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단편] kr-fiction_밤섬국의 최후

in fiction •  7 years ago  (edited)

한반도에서 동쪽으로 약 110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외딴 섬나라인 ‘밤섬국’이 있었다. 밤섬국은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섬으로 해류의 흐름에 따라 매년 아주 천천히 북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먼 훗날 러시아에 가서 붙을 거라는 말도 있었다. 밤섬국은 아주 작은 섬이었지만 기암절벽과 푸르른 녹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무엇보다 밤섬국이라는 이름답게 울창한 밤나무 숲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밤섬국은 언제나 가까이 위치한 대한민국을 본받고 따라야 할 선진민주국가로 여기며 동경해왔다. 그리하여 밤섬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나아가 법과 규범에 이르기까지 동경하는 대한민국의 그것을 본떠 만들어지고, 지켜지곤 했다.

밤섬국 국회에서는 오늘도 새로운 법안이 상정되고 의결됐는데, 이 또한 밤섬국 여당의 국회의원이 대한민국의 법을 그대로 흉내 내어 발의한 것이었다.

다름 아닌 성폭력 방지법의 일환으로 음화반포, 음화제조 및 정보통신법 등의 음란물 유포 관련법을 밤섬국에도 적용하자는 것이었다. 늘 그렇듯 동경하는 대한민국의 법을 그대로 가져다 베낀 법안은 기각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예상대로 음란물 유포 관련법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허나 최근 밤섬국에서는 선진대국인 대한민국을 본받고 동경하는 것은 물론 여러모로 이로운 일이나 무조건적인 베끼기는 지양해야한다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거기서 나아가 한 발 앞서나가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여당의 법안 발의에 이어 야당에서는 추가로 한 가지 법안을 더 발의했다.

이 법은 일명 ‘가내 화장실 설치 금지법’이었다. 법을 제안한 발제자의 논리는 대략 이렇다.

“음란물 유포 금지법으로 성욕을 국가적 차원에서 제한하는 것은 우리가 늘 본받고 따르는 대한민국이 기본적 욕구를 감내하는 것을 미덕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그 덕에 대한민국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빛나는 호칭도 얻었다. 우리도 이에 따라 음란물 유포 금지법을 차용했다. 인간의 기본적 욕구라면 역시 성욕과 식욕이다. 우선 성욕에 의거한 원활한 배설을 금지했으니, 우린 한 발 더 나아가 식욕의 결과로 나온 배설물에 대한 금지정책 또한 추진하는 것이 어떤가? 배설의 결과물만 비교해 봐도 무엇이 더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인지는 명확하다. 그렇다고 아예 배설을 막자는 것은 아니다. 음란물 차단도 그런 의미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각 가정에 설치된 화장실은 모두 철거하되, 전 국민이 모두 깨끗하고 청결하게 관리되는 지정화장실에서만 볼 일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지정화장실에 가느라 배변에 대한 욕구를 참아내는 미덕을 실천하게 될 것이고, 이로써 하나가 아닌 두 가지 배설욕구를 참아내는 셈이다. 이는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을 한 단계 앞서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미덕이 두 배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되고 성공적으로 시행된다면 오히려 선진대한민국이 우리 밤섬국의 법을 차용할 지도 모를 일이다!”

발제자의 이러한 발표를 듣고 난 밤섬국 국회의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전원 기립박수를 보냈다. 매우 타당하고 진보적인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었다. 이는 음란물 유포를 금지하는 법안과 발을 맞추어 미덕의 의미를 되새기고, 궁극적으로 도덕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매우 고차원적인 법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가내 화장실 설치 금지법 역시 일사천리로 법안이 통과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음란물 유포 관리법과 함께 동시에 공포 및 시행되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우선 법안의 가장 뚜렷한 성과는 밤섬국 길거리에 똥오줌이 넘쳐났다는 것이다. 밤섬국의 전체인구에 비해 지정화장실 숫자가 너무 적었다.

사람들은 주변에 보는 사람만 없으면 어디서든 싸고 누었다. 처음엔 아무데서나 볼 일을 보길 꺼려하던 사람들도 이내 익숙해졌다. 나중엔 보는 사람이 있어도 쌌다. 직장인들이 아침에 출근해 처음 나누는 대화는 “오늘은 어디다 싸제끼고 왔냐?”가 됐다. 이렇게 싸대니 청소인력으로 처리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오줌 범벅, 똥 범벅이 된 바닥, 심지어 오줌의 벽, 똥칠이 된 벽으로 밤섬국은 이제 오물국, 똥오줌국이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가 됐다. 물론 무조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길거리에 똥이나 오줌을 싼 사람들을 적발해 범칙금을 받아 세수가 확대됐다. 또 밤섬국의 산과 들판이 더욱 울창하게 우거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물론 식물에게 그렇게 좋다는 인분거름 덕이었다. 당연 밤섬국의 자랑 밤나무들의 생장 역시 돋보였다. 물론 24시간 풍기는 악취로 인해 산림욕을 할 수 없게 된 것만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하여 원체 냄새가 지독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똥, 오줌을 밟는데다 벌금까지 수시로 내는 국민들의 반발이 조금씩 심해지기 시작했다. 가내 화장실 설치 금지법을 재검토 해달라는 청원도 잇따랐다. 하지만 이제 막 시행 1년 밖에 되지 않은 법을 수정하거나 폐지하는 것은 당시 만장일치로 법안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의 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 더하여 국회의원들은 상당히 원활한 배변활동이 가능했는데, 적어도 국회에는 화장실이 충분히 설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회의원 전용의 화장실이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측에서 밤섬국의 일명 화장실 금지법에 어떤 반응이나 언급을 해주질 않아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신중론자들도 여전히 상당수 존재했다.

이따금 밤섬국 국회의사당의 정문과 담벼락에 ‘마음 놓고 집에서 똥 좀 싸자 씨발놈들아!’라는 똥칠테러가 자행되기도 했다. 물론 그리 큰 영향은 주지 못했다.

그렇게 또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이제 밤섬국의 아름다운 해변까지 점차 똥으로 덮여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뭐랄까? 우연 그리고 필연의 환상적인 조화랄까?

달도 보이지 않는 구름이 잔뜩 낀 칠흑 같은 밤이었다. 밤섬국 국민의 89%에 달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시간대에 쏟아져 나왔다. 골목, 길거리, 앞산, 뒷산, 옆산에 이르기까지 전부 길에 나와 밀린 똥을 싸갈겼다. 그중엔 이틀을 참은 사람, 사흘을 참은 사람, 일주일을 참은 사람까지 있었다. 한꺼번에 전체 인구 대다수의 항문을 빠져나온 그것들의 무게는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더해진 배설물의 무게 혹은 갑작스런 충격을 이기지 못한 밤섬국이 해수면 아래로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바다에서 가깝고 낮은 육지부터 침하되기 시작해 바닷물이 넘쳐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번 바닷물이 육지 위로 밀려들기 시작하자 가라앉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해안선을 따라 바닷물이 삽시간에 쏟아져 들어왔다. 유례없는 대재앙이 벌어졌다. 밤섬국은 채 몇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바닷물 아래로 깊이 가라앉아버렸다.

그렇게 밤섬국은 전설이 되었다. 아직도 밤섬국이 가라앉은 해역 근처에 가면 은은한 똥 냄새가 풍겨온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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