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먼 옛날, 세상이 검은 혼돈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에 한 여인이 왔다.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설문대할망이라 불렀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설문대 할망은 아주 컸다.
제주도 앞바다도 겨우 무릎에 올 정도였다.
그녀는 일을 아주 좋아해서 치맛자락에 부지런히 흙을 싸서 날랐는데
그녀가 맘에 드는 곳에 그 흙을 내려놓으면
그것이 바로 제주도의 산과 들 그리고 기암괴석이 되었다.
옛날 제주섬에 설문대할망이라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체구가 매우 커서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우면 다리는 제주시 앞 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걸쳐졌다 한다. 이 할머니는 빨래를 하려면 빨래감을 관탈섬 (또는 추자도)에 놓아 놓고 발로 밟고, 손은 한라산 꼭대기인 백록담을 짚고 서서 발로 문질러 빨았다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한라산을 엉덩이로 깔아 앉아 한쪽 다리는 관탈섬에 디디고, 한쪽다리는 서귀포시 앞바다의 지귀섬 (地歸島)에 디디고 서서 구좌읍 소섬(牛島)를 빨래돌로 삼아 빨래를 했다한다. 또 제주시 오라동 경의 한천(漢川)이라는 내에 고지렛도는 곳에 모자 모양으로 구멍이 패인 큰 바위가 있는데 이것은 설문대할망이 썼던 감투라 한다. 또한 성산 일출봉에는 많은 기암괴석들이 있는데, 그 중에 높이 솟은 바위 위에 다시 큰 바위돌을 얹어 놓은 듯한 기암이 있는 바, 설문대할망이 등잔불을 켜두었던 곳이라 해서 이 바위를 등경돌(燈?石)이라 부르고 있다. 또한 예전에는 성산 앞바다의 소섬(우도)은 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었다. 설문대할망이 빨래하다 소변을 보는데 앉은 곳이 식산봉과 일출봉이었다. 그런데 소변이 얼마나 세었던지 육지였던 곳이 떨어져 나가 소섬이 되고 그 사이를 소변이 강물처럼 흘러 나갔다. 그래서 성산과 소섬 사이의 바다가 깊게 파여 고래와 물개 따위가 살고, 물이 힘차 어패류가 많이 서식하며, 조류가 빨라 배가 난파당하는 일이 많았다. 설문대할망은 힘도 세었다. 할머니가 한라산을 만들 때 속옷은 없어도 치마는 입었던지, 치마폭에다 흙을 가득 담고 지금의 한라산이 있는 자리로 운반해 갔다. 치마는 헌것이어서 치마폭이 터진 구멍으로 흙 이 조금씩 세어 흐르니, 그것이 도내의 많은 오름(기생화산)이 되고 마지막으로 날라간 흙 을 부으니, 바로 한라산이 되었다 한다. 구좌읍 다랑쉬오름은 산봉우리가 움푹하게 패어져 있는데 할머니가 흙을 너무 많이 집어넣어 봉우리가 커지자 한번 툭 쳐버려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 여신의 거대한 모 습을 설명하는 전설은 이 외에도 많다. 큰 바위가 띠엄띠엄 몇 개 서 있으면 이 할머니가 솥을 걸어 밥을 해 먹은 바위라든지, 용연의 소(沼)가 깊다고 해서 할머니가 들어서 보면 발등까지밖에 물이 닿지 않았다든지 하는 식의 단편적인 전설들이다. 개중에는 민담적 요 소가 곁들여 소화(笑話)로 되어 있는 것들도 있다. 어떻든 이 정도의 이야기로도 이 여신이 얼마나 거대했었는가를 능히 알 수 있다. 이렇게 키가 너무 컸기에, 할머니는 옷을 제대로 지어 입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속옷 한 벌만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제주사람들에게 약속했다. 속옷 한 벌을 만드는 데는 명주 1백동 (1동은 50필)이 든다. 육지까지 다리를 놓 아준다는 말에 제주 백성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온 섬에 있는 명주를 다 모았으나 99동밖 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속옷을 만들다가 완성하지 못했고, 할머니는 다리를 조금 놓아 가다가 중단해 버렸다. 그 자취가 조천리 앞바다에 있는 엉장매코지라는 바위동산이다. 그녀의 평생 소원인 속옷을 만들지 못한 것이 한이라 할까 수천년 후 연륙의 꿈을 바다를 잇는 전설은 하 늘을 나는 비행기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