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주의에서 벗어나는 단순한 문장 하나를 생각해봤다.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라.
음... 이거 하나만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단순히 결과에 연연해하지 말자 정도로 정리를 해봤는데
뭔가 가슴이 콱 와닿지가 않아서 왜 그럴까 고민을 해봤다.
결론적으로 단순히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좀 더 정확하게는 타인의 평가인 것 같다.
왜냐면 잘 했다 잘 못 했다는 말 자체가 다 주관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결과치를 놓고 누군가는 잘 했다고 평가할 것이고 누군다는 못 했다고 평가할 거다.
즉 결과 자체만 놓고 보면 얘는 그냥 평가 중립적이라는 거다.
그러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라가 돼야 한다.
이러면 목적주의 타파의 의미가 가슴이 확 와닿지 않을까?
이렇게 정리하고 나면 이제 남은 건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타인의 평가보다는
내가 느끼는 쾌과 불쾌에 대해서만 집중하면 된다.
쾌란 결과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그 일을 하면서 내가 좋은 기분을 느꼈는지를 보는 것이다.
불쾌한 반대로 그 일을 함에 있어서 내가 불쾌한 감정을 느꼈는지를 보는 것이다.
모든 경험에 대해 이렇게 쾌와 불쾌를 잘 구분해나가다보면 내가 어떤 경험을 하길 원하는지 길이 보일 거다.
여기까지 오면 인생이 좀 단순해진다.
하루의 많은 부분을 내게 좋은 기분을 주는 경험으로 채워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불쾌한 감정을 주는 일이라도 필히 해야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현실적으로 불쾌를 삶에서 100% 걷어내는 방법 같은 건 없으니
살면서 조금씩이라도 쾌를 늘리고 불쾌를 줄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될 일이다.
휴..... 이제야 좀 깔끔하게 정리가 된 것 같으다.
요 며칠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100%를 이해한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이 계속 들었는데
주말간 자기 전에 조용히 계속 묵상한 결과, 어느 정도 단순화된 형태로 머리 속에서 정리를 마친 것 같다.
사실 돌이켜보면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다.
20대 때 이미 깨달아서 2-30대 대부분을 이 생각을 기준 삼아 살아왔었다.
30대 중반 이후부터 돈을 쫓기 시작하면서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다보니 까맣게 잊고 살아왔던 것 뿐
사실 이미 내 젊은 날의 대부분은 이 생각을 기반으로 채워져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타인의 시선에 연연해하며 살아왔었던가.
취업을 고려하며 대학 수업을 듣지 않았고, 실제로 나는 아무리 학점을 못 받았어도 재수강을 하지 않았다.
학점은 단순한 시험의 결과일 뿐, 나는 그 수업에 최선을 다해 임했고 배워야 할 것을 다 뽑아먹었기 때문이었다.
결과나 타인의 평가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대학원을 갈 때도 이게 뭐 취업에 도움이 되는 세부전공인지 따위를 고민하지 않았다.
학부 때 공부했던 분야 중에 수목생리학이 제일 재미있었기 때문에 골랐을 뿐이다.
하지만 대학원 생활은 내가 기대했던 만큼 좋은 경험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불쾌감만 가득 안은 채 꾸역꾸역 졸업을 하게 됐다.
사실 이때도 그냥 중간에 학업을 내려놓을까 고민을 했었다.
재미도 없는 것을 굳이 구태여 이렇게 괴로워하며 졸업증을 따낼 필요가 있을까 싶었던 거다.
하지만 그때는 당장 넥스트 스텝에 대한 청사진이 뚜렷하지 않았고 군대 등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그냥 참아냈던 것 같다.
석사 2년차 초입에 내 다음 목표를 발견하게 됐었는데,
내가 나를 관찰해보니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 말라 죽을 팔자라는 게 너무 보여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스스로 익힌 기술을 가지고 내 일을 하면서 살아야 살아질 것 같더라.
그래서 고민하다 선택한 게 바텐더였고, 대학원 졸업 후 KOICA로 대체복무를 가 있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준비를 했었다.
28살에 한국 돌아와서 바텐더 일을 시작했을 때는 참 행복했다.
육체적 힘듦은 20대의 열정으로 이겨냈었고, 정신은 보람과 충만함으로 가득 찼었다.
내 예상대로 나는 역시 직장생활보다는 그렇게 내 기술을 바탕으로 하루를 나만의 색깔로 채워가는 것이 더 잘 맞았고,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름 재미있게 잘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때가 아마 내 인생 전체 중에 제일 나답게 살았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남의 눈치도 안 보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인간으로서도 많이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었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며 세상을 배울 수 있었다.
딱 한 가지, 돈 버는 법을 못 배운 것 빼고는 말이다.
평생 돈이 풍족했던 시기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그 부분의 운이 좋으면 뭐 알아서 따라오겠거니 생각하며 젊은 혈기로 그냥 어찌저찌 버텨내던 것이,
30대 중반으로 접어들어 현실이라는 벽에 딱 가로막히자 내 숨통을 죄어오기 시작하더라.
당시 하던 가게도 매출이 잘 나오지 않고 있었고 건강도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던 터라
이거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단명하겠다 싶었다.
헝그리로 버티는 것도 20대 때나 가능했던 일이지, 몸이 늙으면 헝그리하면 몸과 마음에 병이 생기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인생의 모든 관심을 돈에 맞추고 우선 이 가난을 좀 해결해보고자 지금까지 달려왔다.
더 이상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고, 사는대로 생각하기 시작한 거다.
나이 33살에 대출 1,500만원 통장 예금 500만원 들고 시작했던 쉽지 않았던 고군분투기.
꿈만 먹고 살았던 꿈돌이 늙은 청년이 마주하기에는 쉽지 않은 현실이었다.
그 뒤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찌됐든 저찌됐든 여러 운이 작용하여 다행히 굶어죽지는 않고
지금은 나름 서울에 가정도 꾸리고 지금 다니는 직장에는 벌써 7년째 정착 중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제서야 정신 차리고 잘 살고 있다고 평가하겠지만
이건 내가 생각한 대로 살아왔기에 된 모습이라기 보다는, 사는대로 급한대로 뇌를 빼고 무지성으로 살아오다보니 도착한 곳이다.
지금 모습이 좋다 싫다를 논하는 건 너무 어린 발상이니 그만두고, 그냥 지금 내 모습 그대로를 표현해보자면 그렇다는 거다.
그런데 어쨌든 지난 대충 한 한 달간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니, 다시 내 삶의 모습을 제3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떻게 살아가야할지에 대한 실마리도 좀 보이게 됐다.
그간 너무 돈돈 거리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아보려고 발버둥쳐왔다면
이제는 그만 좀 돈돈 거리고 다시 생각하는대로 삶의 다양한 감정을 다채롭게 느껴가며 살아가야겠다.
아직은 당장 은퇴할 만큼 부자도 아니고, 내 명의로 된 집도 아직은 없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뇌를 빼고 살았던 지난 한 8년 간의 세월 덕분에 경제 및 투자 관념 하나는 확실히 머리에 박아뒀고
이놈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어디에 내 돈을 파킹해두면 이게 알아서 불어날지 대해서는 방향성이 잡혔다.
시간만 녹여내면 알아서 불어날 눈덩이기에, 그냥 내 지출 관리 잘 하고 너무 뻘짓만 안 하고 다니면 노후는 해결된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모든 미래는 거의 100%에 가깝게 운에 의해 결정이 될 테니, 내가 여기서 뭘 더 어떻게 잘 하고 못 하고에 따라 달라질 게 거의 없다.
그냥 이번에 다시 깨달은 대로, 타인의 평가나 미래에 너무 집착하거나 불안해 하지 말고
놀이터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모래놀이하는 아이들처럼
그냥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일들을 찾아 최선을 다해서 하자.
돈이 있든 없든, 나이가 많든 적든, 결국엔 그게 내 인생을 행복으로 이끌어 줄 열쇠가 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