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탈 때 점검해야 할 8가지

in flight •  7 years ago  (edited)

"왜 하필 그 비행기를 타세요?" 후배가 묻습니다.

"그 비행기 타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어?" 제가 되묻습니다.

"당연하죠! 그 비행기 저도 타봤는데... 기내식도 안 좋고, 승무원들도 완전 할머니들인 데다가 서비스도 안 좋고..."

"넌 비행기 탈 때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니?" 제가 묻습니다.

"글쎄요.. 우선 가격이 저렴해야 하고, 직항이면 더 좋고, 서비스, 기내식..." 후배가 나열하기 시작합니다.

"틀렸어! 비행기 탈 때는 안전이 제일 중요한 거야.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는 것!" 제가 중간에서 끊습니다.

"에 에, 선배도 참! 그거야 기본이죠!"

후배와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나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시간 나면 이유를 알아듣게 설명해 줘야지 생각하면서도, 후배가 제 말에 수긍할지 솔직히 저도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평소 여행을 자주 하시거나, 보여지는 것들에만 매료되어 장래 승무원을 꿈꾸시는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 항공사 직원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이야기.. 후배에게 못 다한 이야기를 풀어 봅니다.

제가 항공사 그만둔 지 오래라 어쩌면 이 정보는 낡은 것일 수도 있고, 지금은 많은 것들이 개선되었을 수 있다는 점 미리 양해 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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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ter safe than sorry'

우리는 비행기 탈 때 많은 것을 기대합니다.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화가 나서 항공사에 항의를 하고, 다시는 그 항공사 이용하지 말아야지 다짐도 합니다.

비행기 탈 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까요? 개인 차가 있겠지만 대부분 요금, 좌석 배정, 지상/기내 서비스, 제 시간에 출발/도착,
기내식, 환승, 항공기 지연/결항시 항공사의 대처 등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잊고 있습니다. 바로, 안전입니다!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나의 소중한 생명을 항공기라는 하드웨어와 조종사/객실 승무원이라는 소프트웨어에 몇 시간 동안 맡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안전성과 신뢰도는 그 중요성에 있어서 맛난 기내식, 예쁘고 친절한 승무원 같은 기내 서비스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장거리 여행. 편안하게 가는 것, 물론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으로 중요한 건 없습니다.

물론 대부분 경우 비행기를 타면 일반적으로 정시에 출발하고, 예정 시간에 목적지 공항에 도착합니다. 이는 병원에 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파서 병원 가면 대부분 경우 아픈 게 나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사가 항상 대부분 처럼 진행되는 건 아니죠. 위급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평상시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엄청난 차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 사소해 보이는 것들은 때로는 우리의 생명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병원이나 의사 선택을 잘못 한 경우, 병이 악화되거나 의료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우리는 종종 목격합니다. 여러분은 환자에게 무뚝뚝하지만 병만큼은 확실히 고치는 의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환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지만 오진율이 높은 의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비행기를 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비행기를 타는 목적은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입니다. 저렴한 항공권, 젊고 예쁜 승무원, 맛난 기내식, 안락한 좌석, 기브어웨이, 다양한 서비스, 멀티미디어, 면세품, 제 시간에 도착하기... 그 어느 것도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만큼 중요할 수 없습니다.

비행기는 한 번 사고가 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관계로, 기내에 비치된 안전 장비/장치들의 역할이 무의미해져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비상시 대처하는 훈련을 잘 받은 유능한 승무원들은 승객 목숨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할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여 줍니다. 이것이 항공사들이 큰 비용을 들여 비상 장비를 구입하고, 조종사와 객실 승무원 교육에 예산을 아끼지 않고, 항공사들의 안전성을 심사하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존재하는 까닭입니다.

후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항공사는 당연히 비행기 안전에 신경을 쓴다, 어느 항공사든 마찬가지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외는 항상 존재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의사라고 다 똑같지 않듯이, 항공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마찬가지라는 것...... 과거 항공사에서 일하면서 얻은 결론입니다.

여행 할 때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확률이 좀 더 높아 보이는 항공사를 선택하는 것은 이래서 중요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가 항공사를 선택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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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그 항공사는 보유 기종이 몇 가지나 될까?

기내에는 비상시를 대비해 비상용 장비들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비행기 안 곳곳에 얼마나 많은 비상용 장비들이 있는지 상상이 안 가실 겁니다. ^^

예를 들어, 앵커리지처럼 추운 지역을 경유하는 항공기에는 승무원용 방한복이 탑재됩니다. 항공기가 사고로 비상 착륙할 경우, 승객들을 보호할 승무원들을 추위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죠.

항공기가 바다를 지나는 경우는 (대부분 항공기가 바다를 지나가지만) 바다 한가운데 불시착해 섬이나 기체 잔해에 고립되었을 경우를 대비해 비상용 보트와 조명 신호탄이 탑재됩니다.

이 신호탄은 저 멀리 선박이나 헬리콥터가 보일 때 주황색 연기를 쏘아 올려 '우리 여기 있어요!'라고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이 주황색 기체는 한 번 쏘아 올리면 한시간 넘게 소멸되지 않고 공중에 떠 있습니다.

조종석의 비상구, 낙하산, 기내 화재 발생시 다른 칸에 있는 승객을 연기로부터 보호하는 차단막 등등.. 기내에 탑재되는 비상 장비들의 종류는 실로 다양합니다. 비상장비만이 아니라 객실 승무원들이 수동으로 조작해야 하는 안전 장치들도 기내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장비들을 승객이 잘못 만져서 고장이라도 나면 큰일이겠죠? 그래서 이 장치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꺼내는지, 어떻게 작동 시키는지는 오직 승무원만이 압니다. 승무원들은 교육 받을 때 이런 것들을 배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비상 장비와 안전 장치들이 항공기 기종에 따라 위치가 다르고, 일부 경우 작동 방법도 완전히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조종사의 경우는 항공기 기종 별로 라이센스를 소유하고 있고, 라이센스가 없는 항공기는 절대 조종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객실 승무원은 그렇지 않은 항공사가 많습니다. 그래서 처음 타 보는 기종, 익숙하지 않은 기종의 항공기를 타고 비행할 경우 객실 승무원은 머리 속에 든 지식이 아니라, 물리적 매뉴얼에 의존해야 합니다.
실제로 저는 그동안 승객으로 모 항공사 비행기를 타면서 매뉴얼을 보고서 안전 장비를 작동 시키면서 투덜대는 사무장을 여러 번 본 적 있습니다.
평상시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 분을 다투는 비상시라면 매뉴얼을 확인하는 몇 분, 어디 있더라? 여기 있나? 저기? 어떻게 작동하더라? 확인하는 몇 초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소중한 찰나가 될 수 있습니다.

안전에 신경 쓰지 않는 항공사일수록 항공기 기종이 다양합니다. 그리고 그런 항공사일수록 객실 승무원들의 안전 교육에 소홀합니다. 사무장에게 매뉴얼을 던져주는 게 고작입니다.

안전에 신경을 쓰는 항공사일수록 항공기 기종이 단촐합니다. 기종이 다양할수록 기종별 교육에 투입되는 비용이 많아지고, 비상시 사고 발생 위험이 크다는 걸 경영진들은 잘 알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탈 때는 그 항공사가 보유한 기종이 다양한지, 내가 탈 비행기 기종이 이전부터 같은 노선에 계속 투입되었는지, 아니면 새로 등장한 최신 기종인지, 나와 동승할 객실 승무원들이 동 기종에 익숙한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 이래서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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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승무원은 비상시 대처 방법을 얼마나 잘 숙지하고 있을까?

객실 승무원이 되려면 보안 관련 교육 과정을 이수해야 하고 시험에 통과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승무원 자신과 승객의 생명에 직결되는 만큼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절대 승무원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교육 받을 때 안전 수칙이나 비상 장비 위치와 작동법을 확실하게 배웠더라도, 인간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됩니다...비행기 사고가 그리 흔하지 않기 때문에 배운 지식을 써먹을 기회가 적어 더 잘 잊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공사는 객실 승무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안전 교육과 시험을 통해 refresh 시킵니다. 수많은 승무원들에게 정기 교육과 테스트를 받도록 하자니 항공사로서는 비용이 발생합니다. 인력 부족... 스케줄 조정에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안전을 중요시하는 항공사인지, 그렇지 못한 항공사인지는 여기서 차이가 드러납니다.

안전에 신경을 쓰는 항공사는 일정 기간마다 객실 승무원들에게 안전 관련 테스트를 받도록 해서 시험에 통과해야 비행을 하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과거 제가 일했던 한 항공사의 경우 (그 항공사는 안전한 항공사로 국제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었습니다) 자주 실시하는 테스트도 부족하다고 판단, 비행하기 전에 승무원 브리핑 할 때 사무장이 안전 수칙에 관한 질문서를 만들어 승무원들에게 질문하는 방식으로 보안 수칙을 상기시키도록 하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안전에 신경쓰지 않는 항공사들 입장에서
이런 교육이나 테스트는 여간 성가신 게 아닙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비용 발생을 의미하니까요. 기종이 다양한 항공사라면 교육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따라서 안전에 신경을 쓰지 않는 항공사일수록 객실 승무원 교육 정책은 아주 엉성합니다. 그 결과, 평소 비상 상황을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는 객실 승무원들은 안전 수칙과 배운 것들을 저절로 잊어 버리게 되고,
이는 사고 발생 시 큰 차이를 가져 옵니다.

셋. 승무원이 비행기 탑승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기내에 비치된 안전 장비는 사람이 만든 것이 때문에 때로는 작동하지 않을 수 있고, 고장 나거나 유실, 훼손될 수 있습니다.
객실 승무원들이 비행기 타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 비상 장비들이 제 위치에 있는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안전에 신경을 쓰는 항공사 객실 승무원들은 정해진 체크 리스트대로 기내 곳곳의 비상 장비와 작동 여부, 안전 상태를 꼼꼼히 점검하고, 이상 상황이 발견되면 그 즉시 지상 정비사에게 알려 교체나 수리를 하도록 합니다.
안전에 신경을 쓰지 않는 항공사 객실 승무원들은 비행기 타면 최 단시간 내로 안전 장비 점검을 마칩니다. 불과 몇 초 만에 마치는 경우도 봤습니다.

그렇다고 객실 승무원들만 탓할 게 못됩니다. 왜냐면 이런 항공사일수록 최고의 객실 서비스를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승객이 탑승하기 전 승무원들이 해야 할 일들이 엄청 많기 때문입니다. 비상 장비를 꼼꼼하게 체크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 항공사일수록 1등석이나 VIP에 어찌나 신경 쓰는지, 서비스 규정이 아주 복잡하고 쓸데없이 많습니다. 때문에 객실 승무원들은 VIP 브리핑하랴, Meal 체크하랴, 레몬 썰랴, 이것저것 사비스 사비스 체크하고...
꽃단장 하고 손님 받을 준비하기에도 바쁩니다. 다른 거 할 겨를이 없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마치지 못하면 선배들 눈총 받고, 불이익 당합니다. 행동 굼뜨다고 신참 머리에 토마토 주스를 주르르 붓는 시니어도 봤습니다. 눈으로 티가 나지 않는 안전은 당연히 뒷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항공사일수록, 예를 들어 고장난 장비를 발견 못하고 그대로 출발해 사고 발생시 불에 기름을 붓는 역할로 이어질 확률이 커집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진실은 저 너머에... 그대로 묻어 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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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유능한 조종사는 어떤 조종사일까?

언젠가 폭우가 내리던 날, 모든 항공기들이 다른 공항으로 회항 한 적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항공기만 폭우를 뚫고 빗속에 무사히 착륙했습니다.

당시 비행했던 선배 왈, 착륙과 동시에 비행기 탑승한 승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고 합니다. 승객들은 이구동성으로 "역시 **항공 최고야! 다른 항공사는 못해내고 다 되돌아갔는데 조종 기술이 세계 최고야!" 이렇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연 그 기장이 최고의 조종 기술을 가진 조종사 맞을까요?

천재지변이나 기상 사정으로 항공기가 목적지 공항에 착륙하지 못하고 다른 공항으로 회항하는 경우, 항공사로서는 엄청난 비용이 발생합니다. 활주로 사용료, 연료, 연결편 승객 호텔 제공, 다른 항공편으로 Endorse, 회항으로 인해서 동 항공기를 다른 노선에 투입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손실 등등 금전적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안전에 신경을 쓰는 항공사는
모험을 하지 않고 회항한 조종사를 당연히 생각합니다. 혹시 발생했을지 모를 사고로부터 승객들의 생명을 지키는, 기장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한 거니까요.

안전에 신경을 쓰지 않는 항공사는 모험을 하지 않고 회항한 조종사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줍니다. 너 때문에 얼마나 손해를 보고, 너 때문에 우리가 퇴근도 못하고 어쩌고 하면서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조종사들은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웬만하면 위험을 감수하고 무리한 착륙을 시도합니다.
물론 베테랑 기장이라면 무리한 착륙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력이 많지 않은 신출내기 조종사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베테랑이더라도 평소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면 순간적인 상황 판단 착오로 착륙을 시도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 기장은 최악의 조종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면 자신의 인사상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을 포함한) 몇백명 승객들의 목숨을 담보로 위험천만한 공중 곡예를 했으니 말입니다...

안전에 신경을 쓰는 항공사라면 이런 조종사는 시말서 혹은 파면감입니다.
폭우, 폭설로 활주로 상황이 최악인 날, 모든 항공기들이 회항하고, 관제탑이 회항을 권고해도 무리하게 착륙하는 비행기...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몇몇 항공사가 특히 그렇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회항시 항공사가 기장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는가...는 아주 아주 중요합니다. 아울러 내가 탄 항공기, 만일 기상 관계로 회항했다면 내 개인 스케줄이 다 어그러져 여행을 망친 걸 원망하기 앞서 무리한 착륙 시도를 하지 않은 기장의 결단력에 감사하고,
다른 공항에나마 안전하게 착륙해 생명을 구했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공항 바닥에 앉아 으샤 으샤 농성 하면서 항공사의 사후 대처에 항의하고 인터넷에 글을 올릴지 말지는 그 다음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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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항공기 정비는 믿어도 좋을까?

항공기의 모든 부속은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에 고장 나거나 오작동할 수 있습니다. 항공기가 활주로에 머무르는 동안 정비사들이 분주하게 항공기를 점검하는 건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항공사의 부품수는 그 덩치만큼이나 엄청난 관계로, 제한된 ground time 동안에 정비사 몇 명이 모든 부품과 기계를
전부 점검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정비사는 아래 해당되는 것들을 활주로에서 점검합니다.

  1. 항공사 정비 부서에서 자체 제작한 체크 리스트
  2. 전 공항 출발지 정비 부서에서 알려 준 사항들 (예를 들어,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데 해당 부품이 없어 해당 좌석을 블록하고
    비행기 그냥 띄웠다. 그쪽에서 조치 바란다...)
  3. 항공기 도착 후 기장과 조종사들이 알려 주는 사항들 (예를 들어, 비행 도중 이런 이런 문제가 있었으니 체크해 보기 바란다...)

위 3가지에 포함되지 않은 것들은 그저 운에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 운이 나쁘다면, 평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서 체크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들이 비행 도중 문제를 일으켜 사고가 발생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활주로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 항공기 정비를 꼼꼼하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활주로에서는 시간이 곧 돈입니다. 활주로에 비행기가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활주로 사용료도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고, 지상 조업 직원들에게 지불하는 조업료도 많아집니다.

결국 항공기라는 하드웨어의 안전은 정비사의 노련한 경력과 감각, 그리고 항공사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정밀 점검에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해당 항공사의 정책, 관례, 그리고 정비사 재량에 의존합니다. 점검 결과도 정비사 재량으로 슬쩍 허위기재 될 수 있습니다.

안전에 신경쓰는 항공사는 정밀 점검을 자주 합니다. 정비사 급여와 교육, 충분한 휴식, 정비 인원 배정에 절대 인색하지 않습니다.

안전에 신경쓰지 않는 항공사는 정밀 점검을 자주 하지 않습니다.항공기가 정비 받느라 격납고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돈을 벌 수 없으니까요. 이런 항공사일수록 투입되는 정비사 인원도 적고, 경력도 짧고,
체크리스트도 항목도 많지 않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한 항공사는 기체도 정말 노후된데다가, 정비사도 완전 날림으로, 정말이지 하늘에 떠서 날아 가는 게 신기할 정도라며 아는 사람들은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절대, 절대 그 비행기 타지 않지요.

비행기 탈 때는 해당 항공기의 연령, 가장 최근 언제 정밀 점검을 받았는지, 활주로에 계류하는 시간 동안 정비사는 몇 명이 투입되는지, 정비사들의 경력과 근무 연수는 얼마나 되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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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정시 출발, 목숨처럼 소중할까?

파키스탄 항공 PIA는 "Perhaps I arrive", 노스웨스트는 Northworst...과거 지연이 빈번한 항공사들에 붙은 별명이었죠. ^^ 승객 입장에서, 연결편을 갈아타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경우 비행기가 지연되면 엄청난 불편이 따릅니다. 일정을 완전 망칠 수도 있습니다. 항공사도 입장은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정시 출발은 승객과 항공사 양측에 항상 중요하죠.

정시 출발을 칼같이 지키기 위해 지연 운항이 잦은 공항 지점장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거나 공개적으로 압력 내지는 망신을 주는 제도를 도입한 항공사도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항공기 지연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편법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항 직원들이 열심히 일한 덕분도 있겠지요. 비행기를 반드시 정시에 띄워야 한다는 지나친 압력은 부작용을 유발합니다.
이 부작용이 승객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프로의식이 부족한 정비사는 공항 지점장의 간절한 부탁, 혹은 끈끈한 정을 뿌리치지 못하고 잔 고장을 해결하지 않은 채 비행기를 띄워 보냅니다.

프로의식이 부족한 기장은 지점장의 간곡한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push-back time (항공기 문을 닫고 토잉카로 항공기를 뒤로 민 시간)과 take off time (항공기 이륙 시간)을 실제 시간보다 앞당겨 기록합니다.

예를 들어, 비행기 출발 예정 시간이 16:30분인데 푸시백 시간이 16:45분이라면 기장은 push back time을 16:30분으로 허위 보고를 하는 것이죠.
프로의식이 부족한 사무장은 기내식 담당자와 공항 지상 직원의 간곡한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기내에 실려야 할 것들이 실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출발합니다. 예를 들어, 기내식, 담요, 베개, 등받이, 이어폰, 기브어웨이, 기물...

한 끼 정도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거나, 음악을 안 듣는다고 죽지는 않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것에 아량을 보인다면 아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화장실 1개가 고장 났는데 해당 화장실을 폐쇄하고 출발, 비상시 부유 기구로 사용될 수도 있는 비행기 좌석 1개가 고장 났는데 그냥 출발, 심지어 금속 피로를 푸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도 지키지 않고 항공기를 출발 시키는 끔찍한 항공사도 봤습니다.
정시 출발... 물론 중요하지만 지나친 강요는 또 다른 사고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항공기가 지연된다는 건 지상 직원들이 무능하거나 손발이 맞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완벽히 갖춰야 비로소 출발한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에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정시 출발을 최고 목표로 지향한다는 자랑질을 하는 항공사라면 한 번 쯤 경계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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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담요와 베개, 과연 깨끗할까?

비행기 착륙 후 승객이 내리면 비행기 안에서는 수많은 작업들이 시작됩니다. 기내 청소도 그 중 하나입니다.

커다란 청소차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면 기내 청소 담당 지상조업 직원들이 기내로 투입됩니다. 이 분들은 카페트를 진공 청소기로 청소하고, 휴지를 줍고, 승객이 두고 간 물건을 지상 직원들에게 건네주고, 시트 포켓 안 내용물을 리필하고, 담요, 베개피, 등받이 커버 등을 교체합니다. 한 번 사용된 베개피와 담요는 1회용인 경우 새 것으로,
천으로 제작된 것은 세탁된 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문제는 항공사에 따라, 이전 승객이 사용한 물품을 다음 승객이 그대로 사용하도록 하는 곳이 많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항공사의 경우 청소팀들은 좌석 혹은 바닥에 널부러진 승객이 사용한 담요 중 오물이 묻지 않은 것들을 곱게 개서 좌석에 올려 놓거나 오버헤드빈에 차곡차곡 올려 놓습니다. 등받이 커버도 상태 좋아 보이는 건 교체하지 않습니다. 베개피도 아주 지저분한 것만 교체, 나머지는 다음 승객이 사용하게 됩니다.

누군가 얼굴을 짓이기고 침을 흘렸을 지도 모를 베개, 감기 환자, 전염병 혹은 전염성 세균 보균자가 덮었을지도 모를 담요...
기내식은 대부분 철저한 기준을 따르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어도 좋지만, 기물들은 청결도와 위생 상태면에서 사각지대입니다.
비행기를 탈 때는 베개피와 담요를 새로 세탁해서 비치하는지 여부를 항공사측에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항상 재사용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만요...

가장 좋은 방법은, 필요한 기물은 직접 준비해 가는 것입니다. 전염병이 발생한 지역을 지나는 비행기일수록 특히 그렇습니다.

스낵도 항공사에 따라 왕복 비행에 재사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행시간 8시간 걸리는 항공기에 치즈 샌드위치가 탑재되는 경우, 한국에서 탑승한 승객들은 조리한지 대략 하루 지나고 냉장 보관되지 않은 치즈를 먹게 되는 셈입니다. 스낵을 먹을 때는 언제 조리된 것인지, 출발지에서 실은 것인지 여부를 확인해 보거나, 아예 먹지 않는 것이 최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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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기내 서비스의 두 얼굴

항공기가 이륙하기 전 승무원이 해야 할 점검 사항들 중 하나는 승객들의 가방이나 소지품이 올바르게 놓여 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기류가 심한 곳을 지나면서 기체가 요동하는 경우 복도나 오버헤드 빈, 혹은 바닥에 놓아둔 승객에게로 날아가 흉기로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방을 고정시켜 놓는 것, 안전상 아주 중요합니다.

만일 승객이 복도에 가방을 놓는다면 승무원이 와서 치워 달라고 말하는 것 너무 당연하겠죠. 그러면 불쾌해 하면서 화 내는 승객들 반드시 계십니다. 승무원 이름표를 기억해 뒀다가 항공사에 항의하는 분들 계십니다. 이럴 때 항공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아주 중요합니다.

안전을 생각하지 않는 항공사는 무조건 승무원 잘못으로 몰고 갑니다. 승무원에게 시말서를 작성하게 하고, 스케쥴이나 인사상 불이익도 줍니다.이런 일을 몇 차례 경험하면 그 항공사 승무원들은 처세술을 터득합니다. 가능한 승객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그래서 승객이 무엇을 하든, 가방을 비상구 옆에 두든, 심지어 복도에서 고스톱을 치더라도 그냥 지나칩니다......
안전을 중요하시지 않는 항공사일수록 승무원들의 평균 연령은 낮고, 용모가 출중합니다.

안전을 중요시하지 않는 항공사일수록 여승무원 유니폼은 활동하기 불편하고, 반드시 치마를 입어야 하고, 구두 굽은 높고 뾰족합니다.

꽉 끼는 유니폼과 치마는 비상시 행동 반경에 제한을 가져오고 뾰족한 구두 굽은 비상 슬라이드 탈출 시 슬라이드에 구멍을 낼 수 있어 대형사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안전을 중요시하는 항공사일수록 승무원들은 나이가 많고, 승무원들의 유니폼은 실용적이고, 여승무원은 바지 치마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나이 든 승무원이 많다는 건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근무할 만큼이나 회사가 승무원 복지에 신경을 썼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연륜과 경험이 있는 나이 든 승무원 v.s 나이 어리고 비행 경험이 적은 초년생... 나이 들면 그만둬야 하는 이직율이 빈번한 회사 직원 v.s 정당한 대우로 애사심을 가진 회사 직원. 사고가 났을 때 누가 더 대처를 잘 할까요?

여승무원에게 바지를 못 입게 하는 항공사, 나이 든 객실 승무원이 적은 항공사일수록 안전에 소홀한 항공사가 많습니다.

마치는 글

이 밖에도 기내식과 기물 보안, 수화물 트릭, 화물 탑재,콤비, 버드 스트라이크, AOG, Weight & Balance, 관제탑 통신, 공항 보안... 등등등... 하고 싶은 얘기 아직 너무 많은데... 다 풀어 놓자니 너무 전문적이 내용이 되고, 글도 너무 길어질 것 같네요...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전에 더 신경을 쓰는 항공사와 눈에 보이는 서비스에만 더 신경을 쓰는 항공사.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요마는,
이것이 제가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모 항공사, 모 항공사는 절대로 이용하지 않고, 비행기를 두 세 번 갈아타고 가더라도 모 항공사, 모 항공사를 반드시 이용하는 이유입니다.

예약할 때 원하는 좌석, 혹은 스페셜 밀을 미리 예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승객의 안전을 위해 항공사가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를 문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런 문의는 어찌 보면 무의미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들에 승객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장기적으로 많은 것들이 개선될 수 있습니다. 작은 관심들이 모여 우리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비행기는 하늘에 뜨기만 하면 반드시 안전하게 착룩하는 줄 아는, 그래서 승객 유치, 비용절감, 직원들 압박에만 혈안인 경영진들의 마인드를 바꿀 수도 있을테니까요.

이는 어찌 보면 누구나 아는 상식인 것 같기도 한데 주저리 주저리 글만 길게 썼네요. ^^

지상에서 새는 쪽박, 하늘에서도 샌다...

산전-수전-공중전-사이버전까지 겪은 이 선배 말을

통화했던 후배가 공감할런지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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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