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류시화)

in finally •  3 years ago  (edited)

P. 122~127

당신의 영혼, 안녕한가

우리가 잠시라도 시간을 보낸 장소에는 우리 영혼의 일부가 남는다고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썼다.
책에도 혼이 담긴다. 그 책을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의 혼이.
..
대합실에서 그 책을 읽은 것 자체가 나에게는 영혼의 돌봄이었다.
몸을 위해 좋은 음식을 먹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듯이
자기 영혼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것이다.

토머스 무어는 마음의 문제가 영혼을 돌보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무어에게 심리 상담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겪은 고통은 영혼을 돌보지 않아서 생긴 마음의 병이었다.
삶에 생기를 주는 중요한 부분을 잃었기 때문에 영혼이 아픈 것이다.

한 목수가 농장 주택 보수하는 일에 고용되었다. 첫날부터 문제가 많았다.
나무에 박힌 못을 밟아 발을 다치고, 전기톱이 고장나 시간이 지체되었다.
낡은 트럭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그날 저녁 사장이 집까지 태워다 주는 동안 조수석에 앉은 남자는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집에 도착한 남자는 가족을 인사시키기 위해 사장을 잠시 집안으로 초대했다.
집을 향해 걸어나가는데 남자가 작은 나무 옆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두 손으로 나뭇가지 끝을 어루만졌다.
현관문을 열 때 그의 얼굴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호기심을 느낀 사장이 좀 전의 행동에 대해 물었다.

"아, 이 나무는 걱정을 걸어두는 나무입니다. 일하면서 문제가 없을 수 없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 문제들을 집 안의 아내와 아이들에게까지 데리고 들어갈 순 없습니다.
그래서 저녁 때 집에오면 이 나무에 문제들을 걸어 두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아침에 다시 그 문제들을 가지고 일터로 갑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면 문제들이 밤사이 바람에 날아갔는지 많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

사소한 일상의 문제들을 영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습관을 멈춰야 한다.
영혼이 순수한기쁨과 웃음을 잃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일을 아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먹고, 자고, 일하고, 가끔 인생이 공허하게 느껴질 때도 있긴했다.
어느날, 한밤중에 잠이 깬 남자는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자기 이름마저 기억나지 않았다. 몸속에 어떤 사람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음날, 남자를 진찰한 현명한 의사가 말했다.
"당신의 영혼이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서 다른 어딘가에 떨어져 있소.
영혼은 당신을 잃었고, 다른 사람들처럼 당신은 영혼을 잃은거요.
영혼은 그래도 자기가 주인을 잃었다는 것을 알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영혼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며 살아가고 있소."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 그곳에서 당신의 영혼을 기다려야만 하오.
영혼은 아마도 당신이 몇 해 전에 갔던 어느 장소로 당신을 찾으러 오는 중일 것이오.
기다리는 데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오.
이것말고는 내가 처방해 줄 약은 없소."
그래서 남자는 그렇게 했다. 도시 변두리,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로 가서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많은 날들이, 몇 주가, 몇 달이 지나고, 보이지 않는 궤도를 따라 계절들이 바뀌어 갔다.

어느 오후, 인기척이 나더니 그의 앞에 그가 잃어버린 영혼이 서 있었다.
지치고, 지저분하고, 상처 입은 채로 서서 영혼은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드디어!"

폴란드의 소설가 올가 토카르축과 그림작가 요안나 콘세이요가 함께 만든 책
'잃어버린 영혼'에 나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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