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소피아와 pop futurism 그리고 장삿속

in futures-studies •  7 years ago  (edited)

로봇 소피아를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탁월한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다. 인공지능은 아마존의 알렉사만 못하고, 로봇도 그저 그렇다.

사람 모습을 한 로봇인 소피아를 나누어 보면 음성인식, 자연어 처리 및 질문에 대한 대답 데이터베이스와 인공지능과는 그렇게 관련이 없는 62개의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로봇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서적 판단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명확하지 않나, 자연어 처리 중에 감성분석을 위한 초보적 기술이 들어가 있으므로, 감성분석과 62개 표정의 데이터 베이스를 연결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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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801304842g

소피아의 현실적 용도는 전시 밖에 없다. 즉, 소피아의 목적은 어떤 이미지를 대표하거나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 전시를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다.

로봇기술로만 따지만 미국의 보스톤 다이나믹스나, 2015년 DARPA Robot Challenge에 우승한 KAIST의 Hubo 로봇이 더욱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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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https://spectrum.ieee.org/automaton/robotics/humanoids/how-kaist-drc-hubo-won-darpa-robotics-challenge

필자가 소피아에 비판적인 이유는 소피아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시도 때문이기도 하고, 미래학의 학문적인 체계와 실천적 고민을 가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를 미래학에서는 pop futurism이라고 한다. hot 한 트렌드를 보고 'this is the future'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pop futurism은 돈이 되기는 하나, 사회 문제나 방향성 혹은 기업의 고민과 전략을 수립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홍보 역할을 하는데 그친다.

소피아의 긍정적 역할이 없지 않기는 하다. 일본에서 만화영화철완 아톰이 일본의 로봇 기술을 높인 원동력이 되었다. 소피아는 트랜스 휴먼이나 포스트 휴먼 등에 대한 문화적 수용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아주 먼 훗날이다. 소피아의 약 인공지능만큼이나 갈길이 멀다.

인간의 얼굴을 한 로봇은 우리에게 착각을 일으킨다. 질문에 대해 단순 응대하는 챗봇이 사람과 같이 느껴지는 것 만큼의 착각이다. 기술이 아닌 사람의 심리적 한계를 이용한 것이 실상은 소피아다.

소피아, 혹은 일부 팝 퓨처리즘이 우리가 미래를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기술발전은 특허분석과 트렌드 분석에 의해 비교적 명확하게 미래 경로의 분석이 가능하다. 다만 지수적 발전을 고려해야 한다. 문제는 정치, 경제 및 사회가 기술발전을 어떻게 대응하고 이용하느냐가 미래학의 주요 관심이어야 한다. 과학기술이 미래 변화의 주요 동력임에는 틀림 없으나, 과학기술 자체는 물과 같이 중립적이다. 진부한 비유이기는 하나,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젓소가 먹으면 우유가 된다는 표현은 적절하다. 도구적 이성과 비판적 이성으로 나누는 것도 타당하다. 과학기술은 도구적이성이며, 이를 잘 이용하는 것은 비판적 이성이기 때문이다.

미래학의 핵심 관심은 그래서 pop futurism이 아니라, 숨겨진 문제를 드러내거나(problem oriented futures studies),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거나(critical futures studies), 혹은 미래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제도와 지식 체계를 마련하는(epiestemological futures studies) 것이 목적이다.

미래연구자의 입장에서 한편으로 pop futurism이라도 반가운 것이 사실이다. 소피아의 이면에 개발자와 이를 중계한 분들의 이익추구가 있겠으나, 이를 통해서라도 미래 인류의 변화에 대해 관심이라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다시 말하지만 우리사회에 어떤 방향성과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냥 지나가는 일시적 이벤트에 불과하다. 오히려 소피아와 같은 불완전한 로봇을 미래라고 하거나, 혹은 제대로된 과학기술 지식이 없이 4차산업혁명을 떠들거나, 기술 발전 추세에 대한 이해 없이 미래를 떠드는 것은 미래학에 큰 오해를 준다. 몇몇 학자가 미래학에 대한 날선 비판을 하는 것은 일부 미래학자라고 스스로를 참칭하는 분들의 장삿속 때문이다. 몇몇 학자가 미래학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그분들에게도 비판을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지식 없이 비판을 하는 것은 어떻든 학자의 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필자는 작년 전자신문에 '미래학을 위한 변명'을 기고하기도 했다. 어떻든 그분들의 오해를 산 이유는 미래학을 제대로 모르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일부 분들 때문인 것은 사실이다. 소피아를 소개한 것도 마찬가지다.

미래학이란 그 사회의 고민을 반영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미래란 인류 전체와도 연계되어 있으나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미래가 한국의 미래는 아니다. 싱가포르의 미래와 홍콩의 미래 캐나다의 미래와 호주의 미래가 한국의 미래는 아니다. 맥락적 상황과 기술발전 그리고 사회문제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소피아와 같은 어린이 과학공원에나 나올 수 있는 기술로 일시적 이벤트를 할 것이 아니다. 보다 진중하게, 미래의 과거인 오늘, 바람직한 미래를 합의하고 만들기 위해 지금 해야할 일을 고민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퓨처리스트 윤기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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