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했던 학창시절이 그리운 이유

in future •  6 years ago  (edited)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옥이라 생각했었다. 반복되는 하루,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과목들, 틀에 박힌 답을 고르는 과정, 그리고 병적으로 동급생들과 경쟁하는 내 모습. 모든 게 싫었다. 그중에 제일 힘들었던 시간은 고등학교 3학년. 그 시간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지금도 고3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그때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면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더러 있다. 나는 과거 기억을 꽤 잘하는 편이라 두 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해안가를 걸었던 기억도 나는데 뭔가 이상했다. 아마 스스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워버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오로지 집, 학교, 독서실만 계속 반복했던 루틴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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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 들어 그 지옥 같던 시간을 가끔 그리워한다. 왜냐면 그때는 정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는 것, 선생님 말씀 잘 듣는 것, 객관식 문항에서 옳은 답을 찾아내는 것, 모든 것에 정답이 있었다.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이 구시대적이라 현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런 공부만큼 정직한 건 세상에 없었다.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엔 정답이 없다. 연애, 결혼, 인간관계, 일, 직업 등등, 대게 정답이 없는 문항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얼 해야 하는지,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완벽한 답안이 있을까 싶다. 정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학창 시절에 했던 것처럼 노력의 중요성을 믿고 '열심히만' 하다 보니, 오히려 인간관계가 악화되거나 연애에 실패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써서 먹고살아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나서 세상은 더욱 복잡해졌다. 어떤 가이드라인이나 정해진 주제도 없이 새하얀 백지와 연필만 건네받은 느낌이었다. 무슨 글을 쓸지, 무슨 이야길 할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할지. 그 방식이 대중이 좋아할지. 작업할 공간을 결정할 땐, 내가 어디서 글을 써야 집중이 가장 잘 되는지, 어느 자리가 가장 나에게 잘 맞는지. 경제적인 부분에선 내 주머니 상태도 꾸준히 체크해야 한다.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 언제쯤 돈을 벌어 생활을 유지할지. 그리고 글을 다 쓰고 나선 어떻게 대중들에게 보여줄 것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있다. 아무리 글을 열심히 쓰고, 외적인 부분을 완벽하게 해내도, '재능'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 이게 없으면 앞서 얘기했던 것들 잘하더라도 글 쓰는 건 쓸모없는 행위가 될 뿐이다. 아무리 잘 써도 글에 매력이 없다면 누가 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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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뇌 상태


글을 쓰는 데도 이렇게 많은 것들을 신경 써야 하는데, 연애, 결혼, 운동, 미래 관리 같은 문제에 각각 정답을 내리려면 머리가 아득해진다. 사실 이런 것들에 답을 내려주는 자칭 정답지라 불리는 게 넘쳐나긴 한다. 자기 계발서, 성공한 사람들의 지혜를 담은 책이 시중에 많이 돌아다닌다. 그리고 답을 알려주는 강연 영상도 많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겐 정답이었던 이야기가 나에겐 오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침형 인간'이란 책을 예로 들면, 내 기상시간이 8시인데 책에서 제시하는 대로 새벽부터 일어나 움직이면 오히려 나는 손해다. 내가 글을 작업하는 카페는 9시 반에 문을 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찍 일어난 효과가 책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 크지 않았다. 일찍 일어난다 해서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중력이 오르거나 영감이 잘 떠오르지도 않았다. 생활패턴, 성격, 생김새, 운, 가족관계 등등, 나와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정답을 나에게 적용할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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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접했던 자기 계발서


이렇게 많은 것을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니 학창 시절, 그 지옥 같던 시간이 천국처럼 느껴진다. 학창시절엔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면 내 탓을 하면 됐다. 공부해서 점수가 잘 나오면 그걸로 행복했다. 학교는 노력-> 성적 향상이라는 간단한 공식이 적용되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세상을 살면 살수록 문제는 커지고 복잡해진다. 설상가상으로 하루가 지나면 새로운 문제가 추가되는데, 그 때문에 머릿속엔 풀리지 않은 실타래가 어지럽게 엉켜있다. 풀수록 더 알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오늘을 살고 있다. 매일매일 백지 위에 뭘 그려야 할지 막막할 때, 오지선다(객관식 문제)가 그리워지는 이유가 뭘까? 세상 모든 문항이 다섯 개의 선택지로 좁혀진다면 삶이 좀 편할 테다. 아, 기왕이면 정답지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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