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모, '일리네어 키드'의 등장 http://m.ize.co.kr/view.html?no=2017032822277217832
김봉현 힙합 평론가가 인터넷 웹진 ize에 기고한 글을 읽었다. 창모의 ‘마에스트로’ 차트 역주행의 원인을 살피는 걸로 시작해, 창모가 역주행한 배경이 일리네어의 상징자본을 상속받은 것이라 진단한 후, 이 현상이 모든 젊은이의 꿈 “‘하고 싶은 일로 성공해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얻는 삶'”으로 통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후 일리네어와 같은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일리네어 키드‘가 탄생했다고 결론을 맺는다. “일리네어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삶의 태도를 제시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팬들은 그것을 내면화하며 일리네어의 발걸음을 따라간다.”
‘마에스트로’ 차트 역주행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고, 음악 평론가가 그걸 분석하는 거야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차트 역주행은 그렇게까지 드문 현상이 아니다. 그 함의를 꼭 사회적인 방면에서 찾아야 할까 싶다. 무엇보다 그로부터 이르는 결론이 전혀 정확하지 않다. 간단하게 말해보자. 한국에서 창모나 김효은처럼 랩스타로 데뷔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젊은이들에게 보여줬다? 게다가 일리네어식 자수성가가 “젊은이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삶의 태도”다? 이 글에는 의심스러운 진술이 많다. 김봉현 평론가가 다루는 주제는 결국 한국에서 ‘스웨거’ 힙합이 흥행하는 이유, 그것이 음악 팬들, 나아가 사회의 기층과 어떻게 호응하는가, 로 이어진다. 이 점에 대해 평소 생각하던 바를 옮긴다.
영화 장르 이론에 도상(icon)이란 개념이 있다. 장르의 기본 구성단위라고 생각하면 된다. 히어로 무비에선 히어로가 변복하는 유니폼이 도상이고, 필름 누아르에선 양복과 시가, 팜므파탈이다. 슬래셔 무비라면 사이코패스와 전기톱, 서부극이라면 황야와 권총, 열차, 인디언, 모뉴먼트 밸리 같은 거대한 협곡이 도상이다. 음악 장르 힙합에도 도상이 있다. 가사의 서사가 있고 캐릭터가 있으며 그것들로 구성되는 장르적 관습이 확고한 음악이니까. 힙합의 도상은 금시계와 금목걸이, 롤스로이스, 멋진 몸매의 'shawty', 랩스타를 등쳐먹는 'Bitch', 스트릿과 게토 같은 공간이다. 이 중 게토와 스트릿은 힙합의 장르적·문화적 서사를 길어 올리는 원천이다.
미국 힙합에는 왜 그렇게 자수성가와 부귀영화의 가사가 많을까. 개인에 대한 사회의 책임과 복지 시스템을 강조하는 유럽과 달리, 신대륙 개척에서부터 비롯한 생존주의와 자유 시장경제에 입각해 개인의 자기계발을 강조하는 미국적 전통이 한 배경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랩스타들이 척박하고 핍박받는 흑인 공동체 게토에서 성공을 쟁취했기 때문이다. 가난과 범죄의 무간도 같은 뒷골목에서 탈출하고 싶지만, 사회적 지원은 없고 흑인의 사회 진출이 차별당하는 상황에서 단 하나의 탈출구가 음악을 통해 인생을 뒤집는 것이다. 스웨거 가사를 읽어보면 게토-허슬-스웨거가 서사적 세트를 이루는 경우가 흔하다. 어린 시절엔 불행했지만 죽도록 랩을 해 지금은 부귀영화를 누린다, 이 넘치는 돈과 여자는 다 내 손으로 거머쥔 것이다, 라는 자전적 스토리.
여기엔 윤리적 딜레마가 있다. 래퍼들은 돈 자랑을 하는 한편 게토를 고향이라 부르며 애정을 바친다. 하지만 성공의 서사를 빛내주는 배경화면이 되기 위해선 게토는 언제까지나 궁핍한 채로 남아 있어야 한다. 게토에 남은 형제들 모두가 살만하다면 그곳을 빠져나온 자신의 영광이 퇴색된다는 간단한 이치다. 게토는 장르적 관습 ‘스웨거’의 성립 전제이고 양자는 상징적 착취 관계에 있다. 예전과 달리 힙합이 획일화됐다 따위의 비판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 힙합 씬에서도 제기되는 레퍼토리다. 힙합 밴드 더 루츠의 드러머 퀘스트러브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과거 래퍼들의 ‘스웨거’는 런-디엠씨의 ‘My Adidas’처럼 듣는 이가 얼마든지 따라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면, 지금은 도저히 꿈꿀 수 없는 환상 같은 사치품을 자랑하며 듣는 이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고 말이다.
스웨거 가사가 본격적으로 수입되고 있는 한국에서 게토의 도상 역할을 하는 건 무엇인가. 좁게 보면 언더그라운드고 넓게 보면 한국사회다. 도끼와 콰이엇 같은 언더 출신 2세대 래퍼들은 밑바닥에서 이곳으로 왔다며(came from the bottom) 스스로 이룬 성공신화를 과시한다. 여기서 밑바닥은 페이도 받지 못하고 작업하던 언더 씬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힙합은 비주류 장르였다. 한국은 인디 예술가의 생활고가 사회적근심거리인 나라다. 이런 특수한 맥락을 통해, 탑 연예인에 비하면 소박한 일리네어의 성공이 극적 이펙트를 얻는다. “한국에서 힙합은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할 때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타협 없는 힙합을 고집하며 결국은 거대한 성공을 이루어낸 한국 최초의 (진정한) 랩 스타”라고 김봉현이 일리네어에게 바치는 찬사처럼 말이다. 이런 언더와 스웨거의 대립항 속에 언더는 탈출해야 할 수난의 장소로 규정된다. 자본에 길들지 않는 자의식과 자존감의 창작 지대라는 언더 혹은 인디 본연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이다.
한편 <쇼미더머니> 출신 래퍼들이 부르는 인생역전, 젊은 갑부의 서사는 젊은 세대가 처한 사회적 빈곤과 공명한다. 88만원 세대라는 개념으로 젊은 세대의 빈곤이 의제화된 건 이미 00년대 후반이다. 알다시피 실업난은 해결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매해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절대다수 청년들이 있기에 밥 먹듯이 외제차를 사 젖히는 래퍼들의 삶이 특별해 보이고 동경을 일으킨다. <쇼미더머니> 신드롬이 암시하는 현실 하나는 그것이다. 한국 사회가 거대한 ‘게토’가 되어간다는 것. 시청자들은 빈곤이 일상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탈출하는 젊은 래퍼들의 승천의 서사에 취한다. 상업 씬 규모에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있고 저변도 방대한 미국 힙합에선 랩스타의 꿈이 게토를 벗어나는 현실적 수단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안 그렇다. 아무리 힙합이 상업화됐다지만 랩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잡아야 백 명쯤 될까. 비와이와 일리네어 레코즈 같은 슈퍼스타는 손가락으로 꼽아야 한다. 한국 힙합엔 상업 씬 등용문이 <쇼미더머니> 하나밖에 없다. 그나마 <쇼미더머니>도 기성 래퍼들이 “돈을 더 땡기고 싶어” 재탕 삼탕을 불사하며 출연해 아마추어 참가자를 밀어내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었다. 래퍼가 돼서 도끼처럼 살겠다는 건 로또 당첨만큼 가능성이 낮다. 한국 힙합의 허슬러 서사는 완벽한 판타지다.
스웨거 가사는 차와 시계를 자랑하며 평판과 긍지를 대신한다(“니들이 날 욕해봤자 나는 잘 살고 너는 못 살지” 같은 가사들). 부귀영화를 질투하는 ‘헤이터’를 상정하고, 물질적 성공을 곧 근면함과 재능의 징표로 강변하는데, 이런 논리 속에서 빈곤은 개인적 자질의 결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건 사회 구성원 다수의 빈곤을 암묵적으로 경멸하며 성립하는 가사다. 개인의 성공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재능만 있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놓인 환경과 핏줄과 기회가 작용하고, 어느 한 순간의 성패가 평생을 지배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빈곤 또한 개인의 탓을 넘은 사회적 문제다. 강남구 월 사교육비는 전국 평균의 6배가 넘고,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간 사교육비 지출은 17배 차이 난다. 이 차이는 입시 결과에 그대로 반영된다. 서울대 합격자 비율은 강남구가 강북구에 비해 21배 높고, 특목고 출신은 일반고보다 65배 많이 합격한다. 졸업 후엔 전문직 종사자와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삶이 갈릴 것이다. 한국은 계층이동이 단절된 사회다.
이 주제에서 핵심은 일리네어의 성공신화가 랩스타를 꿈꾸는 극소수에게 롤모델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한 절대다수에게 공허하다는 사실이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겐 성공의 기적 보다 실패의 우울이 가까이 있다. 물론 일리네어의 '스웨거'는 그들이 이룬 퍼포먼스로 존중할 수 있다. 판타지는 전통적으로 인기 있는 오락 소재이기도 하다. 랩스타 판타지를 엔터테인먼트로 즐긴다면 모르겠으되, 거기서 무리하게 사회적 교훈을 찾을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건 무의미할뿐더러 심지어 해롭다.
한국사회가 게토화해 간다는 징후는 아이돌 고시가 성행할 때부터 관측되었다. 케이팝 스타를 꿈꾸며 적지 않은 중고생이 기획사 오디션을 전전하는 현상 말이다. 스웨거 힙합의 유행은 이것과 한패의 현상이다. 그 많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의 난립도 마찬가지다.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 통로가 틀어 막히니까, 미디어와 스포츠 스타가 되어 일확천금의 바늘구멍을 뚫으려 한다. 미국 흑인사회가 정확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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