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하셨죠?"
"네 잘못했습니다."
나는 당연하게도 저런 질문을 받고 저런 대답을 한다. 그러나 '잘못했다'고 말하는 나는 과연 진심일까. 나는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답해야 하는 걸까. 내 스스로도 아직 답을 찾아가는 과정인데, 세상은 내게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잘못했냐고 묻는다. "잘못은 했는데, 제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했는지는 좀더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라는 답은 차마 못하겠다.
얼마전 K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들은 질문이다. 김용민 피디가 고맙게도 나를 방송에 초대해주었다. 나같은 마약 범죄 전력의 기자를 공중파 방송에 출연시키는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최근에 쓴 '법조 기자들의 검창 편향적 취재 관행'에 대해 쓴 SNS 글이 큰 파장을 일으켰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방송국 관계자가 "혹시 방송 시작전에 간단히 시청자에게 해명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이미 죗값을 치렀는데 굳이 마약 관련해 또다른 해명을 굳이 해야 하느냐고 되물을 순 없었다. 여러 생각이 머릿 속을 스쳤지만, 흔쾌히 "네, 그럼요" 라고 답했던 것 같다. 되레 내가 "저같은 사람을 방송에 출연시키면 KBS가 괜찮겠냐"고 물었던 것 같다. 방송국 관계자는 "청취자에게 사과를 먼저 해주시면 저희가 부담을 덜 것 같아요"라고 답했던 것 같다.
그래. 까짓거 대중 앞에서 사과하자. 언젠가는 치러야 할 일 아닌가. 마약 전과자가 아무렇지 않게 1년만에 공중파 방송에 출연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겠는가. 나같은 흠결많은 기자의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 초대해준 김용민 피디를 위해서라도 사과하자.
긴장된 마음으로 KBS 방송국 라디오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수년만에 앉아보는 라디오 스튜디오. 아마 한 4년전쯤 CBS 라디오 출연이 공중파에서는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방송국을 찾는 것이야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이 자리를 기자의 신분으로 다시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여러 감정들이 몰려온다.
스튜디오에 불이 켜지고, 김용민 피디가 진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엉겁결에 받은 질문.
"허재현 전 한겨레신문 법조팀 기자를 모셨습니다. 이분 마약을 한 것 때문에 회사를 그만 두신 분인데요. 허재현 기자. 당시 일에 대해 잘못했다고 생각하시지요?"
"네. 잘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직무와 연관된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닙니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이 있는 직업인으로서 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하는 진행자도 부담스러웠을테고, 답하는 나도 긴장되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무사히 잘 넘겼다. 약간 떨긴 했지만 차분하게 잘 넘겼던 것 같다. 마약 관련 이야기는 저렇게 짧게 끝내고, 나머지 시간은 법조 기자들의 문제들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방송을 들은 사람들이 그러는데, 처음에는 좀 떠는 것 같다가 이후 금방 적응해 기자 본색을 드러내며 유창하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그랬구나.
마약과 관련해 벌어진 일들과 내 1년간의 고민들이 어찌 "잘못했다"는 그 한 마디로 다 설명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잘못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일단은 잘못했다고 말하는게 최선인 것 같다. "잘못은 했지만..."으로 말이 길어지면, 사람들은 나를 오해할 수 있다. 나는 신념에 어긋나는 말은 못하는 직업인이다. 잘못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했는지 고민하고 되돌아보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우리 사회가 내게 관용을 베풀어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어떤 자리에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잘못했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살아가야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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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습니다. 공적인 일을 하지 않으신다면 모를까 방송 출연이나 언론 활동을 하시는 이상 끊임없이 '너 잘못한 거 인정하냐'란 질문을 받으실 겁니다. 하지만 힘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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