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성장 결혼 바로 세우기’
책의 저자의 자녀 분이 어머님을 위한 선물로 서평을 드리고 싶다며, 도서 나눔을 하셨다. 개인적으로 매우 바쁜 시기였기에 선뜻 손들고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그러나 ‘자기성장과 회복의 길 안내서’라는 부제를 보고 나니, 기꺼이 읽어보자 싶어 신청을 했다.
책은 생각보다 얇다. 그러나 탄생에서 성장, 결혼, 이혼, 재혼, 회복까지 인생 전반에서 맞이하는 삶의 흐름들을 다루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 인생이라는 파도의 파고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성장한다는 것은 이 파고들을 오르내릴 때 조금 더 능숙하게 파도타기를 하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하며 책장을 넘겼다.
첫 만남. 거기서부터 인생은 시작된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아이의 성격과 대인관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다. 어리면 어릴수록 더 영향을 준다며, 예로부터 태어나기 전 배 속에서부터 태교하는 것을 중시했다.
책에서도 이 첫 만남을 매우 중요하게 설명했다.
“첫 경험이 중요한 것은 그 구조가 반복되기 때문이다.(중략) 엄마와 좋은 경험을 많이 했으면 대상들과의 관계도 좋고, 엄마와 불편 경험을 많이 했으면 대상관계도 불편한 일들이 많아지는 구조가 생긴다. 무엇인가 습관이 되어 구조화 된 것은 쉽게 바꿀 수가 없다. 좋은 구조를 잡기위한 노력보다 휠씬 더한 고통을 겪어야 나쁜 구조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p16)”
얼마 전 친구는 전화로 나이어린 시조카를 걱정했다. 그 아이는 3살 때 엄마를 유방암으로 잃었다고 했다. 둘째를 출산 직후 유방암에 걸린 것을 안 시누는 그 아이를 제대로 안아준 적이 없다고 했다. 3살쯤 엄마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며칠째 밤잠을 못 자던 아이가 울면서 엄마가 안아주면 잘 수 있을 거 같다고 애걸복걸했다. 그러나, 아픈 엄마는 끝끝내 아이를 안아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한밤중에 아이의 이모를 불러 이모가 안아 재웠다고 했다. 이제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이 아이는 안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했다. 또, 망가진 색연필, 버리려고 둔 상자, 문드러진 지우개와 같은 쓰레기들을 제 방에 모은다고도 했다. 아이 아빠 또한 이전보다 좋아지긴 했지만, 우울증으로 아이를 돌보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어보인다고 한숨 쉬며 말했다.
책의 초반 탄생과 성장을 읽어가며, 나의 어린 시절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러나 최근 가장 가슴 아파하며 들었던 이야기였기에, 친구의 어린 시조카 이야기가 자꾸만 생각났다. 그 아이가 엄마 품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에 불행하게도 엄마와 충분한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를 대신해 아빠가 그 아이를 충분한 사랑으로 돌본 거 같지도 않다. 남의 집 사정은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그 아이가 모은다는 고물과 쓰레기 같은 것은 어쩌면 사랑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것들이 아닐까. 그래서 아이의 무의식 속엔 그것들이 자기와 비슷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방에 쌓여간다는 그 고물들이 아이가 갈망하고 있는 허기진 존재에 대한 사랑이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성장은 융합을 넘어서는 분화할 때 이어진다.
아는 후배가 소개팅을 하고 와서 말했다. ‘좋은 사람인 거 같아. 말도 잘 통하고, 공감대 형성도 잘되고, 관심사도 비슷해. 그리고 이전 사람들과 달리 성숙한 느낌을 줘서 믿음직해. 그렇지만, 왠지 이성적으로는 안 끌려. 그냥 편한 친구 정도 하면 좋을 거 같다니까. 외모나 스타일이 내 타입이 아냐.’
이전에 그녀가 만났던 남자들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았던 과거의 경력(?)을 알고 있던 나는 이렇게 조언했다. ‘너의 패턴을 바꿔봐. 몸이 끌리는 사람 말고, 지혜가 끌리는 방향으로 말이야.’
후배는 몸은 그다지 내키지는 않지만, 과거 경험을 근거로 했을 때, 꽤나 의미있는 조언이라며 내 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관계의 연애를 시작했다. 결말을 어떨지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어느 때보다 순조로워 보인다.
그녀는 최근 여러 마음 치유 프로그램으로 과거의 상처들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들을 되풀이하면서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의 이번 선택은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난 것들이라는 믿음이 있다.
생의 첫 관계, 부모와의 관계가 삶에서 다른 대상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연애를 하거나, 결혼 상대자를 결정할 때도 예외일 수 없다. 그래서 흔히 아빠를 닮은 사람과 결혼하거나 엄마를 닮은 사람과 결혼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결혼해서 곧 아빠를 닮아서 싫고, 아빠처럼이 아니라서 미워진다. 혹은 엄마이기를 기대했는데, 엄마 같지 않은 아내여서 괴롭다 하기도 한다.
우리 부부도 결혼 초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추운 겨울 어느 밤, 남편이 늦은 시간 집에 들어와서는 잠옷을 입으며 말했다. “감기 기운이 있는데, 이런 날엔 엄마라면 잠옷 바지를 따듯하게 해 놨을 텐데. 역시 당신은 우리 엄마가 아니구나.” 그러고는 결혼 전에 한 친구가 ‘아내가 엄마이길 기대하면 실망하고 상처 받는다’는 조언을 했는데, 새삼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고 궁시렁 거렸다. 그 때 나는 의미없는 시어머니와의 경쟁에서 의문의 한패를 당한 기분으로 약간은 화가 났었다.
또 한 번은 남편이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이었다. 참다 못한 나는 남편에게 ‘우리 아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단 말이야. 정말 이해가 안돼. 당신은 왜 그러는 거야?’ 하며 다툼을 하기도 했다.
내가 배우자에게 나의 부모님의 모습을 기대해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내가 혹은 배우자가 부모님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부부 간의 그늘이 드리우는 경우도 빈번하다.
김여환 소장님은 부모와의 융합된 상태를 분화시켜야 비로소 가정을, 부부 관계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조언한다. 부모로부터 분화되지 않은 관계에서 결국 배우자는 주변인이 될 수 밖에 없다. ‘당신은 왜 그래?’가 ‘당신 부모님은 왜 그래?’가 되고, 그것들이 모여서 결국 둘 간의 갈등을 넘어선 집안 간의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결국 건강한 관계의 시작은 독립된 관계들의 만남이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융합을 위해 부모님과의 심리적 분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원가족 간의 극심한 융합은 결혼해서 한 공간에 두 사람만이 사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원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부부간의 문제가 생겼을 때 둘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문제들도 양부모를 끌어들여 편 가르기 싸움으로 커져가는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이혼의 위기에 놓이게 되는 경우들을 많이 보게 된다(p61)”
성장을 위해 부모로부터 분화되는 것 뿐만 아니라, 부부 간에도 분화가 필요하다고 김여환 소장님은 말한다. 흔히 부부간 융합되어 있을 때, 한쪽이 다른 한 쪽을 통제하려 한다. 상대가 본인이 원하는 것들을 다 들어줘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결국 부부 간의 분화는 각자가 집안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상호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 부부는 어느 한 쪽에서는 분화되었지만, 여전히 융합되어 갈등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상호 존중한다는 것은 진실로 내적인 건강함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에, 나와 남편의 아직 미성숙한 자아에 대해 축복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김여환 소장님은 다양한 상담 사례 속에서 우리는 인생이라는 파도를 넘어 가면서 어떤 상처와 미성숙이 드러나는가를 설명했다. 사례들 속 이야기들은 아예 새로운 것들이 아닌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삶의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익숙한 삶의 패턴대로 살아간다면,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더 나은 삶의 역사를 창조하기 위하여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한 선택들을 이어갈 수 있다.
김 소장님은 인간은 95%이상 무의식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고 말하며, 깊은 무의식으로 들어가 자신의 실체를 만날 것을 권장한다. 나 자신을 아는 것, 여전히 내 내면에서 억압된 상태로 나를 조종하고 있는 것들을 만나고, 재해석하고 치유할 때, 진정한 자아의 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진정 사랑할 수 있을 때, 대상도 사랑할 수 있게 되며, 관계의 회복도 일어나게 된다.
이 말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삶에서 실현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내 무의식의 일부를 만나고, 그것이 치유되었을 때 실제로 내 삶에서 일어난 변화들은 겉으로 보기엔 미미했지만, 내적인 삶의 만족감을 이전과 비교할 수 없다. 나의 변화가 도무지 풀릴 것 같지 않았던 남편과의 관계 정말로 변화시켰다. 표면적으로는 달라진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내 내면의 평화는 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한 것이다.
그래서 인지, 김소장님의 말씀들이 단순히 책에 적힌 글, 전문가의 이론만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경험되었을 때 비로소 진짜 이해하게 되는 어떤 것이다. 그래서 책으로 성숙한 인격으로 나아가기 위한 안내를 받고, 그 안내에 따른 실질적인 시도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소장님이 권장하는 것처럼 심리분석을 받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이른 바 마음 공부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책을 덮으며, 성숙으로 이르는 길은 치유를 통해 본래의 자아를 회복하고, 삶의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 정직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것, 더 나은 삶의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궁극의 욕망을 따르는 것, 그리고 이 과정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생명이며 사랑이라고 결론지어 보게 된다.
이 책의 심리학 전문 용어들과 딱딱한 구조들이 때때로 읽기 어렵게 했지만, 삶에 대한 심리학적/ 영적 통찰을 제공해주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열어보지 않았을 책을 열어보고 배우게 되어서 기쁘고 감사하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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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팔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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