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일기]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과 다투다

in drug •  5 years ago  (edited)

2019년 9월22일 중독자의 회복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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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중독자의 인권과 회복을 함께하는) 회복연대에서 함께 하던 형과 다퉜다. 내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당했다. 당분간은 이 회복연대를 떠나있기로 했다. 카톡방을 나와버렸다. 가장 의지하던 공간에서 이런 일을 당하니 어이가 없다. 어딜 가나 다툼은 있다. 사람을 탓하려는 건 아니고, 상처가 많은 사람들의 서투름에 대한 일기다.

모임 약속 시간에 좀 늦었다. 미리 늦겠다고 말은 해두었다. 지난번에도 두번 정도 한 10분씩 늦은 적이 있어서 좀 눈치가 보였다. 모임 장소에 도착하자, OO 형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편하게 내가 형이라고 말할게. 형은 너가 여기서 왜 활동하는건지 묻고 싶다."
"다 아시잖아요. 중독자들이 처한 열악한 처지를 살피고 우리가 연대하기 위해..."
"OO씨가 얼마전 카톡방을 나갔는데 그게 너때문이라고 생각 안하니?"
"그게 왜 나때문입니까. 그 분이 정신적으로 아파서 그런 것을."

모임을 함께 하던 한 탈북자가 있었다. 조국 교수를 매우 불편해 하던 사람이었다. '조국 법무 장관은 나와 친분도 있는 사람이고 인권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니 중독회복연대의 사업 제안을 법무부에 따로 해보겠다'고 카톡방에 내가 글을 남겼다. 그러자 느닷없이 자신과 친한 다른 서울대 교수의 사진과 찍은 사진을 방에 올리며 '이 교수님이 훨씬 더 좋은 분이다'고 말하는 것이다. '조국 교수와 친하다는 인맥자랑을 하는게 아니라 회복연대 사업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저 교수님이 법무장관이 아니지 않냐'고 내가 면박을 좀 주었다. 기분이 나빴는지 그는 카톡방을 나가버렸다.

보름 전에 있었던 이 사건을, OO 형이 갑자기 들고 나왔다.

"나는 너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모임을 나가는 거란 생각이 든다. 너는 잘못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니? 장OO목사님이 그러더라. 너는 절대 바뀔 놈이 아니라고."

장OO 목사라는 분이 있다. 회복연대를 함께 만든 분인데, 자꾸 나에게 기독교적 가르침을 설파하려던 분이다. "언젠가는 너는 신을 받아들이게 되어 있어." 장 목사의 이런 말들이 불편했지만, 마음은 따뜻한 분이기에 내가 대놓고 뭐라 하지는 않았다. 장 목사는 마약 중독자들의 중독 치유 사업에 집중해야지, 인권운동은 정치색이 짙어진다며 좀 불편해 하셨다. 나는 장 목사와 잘 타협하지 못했다. "각자의 입장차를 존중하고 가르치려 하지 말아달라. 각자 잘 하는 분야에 집중하고 연대만 하는 게 어떠냐"고 장 목사를 설득했다.

장 목사는 끝내 모임의 어떤 다른 분과 심하게 다툰 뒤 모임을 나가버렸다. 그런데 OO 형은 갑자기 장 목사가 나때문에 모임을 나간 것이라고 몰아부쳤다. 내 입장에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래. 새파랗게 어린 친구가, 목사님께 고분고분하지 않았으니 장목사가 당황하고 있다는 것은 느꼈다. 그런데, 그게 내 탓이란 말인가? 난 솔직히 장 목사가 '꼰대'라고 생각한다.

"형. 이건 모임의 의제가 되기 어려운 거 같아요. 모임 끝나고 차한잔 하면서 얘기 합시다."

그런데 모임의 다른 회원이 "허 기자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면, 모임의 의제가 되지 않냐"며 OO형을 두둔했다. 난 더이상 이 주제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맞섰고, 결국 OO 형은 집에 가버렸다.

일전에, OO형은 내가 존경하는 스님을 만나고 와서 위로를 받았다는 일화를 카톡방에 올리자, 별다른 설명도 없이 '재현이는 쉽게 바뀔 사람도 아닌 것 같고 자신이 떠나겠다'며 카톡방을 나가버린 적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서 그런가 이해하려 했지만, 내 입장에선 보통 불쾌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난 아무런 항의도 안했다. 그런데 대체 왜 내가 모임 내 갈등을 일으키는 주범인 것처럼 다뤄지는 것인가. 짜증이 난다.

이 사람들은 NGO 운동이 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그냥 각자의 입장에서 잘 하는 일하고, 때에 따라 연대하면 되는데,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향대로 자꾸 나를 변화시키려 한다. 더 정확히는, 내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 인권운동은 어쩔 수 없이 정치색을 띌 수 밖에 없다는 걸 이분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솔직히 아득하다. 내가 '아 네. 알겠습니다' 하는 고분고분한 성격도 아니어서, 이분들은 내가 불편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까지 뭘 맞춰주기는 어렵다.

OO형은 카톡방에서 폭언을 하기 시작했다.
"인생 똑바로 살아라"

나는 사과를 요구했지만, 모임 사람들은 그저 "두 사람 다 조용히 하라"는 분위기였다. 그냥 당분간은 내가 떠나기로 했다. 철부지처럼 행동하긴 싫다. 회복연대 활동은 계속 하되, 당분간은 카톡방에서는 나가있기로 했다.

원칙이 있다. '아픈 사람'들과는 절대 싸우지 말자. 그런데, 어쩌다보니 아픈 이와 싸우고 말았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 될 것 같다. 왜냐면, 내가 과거와 달리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흥분하게 된다. 중독자들을 멸시하는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끼리 위로하고 힘을 모으기 위해 뭉쳤는데 어이없게도 이렇게 우리끼리 싸우다니. 너무나 속상하다. 아무 것도 하기 싫다, 오늘, 이 우울함은 좀 오래 갈 것 같다.

중독자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다. 내가 건강한 상태라면 좀 양보도 하면서 부드럽게 넘어갈 대화이거늘, 그게 쉽지 않다. '네가 문제야'라는 지적은 억울하지만, 내가 문제인 것도 사실이다. 시간이 갈 수록 좀 성숙해질까. 다툼이 생기면 나를 먼저 돌아봐야 하는데, 늘 남탓을 먼저 하는 내 자신을 보고 있다. 그만큼 내가 약해진 탓이겠지.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처럼, 더이상 상처받기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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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만 들어도 답답함이 밀려듭니다. 힘내세요. 종교로 경직된 사람들과는 원래 얘기가 굉장히 어렵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