기관옹 사격 또는 소총 사격을 간간히 해올 뿐…wisdomandjustice (82)in leedaeyong • 6 years ago(이대용 장군의 신령 화산 전투) 8-5 마지막 한명까지 50.9.3 날이 밝아도 전투는 계속되다가 9.3 12:00 경에 가서야 지칠대로 지친 피아이 양군은 상호 공격을 멈추고 소강상태로 들어갔음. 이때의 피아의 진지는 화산성 북단고지의 서단부는 적군이점령하고 동반부는 제1중대가 점령하고 있었음. 즉 전날의 제1중대 진지는 적 진지가 되고 제2중대가 버리고 패주한 진지에는 제1중대가 들어가 있었음.…wisdomandjustice (82)in leedaeyong • 6 years ago(이대용 장군의 신령 화산전투) 8-4 9월 1일과 2일의 격전50.9.1 06:00시경 제1중대는 효과적인 야포 및 박격포 지원사격하에 서반부의 적을 공격 이를 북쪽 및 서쪽으로 밀어내고 화산성 북단 고지대 전부를 다시 장악하였음. 50.9.1 10:00 시경 대대 예비였던 제2 중대가 김칠만 상사 지휘하에 828 고지 북방 무명고지로부터 화산성 북단고지로 전진. 고지대 동반부에 배치되었음. 전전일까지…wisdomandjustice (82)in leedaeyong • 6 years ago(이대용 장군의 신령 화산전투) 8-3 제1중대의 야간공격 전사기록에 도식은 상황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이대용 장군의 전투기록과 도식은 그런 예를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8.29일 제7연대 제1대대는 재편성을 하는 한편, 적가 수색전 및 포격전 등을 하면서 전날 점령한 진지에서 하루를 보냈음 8.30 09:00 경 제3중대는 828고지 북방에 있는 무명고지에서 동으로 능선을…wisdomandjustice (82)in leedaeyong • 6 years ago(이대용 장군의 신령 화산전투) 8-2 제3중대의 용암산과 화산(828고지) 점령본 기록은 이대용 장군이 제7연대장에게 보내기 위해 작성한 전투기록이다. 이 대용 장군이 이 기록을 작성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대용 장군은 자신이 치른 전투를 제대로 정리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이전까지의 기록과 달리 이번 기록은 현지를 답사해보고 다시 작성한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기록에 화산인줄 알았던 지역이 화산북방지역의…wisdomandjustice (82)in leedaeyong • 6 years ago(이대용 장군의 신령 화산전투) 8-1 이대용 장군의 전투기록중 잠전 지휘관 이대용 장군은 생전에 화산전투에 대한 기록을 여기저기에 남겨 놓았다. 최근에 이대용 장군이 작성했던 8장 분량의 전투기록과 12장의 작전상황 투명도 그리고 2장의 참고기록을 남겨 놓았다. 지난 겨울에 이 기록을 바탕으로 현장을 답사했다. 전투지역을 찾는 도중에 당시의 상황을 잘 아는 주민을 만나 지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부터는 그 내용들을 하나씩…wisdomandjustice (82)in leedaeyong • 6 years ago(이대용 장군의 신령(화산)전투) 7 화산전투의 의미, ‘신령 영천전투(1984)’에서 어떤 전장이든지 결정적인 지역과 지점이 있다. 국방부가 작성한 전사책자에는 그런 국면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화산전투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내용을 ‘신령 영천전투(1984)’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화산 전투는 신녕 방어작전의 일대전환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며, 화산지역을 장악함으로써 6사단이 전장의 주도권을 장악했다는…wisdomandjustice (82)in leedaeyong • 6 years ago(이대용 장군의 신령(화산)전투) 6-2. ‘신령 영천전투(1984)’, 과 이대용 장군의 기록의 내용 차이 이대용 장군은 신령전투에서 야간 공격을 하게 된 것은 김용배 대대장의 결심때문이었다고 기록해 놓았다. 그리고 당시 3중대는 화산까지 올라가는 통로를 개척하면서 많은 피해를 입어서 화산으로 올라간 이후에는 제대로 공격작전에 투입되지 못했다고 한다. 김용배 대대장은 3중대를 화산 지역의 오른쪽에 있는 고지에 보내서 대대의 측방을 보호하도록 했다. 김용배…wisdomandjustice (82)in leedaeyong • 6 years ago(이대용 장군의 신령(화산)전투) 6-1. ‘신령 영천전투(1984)’에 기록된 제7연대 제1대대의 화산공격‘신령 영천전투’에서는 화산지역의 전술적 가치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신녕에서 북쪽으로 5km 지점, 매봉(DG 8706)-방가산 산줄기 남단에서, 갑령-당지동 접재골(DQ 857955) 간 8 km에 달하는 횡격실을 이룬 화산(주봉 : 828)은 우리나라 지형 특징의 하나인 북저남고 현상이 두드러진 고지로서 신령 일대를 방어하는데…wisdomandjustice (82)in leedaeyong • 6 years ago(이대용 장군의 신령(화산)전투) 5 신령(화산)전투에 대한 주변조사####신령전투를 살펴보면, 초기전사에는 화산지역의 전투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화산전투의 의미에 관한 평가가 조금씩 나온 듯하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평가에 따르면 초기 8사단의 공격을 막아낸 결정적인 역할을 7연대 1대대가 한 것 같다. 아무래도 적 8사단의 입장에서 대구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화산을 장악하는 것이 가장…wisdomandjustice (82)in leedaeyong • 6 years ago(이대용 장군의 신령(화산)전투) 4. 사단장 김종오 장군의 평가 그리고 신령전투의 범위와 의미전사는 전쟁이 끝난이후에 스스로 작성한다. 그래서 전사기록을 보고 실상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신령전투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령전투는 낙동강 방어전에서 매우 중요한 전투에 속한다. 그런데 그 기록이 분명하지가 않다. 군에서 발간한 전사책을 보면 어떻게 싸웠다는 것인지를 파악하기 매우 어렵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이 아닌지를…wisdomandjustice (82)in leedaeyong • 6 years ago(이대용 장군의 신령전투) 3-6 화산의 전투의 종료초가을이지만 작업복에 스며든 소낙비는 오싹 오싹하게 만들었다. 이대용은 찹찹한 심경이었다. 만일 적이 9월 2일가 같은 규모의 공격을 해 온다면 제1중대의 남은 병력으로는 대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장교라고는 이대용 한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이대용은 적이 공격해 오면 그날이 자신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쏟아지는 소낙비 소리가 계곡에 부딪쳐…wisdomandjustice (82)in leedaeyong • 6 years ago(이대용 장군의 신령전투) 3-5 화산에서의 마지막 격전(국경선에 밤이 오다 에서)9월 3일 밤, 아군 제6사단의 포병지원 사격은 주로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는 화산의 동쪽 부분과 제1중대 앞의 북쪽 능선을 강타하고 있었다. 아군의 105미리 야포진지는 화산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얼마 쏘다가는 달아오른 포신을 냉각시키기 위해 한동안 쉬곤했다. 북한군의 야포와 박격포는 실탄이 동났는지, 이날 밤은 거의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wisdomandjustice (82)in leedaeyong • 6 years ago(이대용 장군의 신령전투) 3-4 화산에서의 사투 (국경선에 밤이 오다 에서)대대장 김용배 중령은 전날 화산에서 달아나 흩어진 제2중대 병사들을 계곡과 대대 지휘소 부근 숲속에서 찾아내 재편성했다. 그리고 제2중대 선임하사관 김칠만 상사 인도하에 다시 화산으로 올려보냈다. 그리고 제1중대장 이대용에게 제2중대까지 통합 지휘하라고 지시했다. 제2중대 병사들이 다시 자신들의 진지에 들어가고 그곳을 임시로 점령하고 있던 제1중대…wisdomandjustice (82)in leedaeyong • 6 years ago(이대용 장군의 신령전투) 3-3 화산전투에서 제2중대장의 탈영(‘국경선에 밤이오다’에서)화산은 해발 828의 높은 산이지만 정상부는 들판처럼 평평하고 넓었다. 작은 고원지대처럼 생겨서 1개 중대로 정밀방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날이 저물어도 싸움은 계속되었다. 밤늦게 제1중대 진지 왼쪽 일부가 적군에게 점령당했으나 날이 새자 역습으로 이를 탈환했다. 화산에서 남쪽 계곡을 건너 대대 예비대로 있던 제2중대가, 9월 1일 10시경 화산으로…wisdomandjustice (82)in kr-travel • 6 years ago(이대용 장군의 신령전투) 3-1 국경선에 밤이오다(다시 전선으로)이대용은 1950년 7월 5일 오후 6시경 장호원에서 음성방면으로 내려오는 북괴군을 막기위해 무극리로 쪽으로 가는 고개에서 적과 교전중에 부상당했다. 7월 5일 밤 늦게 청주 도립병원으로 후송된 이대용은 그곳에서 기차에 실려 7월 7일 부산에 있는 제5 육군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몇차례의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속도가 빨랐다. 아직 몸이 완쾌되지 않았던…wisdomandjustice (82)in leedaeyong • 6 years ago(이대용 장군의 신령전투) 2. 신령전투에 대한 평가(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원래 어떤 전투를 살펴보려면 전후좌후의 과정을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자료를 뒤져야 하나 그러지 못했다. 다만 신령전투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있어 이를 먼저 소개하고 이대용 장군의 참전기를 살펴보려 한다. 신령전투에 대해서는 다양한 기술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누가 신령전투를 수행했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술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