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의 빡침에 대하여 - 페미니즘 모르는 남자와는 같이 살지 말아야하는 이유
최근에 두달정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방사는 남자사람 친구가 우리 집서 같이 살았다. 좁은 집에 다 큰 남자 둘이 사는 것 치곤 딱히 불편할게 없었다. 그치만... 아무래도 나 혼자 살던 집이다보니 집안일은 거의 모두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집안 일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다는 게 느껴졌다. 나도 부모님 집에서 나와 살기 전에는 그랬으니까.. 이해는 됐다. (모든 남자들이 집안 일을 안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여성에 비해 상당히 높은 비율로 가사노동에 들이는 시간이나 경험이 적은 건 사실이다. 당연히 어떤 남자들은 굉장히 깔끔하고 집안 일을 매우 잘한다. 다만 나랑 내 친구처럼 집안 일 못하는 남자들이 꽤나 많다.)
그런데 '변기에 앉아쏴' 문제가 불거졌다. 애초에 우리집에서는 앉아서 소변보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어차피 변기를 닦는 건 내 몫이 될테고(실제로도 그랬다.) 남의 오줌을 닦는 상황이 유쾌할리 없으니 신경써달라고 했다.대수롭지 않게 알겠다고 말했던 친구는 역시나 습관대로 계속 서서 볼일을 봤다. 한 번에 고쳐질리 없으니 몇 번 더 부탁했다. 너는 변기 잘 안 닦지 않냐고. 화장실 청소나 변기도 어차피 내가 닦아야 하니까 앉아서 소변 봤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알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했던 친구는 그 뒤로도 계속해서 서서 볼일을 봤다.이게 참.. 페미니즘 책에 보면 "집안일의 비통함"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 느낌이 뭔지 정말 알겠더라. 너무 사소하고 별거 아닌 일인데.. 그냥 내가 알아서 좀 더 치우면 될텐데 그 일이 매일 반복되니 자꾸 스트레스를 받았다. 문제는 스트레스 받는 내가 너무 치졸하고 쪼잔하게 느껴져서 더 괴롭고 싫어진다는 점이다.
나는 왜이렇게 예민할까, 별것도 아닌 걸로 왜 착한 친구에게 안좋은 감정을 느낄까. 계속 나를 자책하게 되는 상황이 싫었다.화장실 바닥에 널부러진 수건이며 먹고 치우지 않은 음식 그릇, 아무데나 벗어놓은 옷가지나 가득차도록 버려지지 않는 쓰레기통 등등이 눈에 띄었다.... 그냥 바로바로 내가 치우면 될텐데, 얘가 언제까지 안치우고 있는지 두고보자라는 마음이 들더라. 그렇게 매일 수차례 무의미한 자학을 벌이는 나를 발견했다. 친구는 그런 것들에 불편함 없이 잘 지낼거라는 걸 알면서 말이다. 그게 더 괴로웠다.내가 그랬으니까. 어머니가 알아서 다 치워주고 대신 해줄 때는 뭐가 문제고 뭐가 더러운지 정말 몰랐다. 관심이 없으니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데.... 나 혼자 괴롭고 열받는 상황이라는 걸 아니까 더 싫었다.
나도 여전히 엄청 지저분하고 안치우며 사는 사람이지만.. 그런 내가 다른 사람의 뒤치닥거리를 해야한다는 게 참기 힘들었다. 차라리 가족이면 모를까. 사랑하는 가족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런 일을 계속 해야하는지 점점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아예 안치우며 더럽게 살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자꾸 눈에 보이고 신경에 거슬리는데, 친구가 안치운다고 같이 가만히 있는 게 무슨 의민가.몇번을 친절하게 설명해도 못알아 듣고 대충 흘려듣는 것도 싫고, 예전에 나도 그랬으니 이해해야지 생각은 하면서도 스트레스 받는 내가 싫었다. 저 친구는 왜 저렇게 못 알아들을까. 그리고 나는 (예전에 나도 똑같이 그랬던 주제에) 왜 이해를 못할까.같이 사는 동안 점점 친하게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점점 멀어지는 걸 느꼈다.
솔직히 이런 문제로 이혼하는 것도 너무 당연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책에 보면 아무리 사랑하는 남편일지라도 사소한? 빨래 문제 때문에 이혼할 결심까지 하게 된다고 하더라.) 하루는 정말 진지하게 이 모든 일련의 과정과 내 마음 상태를 다 이야기했다. 네가 집안 일을 (나에 비해) 안하는 게 정말 스트레스 받는다고. 나도 집 나와 살기 전에는 그랬었으니 너가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걸 충분히 알겠고 이해는 하지만 화장실 변기에 서서 볼일 보는 것 정도는 내가 전에도 몇번 얘기하지 않았냐고..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이런 사소한 것들이 나한테는 정말 스트레스 받는 일이라 얘기했다.
한참을 진지하게 듣던 친구가 말했다.
"나 앉아서 소변 보는 거 너무 불편해. 그냥 앞으로도 계속 서서 볼게. 그건 너가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대신 내가 소변 보고 나서 변기 꼭 잘 닦을게"
...참... 뭐라 할 말이 없었다(나는 남자 아니냐고?!!). 이게... 그 친구 나름 노력한다고 하는 것도 알겠고... 절대 이 친구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닌데... 그렇다고 내가 잘못된 것도 아니란 걸 알겠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구나.. 라고 느꼈다. 정말 다른 세계에 살고 있구나... 어쩜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나 역시 페미니즘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집안 일을 사소한 일 쯤으로 여기며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면... 그 친구처럼 반응 할 수 밖에 없었겠다 싶었다.
이런 경험이 얼마나 빡치고 황당하고 허무하면서도 자괴감이 드는지... 내가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집안 일 우습게 보는 남자들... 지금 내 경험에 공감 못하는 남자들이라면 - 이게 단순히 변기에 앉아서 소변 보는 문제만 따지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른다면... 이미 가해자일 확률이 높다. 그런 태도 고치지 않으면 나중에 같이 사는 사람은 지금 내가 경험한 빡침과 피해를 당할 확률도 높다.
*덧붙여... 나도 남자인데 앉아서 소변보는게 뭐가 그렇게 불편한지 1도 공감이 안된다. 나는 평생 서서 볼일 보다가 아부지 말씀듣고부터는 그냥 '아, 그렇구나..하고 다음부터 바로 고쳐서 습관이 됐는데...... 다른 남자들은 앉아서 볼일 보는게 도대체 왜 그렇게 싫고 불편한지....? 자기가 화장실 청소 할것도 아니면서 왜 저러지? 너무너무 이해 안된다. 그냥 좀 고치면 안되나? ㅜㅠ 도대체 앉아서 볼일 보는게 뭐가 그렇게 싫은거냐고!!!! 아오 진짜. ㅋㅋㅋ 변기청소, 화장실 청소라도 똑바로 하던가... 그렇게 하지도 않을거면서 도대체 왜!!!!!! ㅋㅋ매일 소변보고 변기 닦을 열정이면 그냥 앉아서 소변 보는 습관 들이는게 훨씬 더 빠르고 현명한거 아닌가? ㅋㅋㅋㅋㅋ참.. 이런 민망하고 웃기는 경험이라니.
** 이 글을 읽고 내가 엄청 예민하고 같이 살기 불편한 인간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겠지 싶다. 하하하. 정말 그렇지 않은데.. ㅜㅠ
여기저기서 보았던 컵 방치해서 이혼하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자기 일'이 아니라서 저런 반응이 나오고, 돕는다는 표현이 나오는거겠죠...
앉아서 화장실 이용하는 것이 익숙해지면 별로 불편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씻을 때 화장실 청소를 간단히 하는 것도 그렇구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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