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시작인지 모르겠다.
지금 나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무력감과 도피의식과 게으름과 이상한 자존심과 중독으로 현실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다.
철저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다.
왜 이렇게 변하게 되었나? 처음에는 일자리의 스트레스가 원인인 줄 알았다.
매 시간마다 쫒기듯이 날아오는 이메일과 잦은 꾸지람과 due date의 스트레스는 쫓아가기에 급급한 나를 더 도망하게 만들었고,
rule이 있는 듯 없는 boss 의 direction 앞에 나는 머리 없는 닭처럼 이것저것 달리듯 해내기에 급급했다.
지금은 그 조차도 원인이 희미해져간다. 그저 나를 포기하고 싶고, 다 내려놓고, 세상 가운데서 완전히 숨어버리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신앙인으로 나의 좌절감이 커져가는 것을 보며, 내 그릇된 신앙관과 어디에서도 위로 받지 못하게 되어버린 잘못된 나의 신앙생활을 다시 보게 된다. 이쪽 저쪽 어디에서도 잘 해낸 것이 없다 생각되는 처절한 좌절감.
의사는 우울증 약을 처방해 준다. 몇주를 망설였다. 약을 먹는 다는 것은 이것을 내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고, 내 마음 정신이 내 통제아래에 있지 못하고, 이 작은 알약에 좌지우지 된다는 것이 나를 더욱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만큼 나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하지만, 쉽게 나는 인정할 수 없었고, 그 사이에 증상은 더 심해졌다.
잦은 결근과 약속을 깨고, 음식을 피하거나 폭식하거나, 철저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변하는 내 모습은 절망스럽다.
이제 2-3달 간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마무리만 하면 되는데, 그러면 이 끔찍했던 boss를 떠나도 되는 상황이 되는데,
지난 모든 시간을 포기하고 그냥 도망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굴뚝만 같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선한 그 사람은 나를 이대로 무너지게 두지 않는다. 이겨내자고, 내가 나를 control 할 수 없음을 철저히 인정하게 하고, 도움을 받게끔 만든다. 미루던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찾아본다. 귀에는 쓸데없는 영화리뷰나 코메디 쇼의 이야기 대신, 다 집중해서 듣지도 못하는 성경말씀으로 채워넣는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굴레를 벗어나고 싶다.
악순환은 더욱 더 깊은 구덩이로 나를 이끌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 노력이 더 나를 깊은 구덩이로 빠뜨릴 것인가, 나는 극복할 수 있을까,
이대로 망하는 건가, 진짜 사라져야만 하는가, 많은 생각들, 생각들,,
그러나 이런 모든 생각들이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을 피할 수는 없다.
다행히 약이 듣는건지, motivation이 없던 마음에, 피하려고만 했던 마음에, 약간의 적극성이 더해진다.
나는 극복할 수 있을까? 이전의 내 모습, 밝고, 거짓이 없고, 자기연민이 없던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도움은 언제나 하늘에서 부터 온다.
나름 친하다 생각한 언니에게 툭 던지듯, 내가 약을 먹고 있음을 고백했다. 언니는 당황하는 듯 했지만, 침착하게, 이겨낼 수 있다고 격려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언니의 전화는 나를 울렸다. 내 주변에 나를 돌보아 주는 사람이 누가 있냐고,,, 생각해 보면 철저히 혼자였다. 아니 그래도, 하늘에 매달리는 분이 계시기는 하다. 지금 비록 내 상태는 이모양 이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는 걱정을 끼칠까 말 못하고,
신앙의 친구들도, 어느 공동체에대 말을 할 수가 없다.
색안경으로 다들 나를 보겠지,
그저 성령 충만함이 부족하다고,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라는 말만 하겠지,,,
더 간절하게 매달리라고 하겠지,,, 내게는 애초에 그럴 힘조차도 지금 없건만,,,
직장은 뭐 더 할말이 없다. 내 모든 스트레스의 시작이 이곳이었으니,,,
그 동안 숱한일을 겪으면서도, 잘 버티었는데, 이 터널이 끝나가는 지점에서 나는 질질 기어서라도 가던 그 힘이 빠진 것인지, 터널의 끝인 빛을 보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그 자리에 멈춰서 그냥 사라지고만 싶다는 생각이다. 코 앞에 두고도, 내게는 그 빛으로 향할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 것만 같다.
무튼, 언니는 나와 같이 살자고 이야기 해 준다. 눈물겹다. 결국 나는 이런 돌봄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마음은 아직 아기 인데, 몸만 커지고 나이만 먹어서, 어른 인척 하려 했던 것이다.
내 약함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일까, 그러면서도 이런 도움을 또 보게 하시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올린 예수님의 기도가 떠오른다. 내 연약함을 아시나니,,, 나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