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달을 두고 이런저런 얘기가 많이 들립니다. 아무래도 수퍼문, 블루문, 그리고 월식(블러드문) 등 세 가지 현 상이 겹쳐 발생하다보니 그런 거 같습니다. 저도 이 글을 쓰고 얼른 나가서 달을 느긋이 감상할까 하네요. 오늘은 이 월식과 관련된 일을 한 편 써볼까 합니다.
기원전 431년에 발발한 헬라스(그리스) 세계 최대의 전쟁이라 할 수 있는 '펠로폰네소스 전쟁'도 어느새 십 여년이 지나게 됩니다. 그 무렵 아테나이(아테네)는 스파르테(스파르타)의 후방 지역인 퓔로스를 점령하여 전황을 유리하게 가져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물론 뒤이은 델리온 전투에서 참패하여 기세가 꺾이긴 하지만 이후 스파르테의 명장 브라시다스가 전사하였기에 전반적으로는 아테나이가 좀 더 좋은 상황에 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아테나이는 스파르테에 대한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었는데 전자를 대변하는 것이 클레온이었다면 후자는 니키아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아테나이는 좀 미묘한 상황에 처해 있었는데 운빨이었든 어쨌든 필로스를 점령하고 300명에 가까운 스파르테 시민을 포로로 잡으면서 기세를 올린 클레온이 스파르테의 브라시다스와의 전투 중에서 전사했기 때문이죠. 승세를 탔다가 그 다음 전투에 패배했는데 주전파까지 한꺼번에 잃은 상황이다 보니 아테나이에는 이제 전쟁을 그만 두자는 여론이 팽배해졌습니다. 특히 클레온이 없어지면서 견제 세력이 없어진 니키아스는 한편으로는 아테나이 시민들을 설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파르테에 사절을 보내 결국 아테나이와 스파르테 간 휴전을 체결하게 되는데, 이를 두고 '니키아스의 평화'라고 합니다.아테나이와 스파르테가 휴전 협정을 체결했지만 물밑에서의 전쟁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아테나이에서는 알키비아데스라는 인물이 새롭게 부상했는데 그는 페리클레스의 친척이자 그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제자라는 어마어마한 배경을 바탕으로 강경파의 지도자가 됩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니키아스에 대한 적대감으로 인해 알키비아데스는 스파르테와 아테나이의 갈등을 부추겼고 이 과정에서 시켈리아(시칠리아) 원정을 강변하게 됩니다.
당시 시켈리아의 최대 도시는 쉬라쿠사이(시라쿠사)였는데 이 쉬라쿠사이는 코린토스 계열이 세운 도시로 코린토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코린토스가 당시 아테나이와 적대하면서 스파르테와 손을 잡고 있었으며 따라서 쉬라쿠사이가 스파르테를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었습니다. 쉬라쿠사이가 아직 전쟁에 끼어들지 않았지만 끼어든다면 큰 부담이 된다는 거였죠. 게다가 쉬라쿠사이를 제외하면 시켈리아의 다른 도시들은 아테나이를 지지하고 있던 터였는데 이들이 아테나이에게 쉬라쿠사이를 견제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원정의 명분도 생겼습니다.
이 시켈리아 원정을 두고 아테나이는 두 가지 파벌로 갈리게 됩니다. 알키비아데스와 그 지지자, 그리고 젊은 세대는 쉬라쿠사이를 정복하여 자신들의 지지국가를 돕는 한편 쉬라쿠사이의 막대한 부를 손에 넣자며 시켈리아 원정에 찬성하였습니다. 반면 니키아스 일파와 중장년 세대는 오랜 전쟁 끝에 간신히 찾아온 평화를 저버리고 다시 대규모 원정을 떠나는 것에 반감을 느껴 이를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테나이는 결국 쉬라쿠사이를 공격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원정대의 총사령관으로 반대파였던 니키아스를 선임하고 정작 주전파였던 알키비아데스를 그 휘하에 배속시켜 버렸다는 점입니다. 당시 아테나이로서는 신중할 뿐 아니라 경험이 많은 니키아스에게 전군을 지휘하게 하여 알키비아데스가 경거망동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거죠.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한 얘기지만 이런 결정은 훗날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니키아스와 알키비아데스, 그리고 라마코스를 수장으로 한 대규모 시켈리아 원정대가 시켈리아에 당도합니다. 하지만 당도하자마자 알키비아데스는 국내 재판 문제로 소환되면서 니키아스의 태도가 점점 아테나이군의 발목을 잡게 됩니다. 라마코스와 함께 지휘권을 행사했다고 하지만 니키아스는 쉬라쿠사이 공격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물론 아르고스까지 참여한 아테나이 동맹군은 여러 면에서 쉬라쿠사이군보다 전력이 앞서 있어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지만 니키아스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전황을 확고하게 가져가지를 못합니다. 이러는 와중에 동료 지휘관인 라마코스가 전사하고 니키아스 본인의 건강도 나빠지면서 아테나이군에는 점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기 시작합니다.
한편 쉬라쿠사이를 아테나이군이 포위하자 스파르테는 아테나이의 쉬라쿠사이 공격을 휴전협정 파기로 보고 쉬라쿠사이 지원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이 호기로운 결정과 다르게 지원군 규모는 매우 초라했는데 귈립포스라는 비주류 장군에게 소규모 병력을 붙여 쉬라쿠사이로 파견한거죠. 문제는 이 귈립포스가 기대와 달리(?) 매우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며 아테나이를 점차 곤경에 빠뜨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귈립포스의 맹활약은 어떻게든 시켈리아에서
발을 빼려는 니카아스가 아테나이 본국에 철수를 요청하게 만들었는데 아테나이는 되려 퓔로스 점령의 공을 세운 데모스테네스 등을 대규모 병력과 함께 시켈리아로 보냅니다.
데모스테네스는 니키아스의 소극적 태도 탓에 쉬라쿠사이 침략이 지지부진하다고 판단하여 매우 적극적인 공세로 전환합니다. 하지만 데모스테네스의 생각과는 반대로 귈립포스의 활약을 통해 한숨을 돌린 쉬라쿠사이는 매우 강력하게 저항했고 아테나이와 동맹국(특히 아르고스) 사이의 연계가 도리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면서 결국 데모스테네스의 쉬라쿠사이 공격은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이렇게 전황이 최악으로 흐른 마당에 또다시 니키아스의 우유부단한 태도가 발목을 잡습니다. 앞서 적극적으로 공격하자고 주장했던 데모스테네스가 철수를 주장하지만 니키아스가 이를 반대하는 광경이 펼쳐진거죠, 플루타르코스는 이를 두고 니키아스가 패전의 책임 때문에 동료들에게 처벌될 것을 두려워서 그랬다고 주장하는데 흐음 글쎄요. 여튼 니키아스가 퇴각을 반대하면서 시일을 끄는 사이 쉬라쿠사이의 분전을 접한 스파르테와 동맹국은 뒤늦게 추가 병력을 파견하였고 아테나이군의 시일은 점점 촉박해집니다.
스파르테의 추가 지원군까지 당도하자 이제 철수 외에는 대안이 없어진 상황에서 월식이 일어납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당시 헬라스에서는 일식이 달에 의해 발생한다는 걸 보통 사람들도 알고 있었지만 월식은 왜 발생하는지 알려지지 않았고 모두 불길한 징조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니키아스는 '예언'과 '미신'을 지나치게 믿는 사람이었기에 더더욱 몸을 사리게 됩니다. 투퀴티데스에 따르면 니키아스는 9일을 세 번 보내는 동안 '철수에 대한 논의' 자체를 막아버렸다고 합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를 두고 새로운 달이 뜰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고 해석합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를 두고 월식은 달빛조차 없애주기 때문에 철수하려는 상황에서는 길조이며 27일 씩 기다릴 거 없이 단 3일만 조심하면 됐다면서 안타까워 합니다.투퀴티데스 말대로 철수 직전의 아테나이군의 발을 묶어버린 것은 월식 이외에 아무 것도 없었지만 한참을 머물렀던 아테나이군의 발목을 잡은 것은 스파르테-쉬라쿠사이 연합군이었습니다. 아테나이군이 철수를 망설이는 사이 연합군은 항구를 점령하고 아테나이군 진영을 포위했습니다.
연합군에게 포위된 채 일단 바다로 나섰던 아테나이군은 코린토스 출신 선장인 아리스톤의 지휘를 따르는 쉬라쿠사이 해군에게 그야말로 박살이 납니다. 바닷길이 막히자 아테나이군은 육로로 이동하고자 했는데 물자의 부족과 전염병으로 전력이 약화된 아테나이군은 쉬라쿠사이-스파르테 연합군의 추격 속에서 결국 완전히 궤멸되어 니키아스를 비롯해서 수 천 여 명이 생포되기에 이르릅니다.
귈립포스는 니키아스와 데모스테네스 등 생포된 아테나이 지휘관들을 스파르테로 데려가고자 했으나 쉬라쿠사이는 이를 거부하고 처단해 버립니다. 그리고 생포된 아테나이군 포로들을 광산의 노예로 만들어 가혹하게 부렸고 결국 대다수의 포로들은 고된 노동 끝에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러한 대패로 인해 아테나이는 인적 자원과 재정 면에서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해상전에서는 절대 패하지 않는다는 신념까지 깨지면서 결국 스파르테에게 무릎을 꿇고 맙니다.
투퀴티데스가 쓴 '이 월식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란 구절이 너무 절절하게 다가오는 결말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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