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네이버블로그씨의 질문)

in gilch •  3 years ago  (edited)

From, 블로그씨
그거 아시나요? 오늘 하는 고백은 사실 진심이래요~ 만우절과 얽힌 재밌는 이야기가 있나요?

1999년 4월 1일 만우절.

그 당시 한 학년이 1000명에 가까운 송파구의 한 여자고등학교.

(1학년, 2학년, 3학년의 합이 3000명 가까이 되어서 삼천궁녀라고도 불렸다.)

나는 고1 여고생.

반에서 적을 만들지 않고 좋은 이상을 풍긴 덕에 나는 반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장난기 조금 많은 개구쟁이이다.

성인이 되었으니 조금 유쾌한 편이라고 해두고 싶다.

1학년반은 모두 22개.......

쉬는 시간.

반장들이 작당을 위해 모였다.

모든 반장들이 모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꽤 많았던것 같다.

우리는 유관순 언니의 3.1운동을 모방하기로 했다.

독립선언문처럼.......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아마도 학생의 권리들을 적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선언문을 똑같이 베껴적고는

결의를 다지며 각자의 반으로 돌아갔다.

이번 수업 중간.

10시 30분(추측시간)이 되면

각 반의 반장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똑같이 베껴간 학생권리 선언문을 큰 소리로 낭독한다.

마지막 문장의 내용은

'우리는 만세를 외치며 뛰어나간다!!!!!!!!' 이다.

그리고 반장을 시작으로 반 전체 아이들이 교실을 박차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는 것이다.

물론 반친구들과도 얘기가 되어 있었다.

계획은 여기까지 였다.

너무 짧은 계획이었다..........

우리반은 수학시간이었다.

친절한 남자선생님께서 열심히 수업중이시다.

전혀 집중할 수 없다.

친구들과 눈을 마주치며 결의를 다지면서도 시계를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10시 30분이 다가온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쿵쾅 쿵쾅

째깍 째깍

이제 몇초 안남았다.

어차피 반마다 초까지 똑같은 시계는 아니었지만

나는 초침에 집중했다.

10

9

8

7

6

5

4

3

2

1

벌떡!

일어섰다.

떨리지만 떨면 안된다.

선생님께서 수업을 멈추시고 나를 쳐다보신다.

읽어라. 큰 목소리로 꿋꿋하게 읽어라.

어라? 선생님은...... 나를 방해하지 않으신다?

다 읽었다!

나가자 친구들아!

나는 앞장서서 교실문을 열고 뛰쳐 나왔다.

친구들도 뛰쳐나왔다.

남아있는 친구들도 몇 있었다.

밖으로 나와보니 많은 반들이 나와 있었고 나오고 있었다.

웃겼다.

신났다.

즐거웠다.

아...... 그런데 이제 뭐하지?

계획이 너무 짧았다.......

아직 수업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다시 돌아가는건 그림이 좀 아닌것 같고......

그때 선생님들이 눈에 들어온다.

당황하신 혹은 즐기고 계신 선생님들께서 뛰쳐나가는 학생들을 따라 나오신거였다.

아뿔싸.

혼나면 어쩌지?

나는 혼나도 괜찮은데.

나를 믿고 따라온 친구들은 어쩌지?

미리 벌을 받자.

자수하면 처벌도 줄어들지 않는가.

"얘들아 우리 스스로 운동장 돌자."

몇백명의 여고생들이 줄도 제법 맞춰가며 운동장을 돈다.

우리 반이 뛰니 다른반도 따라 뛴다.

그렇게 웃다가 뛰다가 수다를 떨다가

드디어 종이 울렸다.

교실로 돌아갔다.

선생님은 이미 교무실로 가신 뒤였다.

그런데 남아있던 친구들이 무서운 소식을 전해준다.

수학선생님께서 남아있던 친구들의 명찰을 걷어가셨다고.

명찰 걷어간 친구들만 출석 인정하고 나머지는 무단결석 처리 될 거라고.

하아...... 이를 어쩐담.

나는 교무실로 수학선생님을 찾아 갔다.

교실로 가는 계단을 오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화가 나신걸까?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사정하고 얘원해야할까?

조마조마 하며 교무실에 들어서서 수학선생님께로 다가갔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친구들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친구들만은 출석 인정해주시면 안될까요?"

"야! 겨우 이정도 할거였어? 난 뭐 더 있는 줄 알았는데~?"

하며 걷어가셨던 명찰을 그냥 다 돌려주셨다.

나는

"감사합니다."

하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교무실을 나왔다.

뭐지?

상황파악이 안되었다.

교실로 가서 친구들에게 명찰을 돌려주고 함께 뛰쳐나갔던 친구들에게도 모두 출석인정 될거라며 안심을 시켜주었다.

종이 울린다.

아!

내가...... 당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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