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와 피임은 원시시대 부터 있었다.
현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피임 기술은 현대에 의료 기술이 발전하게 되면서 만들어 졌다.
낙태를 반대하던 가톨릭도 과거에는 어느정도 용인해줬다.
그리고 가톨릭이 아무리 동성애를 반대를 해도 중세에는 동성애라는 구체적 용어를 쓰지 않았다.
이들이 소도미라는 용어를 아무리 남발해도 동성애에 의한 것으로만 여기지 않았다는 거다.
오죽하면 이성 간의 결혼을 장려한 고대에도 동성애라는 구체적 개념이 없었다.
그런데 산업 혁명 때 사람들에게 낙태와 피임을 금지하고 이성에 의한 결혼을 장려하면서 호모포비아가 생기고 말았다.
왜냐하면 노동력이 중시되는 사회였기 때문에 가족제도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물론 사회가 요구한 남고여저식 결혼에 기반한 가족제도가 서로에게 이득이 있었겠지만 이 제도 때문에 서로 어떤 일에 대해 제약을 받고 서로 의무에 책임을 강요 받아 억압을 당했다.
이래서 19세기 산업 혁명 때 참정권이 없었던 여성들이 노동자 착취에 못견뎌 서프러제트운동이 일어났고 1960-1970년대 서구 여성들이 자신 의사 결정대로 피임과 낙태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게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LGBT 운동가들이 동성 결혼을 찬성한 것도 남고여저식 가족 제도가 젠더이분법적이고 다양한 성지향성을 배제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가족, 남성상, 여성상에 대해 한번씩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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