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졸업

in essay •  6 years ago 

by Lsn

명절이라고 몇 년간 얼굴을 보지 못했던 친언니를 만나서 밥을 먹었다. 나는 또 내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언니에게 잔소리를 퍼부었고, 언니는 밥을 먹다 말고 그냥 나가 버렸다. 앉아서 남겨진 음식을 우적우적 씹으면서 '나는 절대 울지 않을 거야' 하고 다짐했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엇나간 걸까?

나는 온통 어느 시점인지 알 수 없는 끝없는 시간들을 헤매고 있었다. 아빠의 잘못이기도 하고 나의 잘못이기도 하고 언니의 잘못이기도 하다. 우리는 단절된 가족이었고 그 사이를 엄마가 접착제처럼 메워 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에게 내 진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저 아빠에게 신경을 좀 더 써 주었으면, 잘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내가 아빠에게 싹싹하게 애교를 떨지 못하니까, 언니가 함께 해준다면 아빠가 덜 허전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아빠는 언니가 나와 자신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언니를 계속 붙들고 있었다. 나는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차라리 그냥 놔 버리지 하는 나쁜 생각을 했다. 오히려 그런 언니를 호적에서 지워 버리는 것이 훨씬 속 편하겠다는 생각도 덩달아 같이 했다.

지금 제일 힘든 건 아빠일 거야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빠와 단둘이 오래 살아서인지, 아니면 몇 달 전 우연히 본 아빠의 옆모습이 늙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잘 모르겠다. 까만 주름살이 겹겹이 쳐져 있는 아빠의 얼굴을 보고 나는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아빠 얼굴을 얼마 동안이나 마주하지 않은 거지 하고.

낮에 언니와 싸우고 난 뒤, 언니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나는 샤워를 마치고 로션을 바르다가 엉엉 울고 말았다. 친한 친구에게, 언니에게 보낸 메시지를 보여주자 친구는 '그래, 너는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다. 네가 그동안 힘들어 했던 마음이 다 묻어난다. 잘했다'라고 해 주었다. 몇 년 동안 쌓이고 쌓인 가족 간의 불신 때문에 생긴 상처, 고름이 오르다 못해 터져 버린 상처에 가슴이 너무도 아팠다. 우리 모두가 외로운 탓이었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

졸업을 앞두고, 그동안 외로움을 느꼈던 내 감정과 언니를 찝찝하게 여긴 마음에 졸업장을 주고 싶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라고 나는 나에게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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