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4일 (월) 마약일기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다. 월요일 아침은 어딘가 모르게 늘 긴장을 몸에 달고 살았던 것 같다. 한주의 시작은 뉴스의 시작이기도 하다. 주말 내내 묵혀두었던 세상사의 온갖 이야기거리들이 쏟아져 나오는 아침. 경찰청장 기자 브리핑도 늘 월요일 오전에 있기 때문에 바쁜 걸음으로 경찰청 기자실로 출근하러 가곤 했다.
그러나 이제 어디 갈 곳이 없다. 적응이 되지 않는다. 11년을 한결같이 늘 어딘가 갈 곳을 산더미같이 쌓아두고 살았었는데, 이젠 어디서도 날 찾지 않다니. 몸이 아픈 날을 제외하곤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진실을 갈구하는 시민들의 눈과 발이라는 직업인 기자의 사명감 따위도 내게 붙어다녔다. 한겨레 기자라서 막연한 책임감을 더 갖고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꼬박 11년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갈곳이 사라졌다. 분명히 현실임을 인지하고 있는데, 이게 과연 현실인가.
할일이 좀 없나 싶어, 침대에 가만이 누워서 천장만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옆집에선 한창 신축공사중이었다. 포클레인이 땅을 파내느라 제법 시끄러웠다. 창문을 통해 ‘우두두두’ 하는 소리가 방안까지 들어와 나를 계속 괴롭혔다. 짜증이 나지만, 조용히 공사해달라고 항의할 기력도 없다. 내가 항의한다고 해서 땅 파는 걸 멈추지도 않을 것 아닌가. 내가 항의한다고 해서 바꿀 수 없는 게 여기에도 있다니. 그냥 소음을 참자. 해고도 당했는데 그깟 소음은 문제도 아니다. 까짓거 창문을 닫아버리자. 초여름이라 좀 덥다.
이 집이 시끄럽다고 해서 수서동 부모님 댁으로 가서 지낼 수는 없다. 부모님이 날 걱정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공사장 소음보다 더 싫다. 분명 부모님은 내게 어떤 잔소리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은 언제나 내편이었으니까. 내가 어떤 실수를 해도 나를 이해하시는 분.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고란 것을 친 적이 없는 착한 아들이었기에, 설사 어떤 실수를 좀 하더라도 다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시는 게 우리 부모님이다. 마약도 다 이유가 있으니까 했던 거라고 생각하실 거다. 아무 말 없이. 그러나 다 싫다. 아무 말 없으신 것도 싫고. 나에게 차려주시는 밥도 먹으러 가기 싫다.
부모님의 속상함을 상상하기도 싫다. 두분에게 나는 인생의 희망이었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학력의 당신들은 아들이 번듯한 대학을 나와 국내 유수의 언론사 기자가 된 것이 평생의 보람이었으리라. 평생 막일을 하면서 제 몸이 부서져가면서도 아들의 잘 되어감에 위로를 얻으셨으리라. 그런데 아들이 마약을 하고 갑자기 직장을 잃었다. 당신들의 머릿속에, 가슴속에 지금 이순간 무엇이 담겨있을까. 내가 상상하지도 못하겠고, 지금은 감당하지도 못하겠다. 당분간은 부모님과 떨어져 있고 싶다.
방안에 홀로 남겨져 말없는 방안의 벽지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데 후배 박OO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사회부에서 얼마전까지 나와 함께 있다가 경제부로 옮겨간 녀석이다. 녀석에게는 지금까지 내가 밥을 한번 밖에 못사줬다. 지난 겨울 경찰청 앞으로 찾아왔을 때 국수를 사줬던 것 같다. 녀석은 내가 안타까웠나보다.
“선배. 점심은 드셨나요. 연락이 너무 늦었습니다. 선배 바쁘고 몸도 힘드신 가운데 저한테 힘이 되어주셨던 기억이 나서 마음이 더 아픕니다. 선배도 너무 참혹하시겠지만 꼭 건강 잘 챙기세요.”
점심은 안먹었다. 뭐라고 답장을 보내야 하지. 점심을 안먹었다고 말해야 하나. 내가 박OO에게 무슨 힘이 되어주는 행동을 했을까. 딱히 기억에는 없다. 아마 기사를 잘 썼거나 좋은 보도를 하면 으레 칭찬을 해주었을 거다. 근데 그건 박OO에게만 한 건 아니구, 후배들을 칭찬으로 훈육하려던 내 의도였을 뿐이다. 박OO은 겨우 그런 일로 나를 힘이 되는 존재로 여겼었구나. 난 오히려 지금까지 밥을 한번밖에 못사줘서 미안했는데. 전화를 걸고 싶지만 못걸겠다. 워낙 지은 죄가 커서 차마 후배들에게 미안하다고 먼저 연락도 못하겠다.
“OO아. 면목이 없다. OO이는 좋은 기자이고 앞으로 기대가 많이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꼭 잘 지내자. 문자 고마워!”
이어 미디어오늘 기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와 관련한 정보가 담긴 찌라시좀 건네줄 수 없는지 물었다. 내 정보를 유출시킨 경찰을 잡아야 한다. 최근 민간인을 사찰하고 다니는 경찰 정보국을 개혁시키기 위해 이런 저런 기획 기사를 쓰며 경찰과는 전쟁을 치르다시피 지내고 있었다. 경찰은 내가 불편했을 것이다. 잘 걸렸다 싶어 내 정보를 시중에 유통시킨게 틀림 없다. 이런 일은 더 이상 벌어져서는 안된다.
미디어오늘 기자에게 이러한 내용을 설명해보았지만 반응이 차갑다. 고민해보겠다고 한다. 이게 왜 고민할 일이지? 그냥 찌라시 받은 것들만 건네달라는 건데. 기자들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너무나 보수적이다. 아니, 아무 생각이 없어보인다. 마약한 사람은 개인 정보가 노출되어도 된다고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글 / 허재현 기자의 마약일기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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